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AI 시대와 돌봄능력 [세상읽기]
2026.06.16 18:46
김희강 | 고려대 교수(행정학)
이재명 대통령이 차기 국무총리로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명하였다. 정부는 지명자를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초격차 디지털 기술을 이끌 적임자로 보고, 대한민국의 미래 명운을 여기에 걸겠다는 의지를 구체화하였다. 국가 전체가 거대한 인공지능 프로젝트로 면모를 일신하려는 모양새다. 흙바닥이 아스팔트가 되고 초가집이 철골과 시멘트로 탈바꿈하던 산업화 시절의 압축 성장처럼, 오늘날 한국 사회는 온 나라의 역량이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같은 기술 대전환의 열풍은 공교육 현장으로도 고스란히 밀려들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들은 이념적 성향을 막론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인공지능 디지털 교육’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교실마다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를 전면 도입하고, 학생들에게 ‘1인 1디바이스’를 보급하며, ‘인공지능 맞춤형 학습 튜터’를 배치하겠다는 약속들이 앞다투어 쏟아졌다. 이제 학교 역시 지식을 나누고 인성을 함양하며 인간관계를 맺는 인격 도야의 공동체라기보다, 첨단 기술을 익히는 디지털 실습장이 된 듯하다.
실제로 초등학교 정보 수업을 34시간 이상으로, 중학교는 68시간 이상으로 기존보다 두배 가까이 확대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공교육의 책무가 디지털 기술 문해력 쪽으로만 급격히 경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디지털 기기와 기술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일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교실 안의 아이들이 각자의 디바이스 화면에 매몰되다 보면, 교사와 친구의 눈을 바로 맞추고 표정을 읽으며 음성을 나누는 신체적·감정적 대면 교류는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인간을 인간답게 상대하고 관계를 맺는 본질적인 역량을 잠식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교실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 시민이 갖춰야 할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와 태도의 문제다.
비대면, 무인, 디지털 기술이 강조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균형 잡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해갈수록 정작 인간과 인간이 직접 마주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 환자, 장애인, 고령자처럼 누구나 거쳐왔고 앞으로 마주해야 할 상대적 약자와 관계할 줄 아는 능력, 즉 돌봄능력이 교육적으로 고려되고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돌봄이 오랫동안 여성의 몫이거나 가정 안의 일로 여겨져온 탓에, 공교육의 의제로 진지하게 다뤄진 적이 없는 것이 아닐까. 노동하는 인간을 무인단말기가 대체하고, 대면보다 스크린 속 시선을 선호하는 이 세태일수록, 역설적으로 취약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돌봄능력이야말로 인공지능 대전환을 넘어 인간 보편의 능력이자 도덕적 과제로 교육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돌봄능력이 도덕적 과제에 그치지 않고 민주적 시민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은 장자크 루소의 통찰에서도 확인된다. 루소에 따르면, 돌봄이란 두뇌나 말로 끝나는 지시가 아니라 이웃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약자들을 직접 접하고 공감하며,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몸소 깨닫는 과정이다. 돌봄을 실천할수록 약자에 대한 우월의식에 빠지지 않고 타인과 동등한 선상에서 자긍심을 체감하게 되며, 이것이 평등 지향의 민주적 에토스를 심어준다고 루소는 보았다. 또한 돌봄은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도 이질적인 타인이었을 돌봄제공자를 긍정하게 함으로써 자기애를 타인에게 확장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경험은 사회적 관계로 확장될 수 있는 인간애의 형질을 형성한다. 돌봄은 제공자와 수혜자 모두를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시민으로 길러내는 실천인 셈이다.
따라서 공교육 현장에서 디지털 문해력보다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인간적 역량은 다름 아닌 돌봄능력이다. 이는 누군가를 수발하고 시중드는 기능적 차원을 넘어, 인간의 유한성을 성찰하고 상호의존성을 체득함으로써 서로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적 자질을 의미한다. 국가가 인공지능 초격차를 위해 구조를 개편하듯, 미래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 체계 역시 이러한 돌봄의 가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직접 상대하는 역량은 스크린 속 인간을 상대하는 역량보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도 앞서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대전환 앞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디지털 역량이라기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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