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친문, 뉴이재명...집권당, '부족(部族)의 시간' 넘어서야 성공한다
2026.06.17 16:31
| ▲ 김민석 국무총리(왼쪽),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
| ⓒ 남소연 |
지금 더불어민주당에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듯합니다.
하나는 기억과 충성의 시간입니다. 누가 어떤 시절을 함께했는지, 위기의 순간에 곁을 지켰는지, 같은 상처와 경험을 공유했는지를 묻는 시간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과와 통치의 시간입니다. 과거의 계보보다 현재의 역량을, 정치적 순혈성보다 사회적 확장성을 묻는 시간입니다.
최근 민주당 안팎에서 벌어지는 여러 논쟁들도 두 시간의 단층선이 충돌하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정청래 대표와 김민석 총리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김민석 총리는 경륜과 역량을 갖춘 정치인입니다. 반면 다른 이들에게 그는 오래전 민주당에 등을 돌렸던 사람이며 공동체에 배신의 기억을 남긴 인물입니다. 정청래 대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정치인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강성 지지층 중심 정치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한 인물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전당대회에 참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의 'ABC론'에서 드러나듯 유 작가는 민주당의 세력 갈등을 통치의 효율성보다는 정치 공동체의 정체성, 역사와 의리를 포함하는 문제로 보는 듯합니다.
조국·김어준에 대한 엇갈린 평가에 깔린 공통점
그 관점에서 김민석은 민주당의 정체성과 역사·의리를 등진 인물이지만, 정청래는 친노·친문·친명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주류 지지층의 정서적 연속선 위에 있는 인물입니다.
평택 재보궐선거에서 벌어진 '조국 논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조국은 검찰개혁과 윤석열 정권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었습니다. 반면 다른 이들에게 그는 민주당이 넘어야 할 과거의 정치였습니다.
김어준씨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그는 민주당 지지층의 정체성과 결속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반면 다른 이들에게 그는 민주당이 보다 넓은 사회적 확장과 통치의 언어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 상징입니다.
조국이든 김어준이든, 유시민이든 정청래든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가 아닙니다. 같은 인물과 같은 사건을 두고도 무엇을 먼저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누군가는 현재의 효용과 역량을 보고, 누군가는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내부의 갈등은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서로 다른 시간의 충돌입니다.
기억과 충성의 시간은 민주당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민주당을 지탱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기억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 민주당을 결속시킨 것도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체성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정치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비판이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방어의 대상이 되고, 정책의 성패보다 공동체의 결속이 우선시 될 때 정치는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이 아니라 누가 더 진짜 구성원인지를 가려내는 경쟁으로 변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이 보인 한계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집권 이후에도 통치의 시간보다 부족(部族)의 시간이 더 강하게 작동했습니다. 정책에 대한 비판은 공동체에 대한 공격으로 읽혔고, 정치적 토론이 충성 경쟁으로 흐르곤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한계, 경계해야 할 '새로운 부족 정치'
|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맨 오른쪽은 정 대표 사퇴를 요구한 강득구 최고위원. |
| ⓒ 남소연 |
민주당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은 친노나 친문 같은 과거의 부족이 아닙니다.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같은 정치의 반복, 새로운 부족입니다.
지금 민주당 안팎에서 형성되고 있는 '뉴이재명'이라는 정치적 경향성 역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친노, 친문도 자신들이 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시민과 김어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부족은 스스로를 시대정신이라고 믿습니다.
대통령이라는 현재의 정치적 자산은 집권 정치세력의 미래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정치적 사고와 이성을 대신하는 순간, 친명은 정치세력이 아니라 부족으로 변합니다. '명심'이 토론을 대체하고, 충성이 판단을 대체하며, 비판이 배신으로 읽히기 시작할 때 통치의 시간은 다시 부족의 시간에 잠식됩니다.
부족의 시간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치적 공동체 없는 정당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집권 정당의 과제는 부족의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기억과 충성의 시간을 성과와 통치의 시간으로 전환하고, 정치적 공동체의 힘을 국정 운영의 책임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그 질문에 끝내 답하지 못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 여부도 그 전환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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