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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에 배달될 올여름의 기억 [뉴스룸에서]

2026.06.17 04:31

승패보다 오래 남는 월드컵 이야기
2002년 풍경, 24년 지나도 생생
북중미 월드컵, '나의 이야기' 남길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미국전이 열린 2002년 6월 10일 월요일 오후 4시 서울 시청 앞에 붉은 셔츠를 입은 30여만 명의 모여 응원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창력 미쳤다." "이 정도면 음원보다 라이브가 낫다." 노래를 잘 부르는 영상에는 이런 칭찬 댓글이 달린다. 관심의 초점이 가수에게 있다. 그런데 감성을 건드리는 깊은 노래에는 조금 다른 댓글이 달린다. "연인과 헤어진 뒤 매일 들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입영 열차 안에서 들었다" 등등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가창력이 뛰어난 노래의 댓글창이 심사평 공간이라면,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 댓글창은 '사연 게시판'이 된다.

스포츠도 그렇다. 압도적인 승리와 대기록이 나온 경기에는 환호와 찬사가 쏟아지지만, 진정 가슴을 울린 명경기에는 보는 이들의 추억과 이야기가 시간을 넘어 배달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은 거대한 축제에 빠져 있었다. 거리마다 붉은 물결이 넘쳤고, 온 나라가 '정신이 나간' 듯 열광했다. 그 시간을 통과한 이들이라면 지금도 '한일 월드컵'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경기 결과보다 먼저 그 시절 자기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광장에서 낯선 사람과 얼싸안고 환호하던 나. 누군가 빵빵 빵빵빵~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 너나 없이 "대~한민국"을 외치던 거리. 남의 자동차 지붕 위에 올라가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도 누구 하나 눈살을 찌푸리지 않던 시절이었다. 밤새 불이 꺼지지 않던 식당에서는 술과 안주가 공짜로 돌았고, 처음 본 이들끼리 스스럼없이 잔을 부딪쳤다. "대~한민국" 구호가 한반도를 뒤덮자, 한 신문사는 신문 1면 제호를 아예 '대~한OO'이라고 바꿔 인쇄했다.

2002년 6월 4일, 2002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폴란드전에서 한국이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기록한 후 부산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기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해 여름, 기자는 언론사에 갓 입사한 사회부 막내였다. 한국 축구의 기적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거리 응원 현장을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취재보다 응원에 정신이 팔려 변변한 기사 하나 건지지 못해 선배들에게 질책을 받았지만, 지금도 2002 월드컵이란 단어는 24년 전 '초짜 기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소환한다.

12일 2026 북중미 월드컵의 막이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도 수많은 골과 명승부,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것이다. 한국대표팀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한 가지 더 욕심을 낸다면, 훗날 '2026 월드컵'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을 소환하는 월드컵이 되길 바란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16강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도 당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꺾는 이변이 일어나자, 교과서 밑으로 숨긴 휴대전화 중계를 숨죽여 보던 고교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린 이야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이 포르투갈에 역전승을 거둔 뒤 휴대전화 화면으로 가나-우루과이 경기를 초조하게 지켜보다 극적인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한국에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준 가나를 떠올리며 편의점 '가나 초콜릿'을 싹쓸이했다는 직장인의 이야기 말이다. 이런 나만의 이야기가 올여름에도 곳곳에서 만들어지길 바란다.

시민들이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2026 북중미월드컵 A조 조별리그 1차전 대한민국과 체코의 경기를 화면으로 지켜보며 거리응원을 펼치던 중 오현규의 역전골에 기뻐하고 있다. 뉴스1


마침, 12일 한국-체코전에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광장 응원의 뜨거운 함성과 골목마다 터져 나온 환호성이 재현됐다. 또 다른 24년이 흘러 2050 월드컵이 열릴 즈음, 사람들의 입에서 "2026년 여름엔 말이지…"라는 추억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여건도 만들어졌다.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만들어야 할 것은 승리만이 아니다. 2050년 여름 누군가에게 다시 배달될 올여름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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