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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5승 경마황태자 돌연 은퇴한 까닭…“심장이 뛰지 않았기에”

2026.06.16 07:10

경마감독으로 새출발 문세영 기수
26년간 해마다 79승 거두며 질주
“무릎·허리 성한 곳 없어도 달려
지난해 큰 부상 이후 은퇴할 결심”


국내 경마 기수 최다승 2위 기록을 보유한 문세영이 승용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다음달 1일부터 조교사로 새출발한다. [한국마사회]
한 해 평균 79승. 국내 경마에서 누구보다 많은 우승을 거두면서 기록을 써 내려가던 남자가 있었다. 산술적으로 2~3년 후, 국내 경마에서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대기록 경신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경주마에서 내려왔다. ‘경마 황태자’로 불리던 국내 간판 기수, 문세영(45)은 왜 돌연 은퇴를 선언했을까.

최근 경기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문세영을 만났다. 대기록 도전을 한창 하고 있을 시기에 오히려 ‘멈춤’을 선택한 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는 “매주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다 이제는 경주마에서 내려와 홀가분하고 정말 기쁘다”며 미소 지었다.

문세영은 지난달 3일 열린 경주를 끝으로 25년간 이어 온 기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당시 치러진 1경주에서도 그는 우승을 차지하면서 개인 통산 2055승을 기록했다. 이날 메인 경주였던 제29회 코리안더비를 6위로 마친 그는 “마지막 경주 때는 결승선을 통과하고서 경주로를 한 바퀴 도는데 나를 응원하던 팬들, 그리고 좋은 경주를 위해 도와준 관계자들이 눈에 보이더라. 그분들께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다.

2055승을 기록한 문세영은 경마 기수 최다승 1위를 기록하고 지난해 정년 은퇴한 박태종(2249승)의 기록을 깰 유력 후보로 꼽혔다. 2001년 기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3년 최단기간 통산 100승을 거뒀고, 2008년에는 한 해에만 128승을 거뒀다. 박태종이 38년간의 기수 활동 동안 한 해 평균 59승을 거뒀다면, 문세영은 이보다 더 많은 평균 79승을 거둬 거침없는 우승 행진을 이어 왔다. ‘경마 대통령’ 박태종의 뒤를 이어 문세영에게 ‘경마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은 이유다.

그랬던 문세영은 지난해 12월 큰 부상을 당했다. 경주 도중 낙마하는 사고로 흉추 골절 부상을 입었다. 그는 “또 다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열심히 재활했지만, 어느 순간 다시 말을 타도 전처럼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1주일 정도 은퇴한 동료, 조교사, 트레이너, 가족들과 상의했고 더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문세영 기수가 지난 2019년에 열린 국내 메이저 경마 대회 코리아컵에서 우승에 성공한 뒤, 경주마 문학치프와 함께 경주로를 질주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늦었던 첫 승, 기수 성장 원동력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고 자라 청소년 시절 경량급 태권도 선수 생활을 했던 문세영은 고교 체육 교사의 권유로 경마 기수에 도전했다. 문세영은 “사람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게 첫 번째 기회였다면, 경주마와 함께한 건 두 번째 기회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백전백승’ 기수였지만 의외로 첫 우승을 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는 “기수 동기 중에 첫 경주에서 우승하거나 레이스만 펼치면 우승하는 기수도 있었다. 반대로 난 첫 우승하기까지 5개월이나 걸렸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늦게 거둔 ‘첫 승’은 ‘경마 황태자’ 문세영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 그는 “동기 20여 명과 치열한 경쟁을 했다. 남들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살아남으려면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야 했다”고 말했다. 철저한 자기 관리도 우승의 뒷받침이 됐다. 경주를 앞두고 주 1회 등산을 하고, 따로 산악 구보를 하는 루틴을 기수 생활 26년 내내 지켰다. 그는 “경주 전날에는 내가 머무르는 공간을 늘 깨끗하게 하고 마음가짐을 다졌다. 루틴이 안 지켜지면 불안해하는 스타일이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면 경주에서 지더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기수 생활 내내 부상과도 싸웠다. 문세영은 “턱을 크게 다쳐 음식물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쇄골, 무릎, 발목, 허리 등 성한 곳이 없었다. 그래도 잘해서 성공하겠다는 책임감 하나로 아픔들을 이겨냈다”고 밝혔다.

문세영은 해외 무대에 도전했던 순간을 기수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2024년 그는 세계 최고 경마 무대로 꼽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향했다. 두바이월드컵 예선에 두 차례 섰던 그는 “각국의 대표 기수들과 뛰어난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춘 두바이에서 경주를 했던 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으로 기억된다”면서 “후배 기수들도 과감하게 해외 진출에 도전하면 좋겠다. 그래야 국내 기수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판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경마 기수 최다승 2위 기록을 보유한 문세영이 승용마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다음달 1일부터 조교사로 새출발한다. [한국마사회]
◆남들도 부러워할 마방 구축 꿈

문세영은 “남들이 나보고 ‘경마 황태자’라 하지만, 그 수식어에 내가 갖고 있는 지분은 10%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90%를 채워준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면서 “모두 함께한 덕분에 잘 뛰어놀다 간다”며 웃어 보였다. 경주마에서 내려왔지만 문세영은 이제 경주마 옆에서 ‘제2의 인생’을 곧장 이어 간다. 오는 21일 기수 공식 은퇴식을 하는 문세영은 다음달 1일 조교사로 공식 활동을 시작한다. 경주마를 관리하고 사육하면서 조교 역할을 맡는 조교사는 경마에서 ‘감독’과 같은 포지션이다.

문세영은 “조교사 활동을 시작하는 나이대가 남들보다 늦은 편”이라면서도 “기수 첫 승이 늦었듯, 조교사를 하면서도 조금씩 내 팀을 가꿔 가며 정말 단단한 조교사가 되고 싶다. 훗날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마방(마구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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