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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 심판대’에 선 월드컵 감독들

2026.06.17 00:44

경기력 좋으면 본전, 나쁘면 백수
그래픽=이진영

월드컵 개막 나흘 만에, 90분 한 경기를 치르고 감독 자리에서 쫓겨났다. 지난 15일 북중미 월드컵 F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웨덴에 1대5로 대패한 튀니지 사령탑 사브리 라무시(프랑스) 감독이 이튿날 경질됐다. 튀니지축구연맹은 스웨덴전 직후 선수단 호텔에서 긴급 회의를 열었고, 감독 교체를 결정해 16일 공식 발표했다. 조 3위도 32강 진출 가능성이 있는 만큼 속전속결로 감독을 바꿔 남은 두 경기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북아프리카 매체들에 따르면, 라무시 감독은 최근 부진한 경기력 때문에 팀 내에서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지난 1월 지휘봉을 잡은 이후 스웨덴전까지 5경기 성적이 1승1무3패다. 월드컵 개막 직전 오스트리아에 0대1, 벨기에에 0대5로 연패하자 튀니지 축구 팬들 사이에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튀니지는 곧바로 후임 감독을 발표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끌고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를 격침한 경험이 있는 에르베 르나르(프랑스)가 선임됐다. 21일 일본과의 2차전이 첫 시험대다.

월드컵 때 감독을 내쫓는 것은 과감한 결단일까, 경솔한 판단일까. 남은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월드컵 대표팀을 맡았다가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전격’ 경질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월드컵 축구 대표팀 감독은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극한 직업’으로 통한다.

공교롭게도 튀니지의 새 감독 르나르 역시 월드컵 개막 두 달 전 갑자기 경질된 인물이다. 2023년 사우디 감독에서 물러났다가 1년 만에 복귀한 르나르는 사우디가 이집트와의 친선전에서 0대4로 완패하는 등 부진하자 지난 4월 전격 해임됐다. 게오르기오스 도니스(그리스) 감독을 맞은 사우디는 16일 우루과이전에서 선전하며 1대1 무승부를 거뒀다.

가나 대표팀을 이끌고 북중미 월드컵을 준비하던 오토 아도(독일) 감독은 지난 3월 A매치 4연패 부진을 사유로 경질됐다. 비슷한 시기에 모로코의 왈리드 레그라기(프랑스) 감독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결승에서 패한 뒤 들끓는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번아웃’을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우즈베키스탄 티무르 카파제 감독은 더 억울한 경우다. 팀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고도 ‘이름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작년 10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탈리아 출신 스타 감독 파비오 칸나바로가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라무시처럼 월드컵 조별리그 도중 감독직에서 물러난 사례도 간혹 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감독의 무덤’이었다. 당시 사우디의 파헤이라(브라질), 한국의 차범근, 튀니지 헨리크 카스페르차크(폴란드) 감독이 각각 조별리그 2연패 후 경질됐다. 이들 3국은 감독 경질 후 마지막 3차전은 나란히 무승부를 거뒀다.

월드컵 때마다 감독들이 ‘파리 목숨’ 신세가 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에 대해 축구 전문가들은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국가대표팀은 클럽팀에 비해 훈련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조직력 측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지고,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해 과감하고 창의적인 전술을 시도하기가 어렵다. 이런 가운데 몇 차례 부진한 경기가 이어지면 가장 먼저 ‘감독 교체’를 응급 처방으로 떠올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월드컵 개막 전 적잖은 감독이 팬들의 비판 여론과 교체 압박에 시달렸다. 첫 경기에서 남아공을 2대0으로 누른 공동 개최국 멕시코도 예외가 아니다.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40대 축구 팬 미겔 앙헬씨는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은 공격 전술이 없다시피 해 그를 싫어하는 팬이 많다”고 했다.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끈 한국 홍명보, 미국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아르헨티나) 감독도 비슷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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