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전
[겨를]수요일 밤의 책방
2026.06.17 20:06
초여름의 수요일, 함양의 동네책방 ‘오후공책’에 갔다. 사회자가 아닌 작가로 초대받아 좀 더 긴장됐다. 읍내에서 저녁을 먹고 골목으로 걸어서 접근했다. 인당교를 건널 때 백로 무리가 점령한 대나무숲이 보였다. 책방 문을 열면서 손님과 마주쳤다. 벌써 온 손님들로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웃음이 났다.
한국에서 동네책방은 지역에 있는 중소형 책방에 비해 새로운 존재다. 해방 이래 지역 거점에 지역서점이 자리했다면, 동네책방은 2010년대 등장했다. 2025년 기준 동네책방은 887곳 운영하고 있다. ‘동네서점 지도’에 따르면 2016년에는 292곳이었다.
나는 주말여행을 다닐 때 동네책방에 들르는 편이다. 일부러 찾아가기보다 길을 걷다 만나면 들어간다.
군산 ‘마리서사’에서는 채만식 <탁류>를 샀다. 중학교에서 배운 소설을 적산가옥에서 만나자 난생처음 읽을 마음이 들었다. 공주 ‘오래된질문’에서는 부르디외 <상속자들>을 샀다. 쉴 때는 건드리지 않던 사회과학서에 허영심이 생겼다. 지난봄 목포에서 갈아탈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고호의책방’에 들렀다. 문간에서 북적이던 손님들이 이책저책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아서 가만 보니 아는 저자들이었다. 이곳에서는 2㎞쯤 되는 7만원짜리 고래 도감을 사서 여행 내내 지고 다녔다.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한동안은 서점에 잘 가지 않았다.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기분이라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 구매로 응원해야 한다는 동종업계인의 노파심이 커진 것이다.
의무감에서 구매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동네책방 지속 탐구>에서 출판평론가 한미화는 “개인의 능력과 성실만으로 책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는 어려운 시대”라고 짚는다. 앞서 <동네책방 생존 탐구>에서는 책방이 생계 수단일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는데 6년 동안 반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책이 팔리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유통에서 온라인서점, 중고서점, 대형 물류플랫폼에 밀린다. ‘생존’에서 ‘지속’으로 방점을 바꾼 동네책방 탐구자는 침착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하지 않을까.”
오후공책에서 이번에 기획한 행사의 바탕은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펼치는 수요일의 심야책방 지원사업이었다. 지기님은 협동조합으로 시작한 책방의 주된 업무가 사업기획과 공공기관 납품이라고 설명해줬다. 활기차게 맞아주는 책방에서 나도 이렇게 포근한 장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회사에서 교정을 볼 때 책은 산더미 같은 일거리다. 동네책방은 책이 흐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책방지기가 접은 페이지는 칼날같이 예리하고, 청중이 낭독하면 본문이 되살아난다. 동네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이야기하는 서술자가 된다.
미래의 출판사명을 지어보는 <사명을 찾아서>에서 유리관은 반지하출판사, 금치산미디어, 리비아 콜로라도, 밀고와투서, 흡혈문화사 같은 사명을 든다. “왜 출판사는 개인적일 수 없을까? 책이라는 물건에 내재된 특별한 성질 때문일까?” 이름을 짓노라면 가치를 생각하게 되니, 미래의 책방 땅도 찾아보자고 거들고 싶다. 땅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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