PCAview 로고

VIEW

등반
등반
[이용균의 초속 11.2㎞]관악산이 난리다. 그깟 미신이라고? 놉!

2026.06.17 20:04

| 이용균 영상·콘텐츠랩에디터

관악산이 난리다.

블로그를 뒤져보면, 연주대 정상석 기념사진 웨이팅이 40분에서 1시간씩 걸린다고 한다. ‘MZ들의 성지’가 됐다는 수식어도 붙는다. 트렌드 조사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북한산 대비 관악산의 온라인 언급량은 42% 수준이었는데, 이게 지난 3월 97%까지 따라붙었다.

올해 초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역술가가 관악산을 두고 ‘좋은 에너지를 가진 곳’ ‘소원을 3번 빌면 이뤄진다’고 언급한 게 인기의 시작이다.

이쯤 되면, “쯧쯧, 요즘 애들은 그딴 미신에 그렇게 호들갑을”이라고 혀를 찰 어른들이 떠오른다. 정말 그럴까? 관악산 등반은 미신이라기보다는 의례(ritual)에 가깝다. 일이 잘 풀리도록 기원하는 ‘리추얼’이고 야구는 ‘리추얼’로 가득한 세계다.

미국 UCLA 대학 야구팀 1학년 에이스 에인절 서밴티스는 마운드에서 독특한 의례를 치른다. 일단 마운드에 오르면 투구판 옆에 서서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 오른쪽 뒤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엄지 한 마디쯤 되는 크기의 ‘트리케라톱스 인형’으로 이름은 ‘제리’다.

산기운 받으려 웨이팅 감수한 MZ들
공룡인형과 마운드 오르는 미 투수
경쟁 사회서 자기 통제력 높이려면
야구에서처럼 ‘의례(ritual)’는 필수

고등학교 때부터 제리와 함께했다는 서밴티스는 “제리가 나를 진정시켜 준다”며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내 곁에 있을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장난감 공룡만큼은 아니더라도 야구는 의례 충만 종목이다. 거의 모든 투수가 마운드에 오를 때 하얀 파울라인을 밟지 않는다. 포스트시즌이 되면 이겼을 때의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감독들이 수두룩하다. <불꽃야구> 김성근 감독은 ‘의례의 화신’이다. 이겼을 때 했던 일, 이를테면 집을 나설 때 신발 신는 순서와 집 앞 골목길의 발걸음 위치, 계단을 오르내리는 순서까지 모두 그대로 이어간다.

추신수 역시 2018시즌 52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이어가는 두 달 동안 경기 전 메뉴가 내내 쌀국수였다. “10경기 넘어가니까, 메뉴를 바꿀 수가 없었다”며 웃었다.

과거 연구는 이런 의례를 단순한 심리적 플라세보로 치부했으나, 최근 연구는 다른 면을 드러낸다. 스포츠 전문매체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2017년 니컬러스 홉슨의 연구는 의례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하는 수준을 넘어 실패에 대한 뇌의 반응을 둔화시킨다는 걸 확인했다. 의례가 실수와 실패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다음 기회, 다음 승부에서의 집중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2023년 베이징 체육대학 연구팀은 의례가 경쟁 압박 속에서 자기 통제력을 향상시키고, 그 효과는 긴장감이 커질수록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이너리그에서 4년을 뛰었던 인류학자 조지 그멜치는 야구에서 의례가 이뤄지는 포지션을 구분했다. 그멜치에 따르면 투수와 타자 등 플레이에 대한 자기 통제력이 떨어지는 역할을 할 때 의례를 더 많이 수행하고, 90% 이상의 성공률을 보이는 야수로 나설 때는 의례를 상대적으로 덜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어부들이 가까운 내해보다 위험한 먼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을 때 의례에 더 집착하는 것과 똑같다는 게 그멜치의 설명이다.

MBTI를 따지고, 역술과 사주 경쟁 예능이 뜨고, 정기 좋다는 관악산이 난리인 건 새로운 세대의 ‘용기’와 ‘노력’ 혹은 ‘의지’가 부족해서 미신에 기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어른들은 미래가 눈에 보이던 가까운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고, 가끔 내 앞에 날아오는 타구를 잡기만 하면 되는 외야수로 살았기 때문에 의례가 덜 필요했을지 모른다.

지금 세상은 시속 160㎞짜리 강속구가 날아드는 타석이다. 한 발만 삐끗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무사 만루 위기다. 기껏해야 주변 몇명만 알고 지내면 됐던 과거와 달리 SNS로 둘러싸인 세상의 경쟁 압력은 2만명 가득 찬 야구장만큼이나 소란스럽다. 이걸 헤쳐나가기 위해 의례는 필수에 가깝다. 게다가 관악산을 오르는 건, 건강에도 좋다. 적어도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니까 서밴티스의 공룡 제리는, 엉뚱한 미신이 아니라 가방에 달린 키링 같은 거다. 혀를 차는 대신, 키링 단 배낭 메고, 관악산을 가자.
이용균 영상·콘텐츠랩에디터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등반의 다른 소식

등반
등반
5시간 전
밀양시, '2026년 경남 시·군 합동평가' 우수기관 선정
등반
등반
6시간 전
강원 추락·조난·질환 산악사고 잇따라⋯최근 3년간 4,135건
등반
등반
10시간 전
밀양시, '2026년 경상남도 시·군 합동 평가' 우수기관 선정
등반
등반
11시간 전
밀양시, 경남 합동평가서 '행정 성과·도민 공감' 우수
등반
등반
1일 전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50대 남녀 추락…암벽 매달린 여성 '맨손 구조' - 뉴스파이터
등반
등반
1일 전
울산바위 오르다 추락사…암벽 간신히 붙잡은 女, 산악대원 ‘맨손’ 구조[포착]
울산바위
울산바위
2일 전
[단독]울산바위 추락사…암벽 매달린 여성 구조
등반
등반
3일 전
암벽 등반하다 바위 아래로 추락, 등산하다 사망…주말 강원 산간서 사고 속출
등반
등반
3일 전
암벽등반 사고 현장 구조는?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