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전
배에 함께 타라 : 토마스 튜 &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 [허두영의 해적경영학]
2026.06.17 17:02
키를 돌려 인도양으로 방향을 튼 튜는 1693년 7월 홍해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가던 무굴 제국의 보물선 ‘다우’(Dhow)를 붙잡아 10만 파운드(1,400억 원) 상당의 보물을 털었다. 해적 46명이 ‘다우’에 탄 300명 넘는 해군을 손쉽게 제압했다는 무용담이 퍼지면서, 해적들이 몰려들어 해적 항로가 생겼다.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가는 ‘해적 순환로’(The Pirate Round)다. 유럽국가끼리 서로 약탈하던 해적질이 이슬람 국가의 순례선까지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튜는 왜 반역을 감행했을까? 왕명에 따라 세네갈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위험은 크고 보상이 적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사략선은 전리품의 절반 이상을 정부와 투자자에게 바쳐야 했다. 죽거나 다쳐도 별다른 보상이 없다. 튜가 제안한 분배 방식에 선원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당시 ‘다우’ 약탈 단 한 건으로 선원들은 제각기 40억원 정도씩, 튜는 100억원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해적질 딱 한 탕으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한 것이다.
토마스 튜는 해적사에 여러 이정표를 남겼다. 민주적인 해적선 운영방식을 도입하고, ‘해적순환로’를 개척한 데 이어, 대규모 해적 연합작전을 시도한 것도 그의 공로다. 튜는 1695년 ‘롱벤’(Long Ben) 헨리 에브리와 함께 무굴제국 에우랑제브 황제의 호화무역선 ‘간지사와이’(Ganj-i-Sawai)를 공격하는 당시 최대의 공동작전을 벌였다. 이 작전에서 그는 배에 포탄 파편을 맞고 즉사했다. 향년 46세.
해적 세계에 새 문을 연 토마스 튜의 민주적인 리더십은 ‘구글’(Google)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개방적인 리더십과 닮았다. 공동창업자는 당시 디렉토리와 광고를 중심으로 하던 인터넷 포털이 정보가 정확하지 않고 검색효율이 낮다고 판단하고, 웹페이지 링크를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튜처럼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든 것이다.
공동창업자는 1998년 창업하면서 직원에게 스톡옵션(자사주식매입권)을 제공했다. 튜가 희망봉을 돌면서 ‘같은 배를 탄’ 선원에게 분배를 약속한 것과 마찬가지다. ‘구글’은 2004년 주당 85달러에 상장한 주식이 첫 날 100달러를 넘으면서 연일 최고가를 갱신했다. 보유 주식이 100만달러가 넘는 직원이 늘어나면서 ‘구글 백만장자’(Google Millionaires)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톡옵션 중심의 보상문화를 촉발한 것이다.
‘구글’의 조직문화도 함께 퍼졌다. 자율과 개방을 앞세운 ‘구글’의 조직문화는 혁신적인 성과를 계속 터뜨렸다. 예를 들어 하루 업무시간의 20%는 창의적인 일에 집중하는 ‘20% 프로젝트’로 용량이 늘고 속도가 빠른 지메일(Gmail), 온라인 광고의 수요-공급을 연결하는 애드센스(AdSense) 같은 서비스가 탄생했다. 또 유튜브, 안드로이드,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같은 ‘디지털 신대륙’에 ‘구글’이 먼저 항로를 개척하게 됐다.
희망봉 앞바다에서 ‘아미티’의 선원들은 적군 공격에 따르는 위험에 망설였을까, 해적질로 얻는 보상에 흔들렸을까? “한 탕으로 평생 먹고 살게 해 주겠다”는 단순한 사탕발림으로 조직을 얼마나 이끌 수 있을까? 토마스 튜의 제안에 선원 46명이 만장일치로 외쳤다. “금목걸이든 목발이든 함께 하겠습니다”(A gold chain or a wooden leg, we’ll stand with you!). 비전을 제시하면서 신뢰를 굳히지 못하면, ‘금목걸이’만 탐하는 해적만 늘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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