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우고 싶다" 눈물 글썽인 대통령…K9 자주포로 동반자된 이집트
2026.06.16 14:01
2021년 이집트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필자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이집트 방문을 건의했다. 당시 서욱 장관 역시 방산 수출과 국방협력 확대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필자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2021년 8월 말 함께 이집트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문화재청도 찾았다. 주 이집트 대사로부터 들었던 알렉산드리아 문화재 보존 문제 때문이었다. 이집트는 5,000 년 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였다. 그러나 정작 귀중한 문화재들은 보존 예산 부족으로 훼손되고 있었다.
문화재 보존·산업 협력...이집트의 국가 프로젝트였던 K9 자주포 사업
필자는 문화재청장에게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활용한 문화재 보존 지원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지원이 K9 자주포 수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장은 즉시 국제협력과장을 불러 필요한 조치를 지시했고, 향후 국방 장관과 방위사업청장의 이집트 출장에 동행하여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도록 했다.
이후 필자는 방사청 국제협력국장과 사업관리본부장 등 핵심 인력들을 수시로 이집트에 파견해 협의를 발전시켰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그들은 협상 진행 상황과 상대방의 의도를 상세히 보고했고, 필자는 다음 전략을 함께 논의했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 사업은 결국 대통령의 결단과 이집트 국가원수의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실무 협상만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규모만 2조 원대에 이르는 대형 사업이었다. 더구나 이집트 측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K9 자주포 구매가 아니었다. 현지 생산시설 재가동, 산업·기술·국방 협력 확대가 결합된 사실상의 국가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K9 자주포 수출 계약엔 양국 정상간의 결단과 설득이 필요했다
출장 이후 국제협력국장과 여러 차례 전략 토의를 하면서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5,000 년 전에 피라미드를 만든 나라라면, 그 시대에도 수많은 계약과 협상, 조직 운영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을 것이다." 필자와 국제협력국장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집트인들의 협상 능력은 이미 5,000 년의 역사가 농축된 DNA 수준"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농담처럼 시작한 이야기였지만, 실제 협상 과정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상당히 비슷했다. 이집트 측은 절대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상대의 의도와 조건을 끝까지 확인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 했다.
기독교 신자인 국제협력국장과 협상 전략을 논의하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문득 성경 속 출애굽기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수많은 재앙 이후에도 쉽게 결단하지 못하던 파라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던 이집트 권력의 모습이었다.
필자는 그 무렵부터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결국 대통령 차원의 결단 단계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집트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이집트는 경제적 여건상 2조 원 규모의 방산사업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통령 차원의 정치적 결단과 명분이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동시에 필자의 머릿 속엔 협상의 마지막 국면이 어느 정도 그려지기 시작했다. "막판에는 한번쯤 협상 테이블을 뒤집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집트의 협상 스타일을 보며 필자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점 때문에 더욱 확신이 생기기도 했다. 이 정도로 치열하게 협상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사업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집트를 방문해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다
2021년 8월, 필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요 방위사업과 방산수출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방위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라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주요 방위력 개선사업의 추진 방향은 방사청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방사청장은 분기마다 대통령에게 주요 사업을 직접 보고했고, 이 자리에는 국방부 장관도 함께 참석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개별 무기체계가 갖는 군사적 의미뿐 아니라, 첨단기술 확보와 산업적 효과, 방산수출 가능성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누구도 대한민국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강한 군사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자주 강조했고, 무기체계 개발 과정에서 확보되는 기술과 산업적 파급효과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질문을 하곤 했다. 대통령의 그런 관심과 지원 덕분에 방산수출 현장을 보다 자신 있게 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보고를 마치면 종종 상춘재 오찬 자리에서 추가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가곤 했다. 그리고 2021년 8월 보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찬 도중 필자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건의를 꺼냈다. “대통령님, 연말쯤 이집트 방문을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절차상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건의였다. 정상외교는 원칙적으로 청와대 안보실과 외교라인을 중심으로 검토되고 결정되는 사안이다. 방사청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특정 국가 방문을 건의하는 것은 결코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필자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자칫하면 안보실 등 청와대 내부 관계자들에게 매우 부담스럽게 비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집트 K9 자주포 수출 사업은 단순한 방산 계약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최초의 아프리카 대형 방산시장 진출이자, 아프리카 핵심국가와의 전략적 협력 확대 가능성이 걸려 있는 사업이었다. 무엇보다 사업 규모와 성격상 결국 엘시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문 대통령에게 그 점을 간략히 설명드렸다.
“이 사업은 이집트 대통령이 결단이 있어야 하고, 단순 수출을 넘어 향후 한-이집트 국방협력 전체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사업입니다. 엘시시 대통령의 설득은 대통령님께서 해주십시오.” 그리고 다음 주로 예정돼 있던 서욱 국방부 장관의 이집트 방문 계획도 함께 설명드렸다. 옆에 있던 서욱 장관 역시 “다음 주 방사청장과 함께 이집트를 방문해 양국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그 순간, 배석하고 있던 청와대 안보실장이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필자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필자 역시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예상보다 훨씬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생각하던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사업 규모를 보면 결국 이집트 대통령 설득이 필요하겠구먼.” 그리고 안보실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보실장은 이집트 방문 건을 한번 잘 검토해 보세요.” 이어 서욱 장관에게도 말했다. “이집트 출장 잘 다녀오십시오.” 그 순간 필자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약 대통령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오찬 이후 안보실의 시선과 반응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 논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국방 장관의 첫 이집트 공식 방문
2021년 8월 말, 필자는 서욱 국방부 장관과 함께 다시 이집트 출장길에 올랐다.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첫 이집트 공식 방문이었다.
1차 출장 이후 필자는 K9 자주포 수출 협상이 단순한 실무 협상 단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집트가 K9 자주포 사업을 단순 무기 구매가 아니라 산업 재건 프로젝트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었다. 특히 카이로 외곽의 생산시설 재가동과 고용 창출, 방산 기반 복원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따라서 국방장관 방문을 통해 양국 관계를 단순 방산 거래 수준이 아니라 국방 전반의 협력 관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욱 장관은 방산 수출과 국방협력 확대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결국 대한민국 국방장관 최초의 이집트 방문이 성사되었다.
카이로 도착 직후부터 이집트 측 분위기는 1차 출장 때와 달랐다. 이집트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이집트 관계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격상시키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 상징적 일정이 엘시시 대통령 면담이었다. 면담에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내각 주요 각료들이 배석했고, 우리 측에서는 서욱 장관과 홍진욱 대사, 그리고 필자가 참석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면담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강하게 나타냈다. 그는 197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서 이집트를 배우기 위해 대표단이 찾아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이집트가 한국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또한 이를 계기로 이집트에 대한 한국의 투자와 산업 참여가 확대되기를 희망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K9 자주포 사업뿐만 아니라 전기차, 무인항공기(UAV), 전차,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등 다양한 분야를 언급하며 한국과의 협력을 산업 및 기술 분야 전반으로 확대하기를 희망했다. 특히 2016년 한국 방문 당시 전기차 협력 의사를 밝혔는데 아직 한국 측 반응이 충분하지 않은 점에 대해 아쉬움도 표시했다. 또한 K9 자주포 사업 협상 과정에서 수출금융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들이 직접 자신에게 전화해 금융 조건과 이자율을 설명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경쟁국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강조했다.
엘시시 대통령 면담을 마친 뒤 하나의 판단이 보다 분명해졌다. 결국 마지막 협상 단계에서는 이집트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동시에 독일과 프랑스는 실질적인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판단도 생겼다. 엘시시 대통령이 직접 경쟁국의 조건을 설명하면서도 한국과의 협력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방장관 방문 자리에 내각 주요 인사들을 모두 배석시키고 한국과의 협력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이상, 이집트 협상 실무팀도 단기간 내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으로 보였다.
그래서 내린 판단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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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814230002796)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723220002438)
강은호 전북대 교수(전 방위사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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