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떠난 자리, 홈플러스 살릴 유일한 방법
2026.06.16 17:21
홈플러스 청산은 대량 실업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붕괴라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므로 회생의 방안을 여러 각도에서 찾아보고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정부의 역할 뿐만 아니라 직원 인수 방안까지 포함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사회적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기자말>
| ▲ 홈플러스 무기한단식 33일 차 홈플러스 무기한 단식농성을 진행중인 노동자 4인이 33일차 농성 시작을 알리고 있다. |
| ⓒ 홈플러스살리기 시민연대 |
미국에서 가장 큰 식료품체인인 월마트의 창립자 샘 월튼은 자녀들에게 기업을 승계했다. 상장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얻은 월튼 일가는 월마트의 지배적 주주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유지할 것이다. 월마트에 대한 평판은 엇갈린다. 소비자에게 값싼 물건을 제공하고 주주에게는 고배당 정책을 고수한다. 하지만 월마트를 '양질의 일자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임금은 경쟁사보다 낮고, 복리후생도 빈약하다. 종업원들의 이직율도 높다. 월마트가 입점하는 곳에서 많은 주변 상점들이 폐업을 한다. 이러한 모습을 미국 언론에서는 '월마트화(Walmartization)'라고 표현한다.
한편 영국에 본사를 둔 테스코는 2015년 홈플러스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했다. 당시 홈플러스노조는 인수자가 사모펀드라는 사실에, 그것도 상당한 차입을 통해 이뤄진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했다. 노조는 당시부터 "점포 매각과 임대 전환이 이어질 수 있다", "수익성이 낮은 점포 정리와 인력 감축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 "노동조건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후 실제로 홈플러스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점포와 부동산 매각으로 4조 원 이상의 현금을 조달했지만, 그 대부분은 차입금 상환에 사용됐다. 알짜 자산이 팔려나가는 동안 임대료 부담은 쌓여갔고, 경쟁력은 그 속도로 빠져나갔다.
한때 최대 146개였던 매장은 현재 104개 중 37개 점포가 폐점을 추진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운영 중인 매장은 67개다. 직원 임금은 체불됐다. 그리고 지금, 노조에서는 MBK가 침몰하는 홈플러스를 더 이상 살릴 의지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미국의 슈퍼마켓 체인 퍼블릭스(Publix)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창립자 조지 젠킨즈는 자신의 주식을 꾸준히 회사 종업원들에게 매각했다. 그 결과 퍼블릭스는 오늘날 미국 최대 규모의 종업원소유 기업이 되었다. 퍼블릭스는 매년 포춘지가 선정하는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명단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다를까. 궁금해진 포춘지 기자는 2013년 직접 매장 유니폼을 입고 계산대를 보조하고, 진열을 하고, 고객을 안내하며 5일을 보내기로 했다. 말하자면 '체험형 취재'였다.
그가 놀란 것은 매장의 규모도, 상품의 종류도 아니었다. 매장에서 직접 일하며 경험한 직원들의 태도와 행동이었다. 퍼블릭스의 약 26만 명 직원들은 단순히 월급을 받는 종업원이 아니라, 회사 지분의 약 80%를 보유한 공동소유자들이다. 회사가 성장하면 그 결실이 곧 자신의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회사 주식 5억 원을 보유한 캐시어가 고객을 대할 때의 눈빛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그 가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안다. 물건 위치를 물으면 손가락으로 방향만 가리키는 대신 직접 데려다준다. 문제가 생기면 규정부터 찾기보다 해결 방법을 먼저 찾는다. 이러한 태도는 강요된 것이 아니라, '소유'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소유주라는 것은 장기 근속한 직원이 우리 돈으로 15억 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한다는 사실로 확인된다. 회사에 오래 다니면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르겠지만, 여기서는 그 이상의 무엇, 회사의 지분이 쌓인다. 회사의 일부가 정말로 '내 것'이 된다.
이처럼 기업의 성장과 책임이 함께 갈 수 있다는 퍼블릭스의 사례는 거창한 경영 이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창립자는 위험과 고난을 이겨가며 회사를 성장시켜왔기에 그의 공헌은 경제적으로도 평판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가 떠나야 할 때, 우리는 아주 단순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회사는 누구의 것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직원소유, 이상이 아닌 검증된 현실
| ▲ 무기한 단식농성 33일차 무기한 단식농성을 진행하던 홈플러스 노동자가 쓰러져 응급 구급대에 검사를 받고 있다. |
| ⓒ 홈플러스살리기 시민연대 |
퍼블릭스는 ESOP(이솝)이라 부르는 종업원기업소유제도를 통해 전 임직원이 공동으로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다.
ESOP을 통해 소유주가 전체 직원에게 회사를 매각하면 일종의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상속이나 사모펀드 매각도 있지만, 직원에게 매각하도록 경제적 이익동기를 제공하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판매자만 있다고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는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직원들은 개인 자금으로 인수자금을 조달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가 차입을 통해 인수를 추진하고, 회사는 수익으로 그 빚을 갚아가면서 지분을 직원에게 나눠주는 방식이다. 잘 짜여진 제도 덕분에 차별없이 전체 직원이 공정한 비율로 지분을 소유하게 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6358개 기업에서, 1490만 명의 직원이 이 제도를 통해 자기 회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반세기 전에 ESOP을 법제화하고 수천 개 기업에 이 제도가 뿌리를 내렸지만, 여전히 승계 기업의 극히 일부만이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2018년, 2021년, 2022년에 각각 종업원소유를 활성화기 위한 지원법들이 통과되었고, 2025년 10월 연방 상원은 추가로 직원소유를 지원하는 두 개의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추가로 6개의 법안이 현재 의회에 계류중이다.
정치적 갈등이 역사적으로 지금처럼 심각할 수 없는 미국 정치에서 이처럼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의하는 의제를 찾기란 쉽지 않다. 보수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주인 의식을 고취하고 노사를 협력 관계로 만들어 성과를 증진하는 시장 친화적 대안이다. 진보적 관점에서는 자본주의적 지배 구조가 개선되고 노동자가 기업 소유주로서 실질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구조다. 좌우 양쪽의 논리가 동시에 성립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힘이다.
영국은 이에 상당한 자극을 받았다. 2014년 주요 3당 합의로 영국식 ESOP이라 할 수 있는 EOT(Employee Ownership Trust, 종업원소유신탁)를 도입했고, 2024년 말 기준 1922개 기업이 종업원소유 기업으로 전환했다. 제도 도입 후 10년간 영국에서 이뤄진 전체 기업 승계의 약 6%가, 2024년에는 한 해에만 약 560개의 기업이 직원소유 기업으로 전환됐다.
한국 사례 이미 존재한다
| ▲ 후송되는 단식노동자 홈플러스 사태에 정부개입을 촉구하며 33일차 단식농성중인 홈플러스 노동자가 119구급대에 응급 이송되고 있다. |
| ⓒ 홈플러스살리기 시민연대 |
불행히도 한국에는 ESOP에 견줄 만한 제도가 없다. 우리사주제도가 있지만 기업 인수의 수단으로 활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소유주가 직원에게 매각하도록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세제 혜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회사가 인수 자금을 차입하고 상환하도록 하는 제도도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의 기업승계 정책이 제시한 경로는 가업상속지원제도처럼 가족에게 넘기거나 M&A를 활성화해 외부에 파는 것으로만 설계되어 왔다. 직원소유라는 제3의 경로는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제도의 공백 속에서,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7년, 종합 엔지니어링 기업 한국종합기술(KECC)의 직원들이 회사를 샀다. 상장사 최초의 직원소유 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직원들이 상장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한국 기업 역사에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ESOP 같은 제도도 없고, 정부 지원도 없었지만, 직원들은 스스로 길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도, 고용도 인수 당시에 비해 2배 가까운 성장을 보였다. 영화 같은 인수 성공은 어쩌면 출발에 불과했다. 소유의 변화가 민주적 기업 운영으로 이어졌고, 위기가 발생하자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애사심을 보이며, 진짜 내 회사에서 일하는 문화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사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하나는 한국에서도 직원인수가 가능하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얼마나 험난한 과정이었는지다. 제도가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기업에서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이 길이 열렸을 것이다.
2022년 기준 60세 이상 CEO가 이끄는 중소기업은 약 236만 개다. 이 가운데 28.6%인 67만5천 개가 후계자 부재로 지속 경영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용효과가 큰 제조업으로 한정하면 약 5.6만 개의 후계자 부재가 추정되고 있다. 창업자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회사는 진정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신속한 대응이 없으면 이들 기업의 폐업 증가로 인해 대량실업과 지역경제 위축 등 문제가 확산될 수 있다.
2015년 테스코가 홈플러스 매각을 결정했을 때 직원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없었던 것은 노동계를 포함해 우리 사회가 직원소유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이유가 크다. 여기에는 직원인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의 부재라는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함께 직원소유를 더 강화하는 법을 만든 바로 그 시점에, 한국에서는 직원소유 제도의 부재로 인해 1만6천 명의 일터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변화의 신호가 감지된다. 지난 4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노총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타 이유로 회사가 사업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가 이를 인수해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이를 권장했으면 한다. 노동계도 노동자의 사업 인수를 논의해주면 어떨까 싶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노동자 기업인수를 국가 의제로 명시적으로 제안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기업승계에서 종업원인수의 경로를 정부에서 마련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청산이 낫다? 계산되지 않은 비용 '3조5천억'
| ▲ 홈플러스 무기한 단식 노동자 청와대앞 노숙농성 홈플러스 사태해결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중인 노동자들이 청와대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
| ⓒ 홈플러스살리기 시민연대 |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직 ESOP 같은 종업원기업소유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 2025년 11월 홈플러스 인수 본입찰에 응찰한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농협도, 이마트도, 쿠팡도 고개를 저었다. 홈플러스익스프레스는 당초 3천억 원으로 거론됐으나 결국 1206억 원에 하림그룹 계열 NS홈쇼핑에 매각됐다. 결국 회생계획안은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홈플러스 대형마트 본체는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 기업이 되었다.
법원이 지정한 조사위원 삼일회계법인은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를 약 3조7천억 원으로, 계속기업가치(2조5천억 원)보다 약 1조 2천억 원 높게 평가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회사를 굴리는 것보다 정리하는 편이 낫다는 숫자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청산뿐인가?
그러나 이 계산에는 빠진 것이 있다. 직원 1만 6천 명의 실업급여와 퇴직금, 4600여 협력업체의 미수금 손실과 연쇄 도산, 전단채 개인투자자 2075억 원의 피해, 국민연금 1조 1천억 원의 투자금 증발, 점포 주변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 등 사회가 떠안게 될 부담비용을 합산하면 보수적으로도 3조 5천억 원 이상이다. 채권자가 1조 2천억 원을 더 가져가기 위해, 사회가 그 3~4배를 잃는 구조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계속 기업 유지가 여전히 하나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 불편한 진실 하나를 짚고 가야 한다. 지금의 ESOP 제도를 설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수천 개의 직원인수 사례를 경험한 코리 로젠은 "노동자 인수를 위기 기업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위기 기업을 직원에게 넘기면 누적된 부채와 악화된 경영 환경의 위험이 고스란히 직원들 어깨로 옮겨간다. 인수 후 회생에 실패하면 직원들은 일자리뿐 아니라 인수 과정에서 투입한 자원과 시간과 희망까지 모두 잃는다.
직원소유기업이 기존형태의 동종 기업에 비해 기업 내 갈등이 줄고, 생산성이 높고, 회복력이 좋아진다는 사실이 직원소유기업이 기업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로젠이 말한 것은 위기 상태의 기업을 그대로 직원에게 떠넘기지 말라는 것이지, 기업을 먼저 살린 뒤 직원이 인수하는 길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결코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 비유해 볼 수는 있다. 만성 질환에는 장기 처방이 효과적이지만,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응급 처치다. 지금 홈플러스는 응급실에 있다.
솔로몬의 지혜
| ▲ 홈플러스 무기한 단식 노동자 청와대앞 농성 홈플러스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홈플러스 무기한 단식 농성자들이 홈플러스 사태해결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
| ⓒ 홈플러스살리기 시민연대 |
지금 홈플러스가 놓인 선택지를 따져야 한다. 외부 인수자가 나설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청산은 채권자에게 1조 2천억 원을 더 돌려주지만 사회에 3조 5천억 원 이상의 비용을 전가한다. 현 상태의 방치는 매달 수백억 원의 운영 적자를 누적시키며 기업의 생명을 앗아간다.
이 세 가지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라면, 네 번째 길을 묻는 것이 정당하다. 직원인수가 최선의 조건이 아닌 것은 맞다. 그러나 다른 모든 대안이 더 나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가능성일 수 있다.
직원인수가 의미를 가지려면 인수 시점에 기업이 최소한의 생존 가능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납품이 재개되고, 매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고객이 돌아와야 한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꺼져가는 기업의 불씨를 되살리는 것이다. 기업이 살아나야 인수를 논할 수 있고, 인수를 논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직원소유를 설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기업을 살릴 동기가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최대 주주 MBK는 이미 뒤를 돌아보고 있다. 채권자들은 담보를 회수하면 그뿐이다. 외부 자본은 수익성 계산이 맞지 않으니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반면 홈플러스가 청산되면 삶 자체가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 본사, 매장, 물류센터, 20년을 일한 바로 그 일터가 사라지는 사람, 이 점포 하나로 생계를 잇는 납품업체 사장, 동네 홈플러스가 없으면 장을 볼 곳이 마땅치 않은 지역 주민이다.
임금이 밀려도 매장을 지키고, 받지 못한 납품 대금에도 거래를 이어가고, 거리로 나와 단식을 한다. 이것은 단순한 생계 유지의 몸부림이 아니다. 이 기업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헌신이다. 기업을 살릴 길을 제시하면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기업이 정말 위기에 몰릴 때 회사에 끝까지 몸담고 버티는 사람을 진정한 소유주라고 본다면, 그게 노동자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논의를 멈추어선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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