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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어진 박해영 월드…‘버려진 존재’를 향한 환대의 기록

2026.06.17 06:04

‘인간에 대한 애정’ 견지하며 ‘쓸쓸한 연대’로 먹먹한 시대에 위안 건네
환대의 시선과 닳아버린 말 대신 생경한 단어 들이밀며 시청자 붙들어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주인공 황동만(왼쪽·구교환 분)과 변은아(고윤정 분). SLL 제공


박해영 작가의 세계관을 집대성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의 여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24일 종영됐지만, 시청자들은 무가치함과 싸우는 극중 황동만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나의 아저씨>에서 <나의 해방일지>를 건너 다시 <모자무싸>로 이어지는 동안, 매번 새로워지는 표면 아래에는 세 작품을 떠받치는 골격이 있다. 세상의 기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봐 주며 끝내 존엄을 건져올린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주는 위안은 크다.

박해영의 세계는 늘 버려진 사람들에서 출발한다. 빚과 과거에 짓눌린 이지안(아이유 분), 죄책감과 알코올에 스스로를 가둔 구씨(손석구 분),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못 한 황동만(구교환 분)이 그렇다. 세상의 잣대로는 무가치해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속 깊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의 오점을 비난하지 않고 존재 그대로 인정한다.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인간은 버텨낸다는 것, 그것이 박해영 월드의 첫 원리다.

그 곁엔 늘 느슨하지만 단단한 공동체가 있다. <나의 아저씨>의 후계동 정희네, <나의 해방일지>의 해방클럽, <모자무싸>의 8인회가 그 자리를 잇는다. 그러면서 박해영 작가는 지독한 현실 끝에서 끝내 삶을 낙관한다. 행복이란 완성된 무엇이 아니라 불안하지 않은 상태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스틸샷. JTBC 제공


물론 변주도 있다. 지옥 같은 현실을 침묵으로 견디던 박동훈(이선균 분)이나 구씨와 달리, 황동만은 자격지심과 허기를 악담과 위악으로 토해내며 버틴다. 슬픔도, 분노도, 코믹도 홀로 감당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진심을 비추는 장치도 타인의 숨소리를 엿듣는 도청기에서, 내 불안과 수치를 색으로 띄우는 감정워치로 모양을 바꿨다. <모자무싸>를 연출한 차영훈 감독은 그를 두고 “클리셰를 하지 않으려 뼈를 깎는다”고 했다.

그러나 표면이 아무리 달라져도, 그가 말하려는 이야기의 정서는 같다. 그리고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세계관은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전작이 계층과 공간에서 밀려난 이들을 그렸다면, <모자무싸>는 어떤 위치에 있어도 누구나 불안하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흩어져 있던 불안과 열등감이 마침내 ‘무가치함과의 싸움’이라는 한 문장으로 수렴됐다.

그렇다면 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빠져드나. 우선 독특한 화법이 사람을 붙든다.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 낯선 단어를 대사 한복판에 박아두는 식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추앙이 그랬듯, <모자무싸>에선 육박, 죽순, 착륙까지 그 수가 부쩍 늘었다. 닳아버린 말 대신 생경한 단어를 들이밀면, 시청자는 흘려듣던 대사 한줄 한줄에 더 집중하게 된다.

더 근본적인 힘은 ‘환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박해영을 두고 “어떤 사람이든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니, 배척하기보다 수용해야 한다고 믿는 작가”라고 규정했다. 사회가 가장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을 세워두고 그 안의 사랑스러운 면을 길어올리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사회에서 배제하려던 사람 안에서 ‘나도 저렇지’ 하고 나를 발견하고, 그를 싹 끌어안았을 때 주는 공감대가 가장 크다”며 이 환대의 시선이야말로 박해영의 가장 큰 힘이라고 짚었다.

박 작가 역시 좋은 작가의 단 하나의 조건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꼽은 바 있다. 무가치함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시대에, 나와 똑같이 부서진 누군가에게 기대 숨통을 틔우는 이 쓸쓸한 연대야말로 우리가 그의 세계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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