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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참교육'이란 말이 어쩌다… 밈이 바꿔놓은 시대정신

2026.06.17 13:31

[아이들은 나의 스승] 온라인 조롱 문화는 어떻게 민주주의의 기억과 교육의 가치를 뒤집어 놓았나
 조수진 변호사(노무현재단 이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날 촬영된 사진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조 변호사는"오늘 연인원 50명 정도의 일베로 추정되는 청년들이 봉하마을 기념관에 들어와 곳곳에서 일베 티셔츠를 입은 채 상징 손가락 표시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라며 "이게 놀이인가? 아니다.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제발 혐오 표현 처벌하는 법 좀 만들면 안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 조수진 페이스북

모든 건 '일베'로부터 비롯됐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등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들을 대놓고 모욕하던 시기였다. 이후 십수 년 동안 민주주의가 조리돌림당하고, 반세기의 핏빛 현대사가 노리갯감으로 전락한 참담한 시절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30대 청년들도 하나둘씩 'MH 세대'에 편입되고 있다. 'MH 세대'란 '일베'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용된 용어로, 노 전 대통령의 영문 이니셜을 딴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에 관한 '밈(Meme)'이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등을 타고 확산하면서 'MH 세대'는 일부 10~20대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그의 '밈'을 주로 제작하고 소비하는 세대라는 의미다. 그들은 서거 이후에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을 보낸 까닭에, 그에 관한 '아픈' 기억이 없다.

그들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범죄라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라는 '절대 반지'에다 정치적 양극화로 처벌이 쉽지 않다는 점을 교묘하게 활용한다. 무엇보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사회적 금기'라는 불문율도 낡은 관습으로 치부한다.

노 대통령의 서거일을 '중력절'로 명명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그들은 소수일지언정 여전히 목소리는 크다. '사회적 금기'의 벽이 한번 허물어지니,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민주화운동의 역사조차 왜곡과 폄훼로 얼룩지고 있다. 역사적 평가와 사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조차 가볍게 무시한다.

어릴수록 전두환이라는 이름보다 '전땅크'라는 별칭을 더 익숙해한다. 윤석열을 애칭인 양 '석열이 형'으로 불렀던 아이들이다. 전후 역사를 공부하거나 사회적 맥락을 살피려는 노력은 거의 없다. 무심코 사용하는 그 말들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최근 '스타벅스 사태'가 일파만파 퍼졌을 때도 그것이 왜 사회적 문제가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가 적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을 기업 마케팅에 활용한 게 그토록 죽을죄인지 묻는 경우도 있었다. 최소한의 공감 능력조차 거세되어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정치 풍자와 조롱 사이, '재미'로 소비되는 권력

얼마 전 한 아이가 낄낄대며 쇼츠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언행을 희화화한 내용이었다. 최고 권력자라고 해서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저 심심풀이 땅콩 취급하는 게 적이 불쾌했다. 요즘 아이들은 이 대통령을 '재메이 햄'으로 부른다.

민주주의와 민주화는 그들에게 노리갯감으로 활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용어다. 물론, 죄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못생긴 걸 두고 '민주화한 얼굴'이라 에두르고, 누군가 민주주의를 외친다면 대번 'PC주의자'로 낙인찍는다. 이는 입바른 소리만 해대는 위선자라는 뜻이다.

'일베'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던 십여 년 전, 게시판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단추에 '일베화'로 표기했고, 반대로 비추천을 뜻하는 용어가 '민주화'였다. 은연중에 민주화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각인됐고, 덩달아 민주화운동도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이어진 시기로 이해한다.

지금 10~20대는 말할 것도 없고, 30대와 40대 초반까지도 민주화운동을 교과서에서 접하고 배운 세대다. 5.18민주화운동은커녕 현행 헌법 개정의 직접적 계기가 된 6월 민주항쟁도 경험하지 못했다. 5.18을 영화나 드라마로 공부하다 보니 5.16과 헷갈리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이럴진대,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생길 리 없다. 민주화운동을 마치 정권과 시위대와의 오랜 다툼 정도로 여기는 경우마저 있다. 불의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이 아니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게임'처럼 인식하는 셈이다.

민주화를 산업화의 반대말로 여기는 경우마저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한 아이는 민주화운동이 잇따르면서 급속히 진행되던 산업화가 발목을 잡혔고, 결국 경제성장의 엔진이 꺼졌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을 위해선 우리에게 박정희 같은 독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지난 '12.3 윤석열 내란'에 대한 인식도 천양지차다. 아닌 밤중 홍두깨처럼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그 순간 몇몇 아이들이 보낸 카톡 문자를 기억한다.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인들의 다급한 문자들 사이로 울려댄 그들의 문자 내용은 '복붙'이라도 한 듯 똑같았다. 내용인즉슨 이랬다. "내일 학교 안 가도 되는 거죠? 개꿀!"

참교육이라는 말의 타락과 의미의 전복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건물 앞에는 예비 교사들에게 교육의 본령을 일깨우기 위한 '참교육 표석'이 세워져 있다. '참교육'의 의미가 변질된 요즘, 그들은 이 표석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 서부원

민주화와 더불어 그 의미가 180도 변질된 게 바로 '참교육'이다. 지금의 '참교육'은 민폐를 끼치거나 못마땅한 이들을 향해 힘센 자가 물리적인 제재를 가하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다. 나아가 강자가 약자를 사적으로 심판하고 굴복시키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 말로 의미가 확장됐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은어지만, 아마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급기야 드라마의 소재와 제목으로 사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참교육>이 전 세계에서도 화제다.

본디 '참교육'은 1989년 전교조가 출범할 때 내건 핵심적 구호였다. 대입을 학력고사로 치르던 시절 획일적 암기 교육을 배격하고, 정통성 없는 독재정권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던 교육 체제를 성찰하자는 취지였다. 지금도 전교조의 상징 표식엔 '참교육' 세 글자가 또렷하다.

당시 스스로 노동자를 자처하며 조합을 결성했던 교사들은 '민족'과 '민주', '인간화' 교육을 앞세우며 독재정권에 저항했고, 대거 교단에서 쫓겨나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교사는 정권의 수족 노릇에 머물러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여론은 숨죽인 채 전교조에 지지를 보냈다.

전교조는 '참교육'을 통해 교육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이루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의 교육은 차마 교육이라 부를 수 없다는 선언이었고, 환골탈태한다는 각오로 '새 교육' 대신 '참교육'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교사들은 '참교육'이 새겨진 배지를 가슴에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다.

오랫동안 '불법 노조'라는 낙인이 따라다녔지만, 전교조로 인해 공공연하던 촌지 문화가 일순간 사라졌고, 모둠활동과 토론 수업이 시도되었다. 승진에 얽매여 학교장 등 관리자에 눈치 보는 관료주의적 행태도 크게 약화했다. 학생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끈 것도 전교조였다.

10여 년 만에 전교조는 불법 딱지를 뗐지만, 사회적 환경은 악화일로였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 사회로 변모하고, 학벌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면서 전교조는 시나브로 존재감을 잃어갔다.

전교조의 위상과 역할의 부침은 보수 언론과 부박한 여론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교육과정과 대입, 생활지도와 학교폭력, 교권과 학생 인권 등 모든 교육 문제의 원흉으로 내몰렸고, 정작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도 이를 수수방관했다. 말 그대로, 모든 건 전교조 탓이었다.

그 와중에 인터넷 '밈'이 스마트폰을 분신처럼 여기는 10~20대의 놀이 문화로 보편화하면서, 애꿎은 '참교육'이 도마 위에 올려져 봉변을 당하는 장면도 왕왕 있었다. 이는 오랫동안 전교조를 악마화해 온 보수 정치인들과 언론의 승리다. 나아가 '일베'의 화려한 귀환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족. 얼마 전 한 아이의 노골적인 전교조 혐오에 놀란 적이 있다.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전교조의 역사를 알 리 없는 그가 그토록 전교조를 싫어하는 이유가 궁금해 부러 물었다. 이유 대신 친구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며 "전교조를 참교육시켜야 한다"고 낄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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