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월드컵 열기 식은 자리에 남아야 할 것들
2026.06.16 05:12
정몽규 홍명보 비난도 사라져
손흥민 인터뷰 패싱에 논란이
쉽게 흥분 않는 ‘품격’ 챙겨야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행동이 문제였다. 비리 축구인 기습 사면 등이 논란을 불렀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도 문제였다. 절차가 불공정했고 과정도 불투명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정몽규 물러나라’, ‘홍명보 사퇴하라’. 소셜미디어(SNS)가 촛불처럼 타올랐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정 회장은 국회로 불려 왔다. 홍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어떤 질책과 비난이든 받아들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됐든’ 월드컵이 시작됐다. 지난 12일 체코전에서 황인범이 동점골을 넣었다. 오현규는 역전골을 꽂았다. 짜릿한 2-1 승리에 비난은 순식간에 환호로 바뀌었다.
사냥꾼들은 다른 사냥감을 찾았다. 이번엔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었다. 체코전에서 6개의 슈팅을 쏘고도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후반 24분 교체됐다. 경기 후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채 버스에 올랐다. 패배의 순간에도 주장으로서 마이크 앞에 섰던 그였기에 이번 ‘침묵’은 이례적이었다. 곧 비난의 불씨가 됐다. “주장이 인터뷰도 안 해?”, “태도가 저게 뭐야?” 팬들은 마른 장작처럼 불타올랐다.
다음 날 아침 기자 이메일함에 이메일 하나가 꽂혔다. 손흥민의 태도를 지적하는 모 축구 게시판 일동의 ‘성명서’였다.
손흥민이 2014년 월드컵 벨기에전 패배 후 펑펑 울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당시 스물한 살 막내였던 그는 이제 주장으로 네 번째 월드컵 무대에 섰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세대교체가 이어질 터다. 서른네 살인 그가 다음 월드컵에서도 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터뷰를 거절한 것도 불성실해서가 아니어서라고 짐작한다. 마지막일지 모를 월드컵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향한 자책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사안의 맥락을 파악하려면 여러 정황을 종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판단을 보류해야 마땅하다. ‘인터뷰 거절’이라는 단편적인 사실과 짧은 영상만으로 즉결 심판을 내릴 수는 없다. 손흥민의 리더십 부족을 탓하는 이메일에 화가 난 이유다. 그대가 단지 팬이라는 이유만으로 집단 행동을 하고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가.
축구는 유독 휘발성이 강하다.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은 더욱 그렇다. 2002년 4강 신화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을 내쳤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1무 2패의 충격으로 홍명보 감독을 경질했다. 2022년 카타르에서 포르투갈을 이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은 역적에서 영웅이 됐다.
경기 결과는 팬덤의 발화점이다. 이기면 높은 온도로 끓어오르고, 지면 차갑게 떨어진다. 달궈지는 것도, 식는 것도 빠르다.
오는 19일 멕시코전,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이 이어진다. 체코전에서 이겼던 터라 모두가 다음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기대한다. 멕시코는 객관적으로 쉽지 않은 상대다. 그래도 우리 상승세가 워낙 강해 ‘만에 하나’를 바랄 수 있다. 남아공은 피파 랭킹이 우리보다 낮기에 무난하게 이길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멕시코에 기대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런 기대를 할 터다.
절대 강팀은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브라질, 네덜란드, 스위스가 이번 월드컵에서 당연히 이길 줄 알았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건 축구라서다.
한국 축구가 성숙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월드컵이 끝나면 정 회장의 잘못을 제대로 따져야 한다. 불투명했던 홍 감독 선임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손흥민에 대해서는 진심 어린 해명을 들어 봐야 한다.
다음달 19일 월드컵 결승전까지, 아니 정확하게는 한국팀이 더이상 오를 수 없는 때가 되면 부글부글 끓던 관심도 식을 것이다. 열기가 식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다만 그 바닥에 무언가가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품격’이길 간절히 바란다.
김기중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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