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검사로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 황금기’ 찾는다
2026.06.16 02:44
원인 단백질 아밀로이드 쌓여도
타우 아직 넓게 안 퍼졌으면 적기
PET 검사 없이도 효과 극대화
혈액 내 ‘p-tau217’이 중요 지표
전체의 70% 안팎인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진행을 늦추는 혁신적 치료제가 등장한 후 진료 현장에선 신약 치료의 최적기를 찾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미 국내에도 보급돼 있는 레카네맙이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도나네맙 같은 치료제는 원인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약으로,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경도 인지장애(치매 전단계)와 경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단, 고가의 아밀로이드 PET 검사 혹은 신체 부담이 큰 뇌척수액 검사로 뇌에 아밀로이드가 쌓여 있음이 확인돼야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엔 간단한 혈액 검사로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단계를 파악하고 항(抗)아밀로이드 신약의 치료 효과가 극대화되는 ‘치료 황금기’를 예측할 수 있다는 한·미 공동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의 핵심은 ‘아밀로이드는 이미 쌓였으나 타우는 아직 넓게 퍼지지 않은 시기’가 신약 치료의 황금기이며 이를 나타내는 중요 지표가 혈액 내 특정 단백질인 ‘인산화 타우217(p-tau217)’ 수치라는 것이다. 향후 국내 알츠하이머 치료제 사용 지침에 중요한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밀로이드는 불씨, 타우는 불길
알츠하이머병은 뇌 속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시간차를 두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행된다. 쉽게 말하면 아밀로이드가 ‘병의 시동을 거는 불씨’에 가깝고 타우는 신경세포 손상과 증상 악화를 더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불길’에 가깝다. 아밀로이드는 정상적으로도 만들어지고 제거되는데, 나이들거나 유전적 위험 인자, 대사·혈관 요인 등이 겹치면 뇌에서 제거가 되지 않아 서서히 쌓인다. 이 과정은 증상이 나타나기 15~20년 전부터 시작될 수 있다.
아밀로이드가 뇌에 쌓이기 시작하면 타우 단백질에 비정상적 변화(인산화)가 촉진되고 점차 신경세포 안에서 엉킨 형태로 축적된다. 타우 병리는 대개 기억 회로의 핵심부인 내후각 피질과 해마 주변에서 시작해, 변연계와 측두엽, 이후 대뇌 신피질 전체로 퍼진다. 이 타우가 넓게 퍼질수록 신경세포 손상, 뇌 위축, 인지 기능 저하와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조한나 교수는 15일 “병의 시작과 생물학적 진단에는 아밀로이드가 매우 중요하고, 실제 증상 발생과 진행 속도에는 타우가 더 직접적 관련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한나 교수팀은 최근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와 공동 연구를 통해 혈액 속 p-tau217 수치가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축적 단계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임을 밝혀내 국제 학술지(Alzheimer’s & Dimentia)에 발표했다.
p-tau217은 신경세포 안팎에 생긴 타우 단백질 조각이 뇌척수액을 거쳐 혈액으로 일부 이동하면서 측정된다. 혈액 속 농도는 ㎖ 당 피코그램(pg·1조 분의 1그램) 수준으로 매우 낮지만, 최근 초고감도 면역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밀 검출이 가능해졌다.
연구팀은 PET 검사와 혈액 검사를 모두 받은 237명(인지 기능 정상 60명, 경도 인지장애 98명, 치매 단계 79명)을 대상으로 알츠하이머 연구 표준 병기인 ‘아밀로이드 침착 단계’와 ‘타우 엉킴 단계’로 분류했다. 이후 혈액 내 p-tau217 수치가 이러한 PET 기반 병기들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평가하고 각 병기에 해당될 확률이 50%가 되는 구체적인 수치의 임계값을 도출했다.
혈액 검사, 1차 선별 도구로 활용
연구 결과, 혈액 속 p-tau217 수치는 아밀로이드 침착 단계와 타우 엉킴 단계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예측했다. 특히 초기 아밀로이드 축적을 감별하는 능력(AUC 0.96, 1에 가까울수록 정확)과 중등도 이상 타우 축적을 확인하는 능력(AUC 0.92)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였다. 즉, PET 검사를 받지 않고 혈액 검사만으로 환자의 뇌 속 병리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또 확률 기반 모델링을 통해 혈액 내 p-tau217의 범위가 약 1.895~5.077pg/㎖ 일때 치매 신약 효과가 가장 높은 ‘치료 황금기’임을 밝혀냈다. 이 범위에 속하는 환자는 뇌에 아밀로이드가 쌓여 있으나 타우 병리가 아직 초기, 중등도 단계에 있어 신약 치료 시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조 교수는 “이 단계는 아밀로이드가 쌓이기 시작했고 타우는 아직 대뇌 신피질 전체로 확산되기 전 상태”라고 말했다. 해당 수치가 5.607pg/㎖을 넘으면 아밀로이드의 광범위 침착 단계로 약을 써서 아밀로이드를 제거해도 인지 기능 보호 효과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또 11.364pg/㎖ 이상이면 타우가 신피질 전체로 넓게 퍼진 단계로, 이미 신경세포 손상과 인지 저하가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연구를 토대로 혈액 속 p-tau217 검사 결과를 치료제 사용을 위한 1차 선별로 활용하고 치료 황금기 범위에 드는 환자만 PET 검사로 확인하는 전략을 세우면 진료와 검사 효율을 높이고 환자 부담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 교수는 다만 “이번 연구는 ‘치료 황금기를 혈액 검사로 가늠할 수 있다’는 중요한 근거이지만 실제 임상 적용을 위해선 추가 검증과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 혈액 검사는 기억 저하 환자 중 알츠하이머병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빠르게 선별하는 1차 검사, 또 PET 검사가 꼭 필요한 환자를 가려내는 선별 도구, 치료 시기와 병의 진행 정도를 측정하는 정밀 도구 등 세 가지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치매학회도 조만간 혈액 생체지표 진단 가이드라인 및 이용 지침 등을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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