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간 전
미국에서 6개월 걸릴 일이 '여기'선 6주… 대표 '기술 관광지' 된 선전
2026.06.16 04:31
"드론 배달·로보택시 보자" 도시 꽉 채운 기술
줄 잇는 관광·출장에 기술 교육 학습장 역할도
선전시도 적극 홍보... 'APEC 관광↑'도 관심
'APEC 계기 관광 수요 늘까' 선전시, 적극 홍보
편집자주
'짝퉁'과 '탈취'만으로 중국의 첨단기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인공지능(AI)·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국 혁신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한국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짚어봤습니다.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상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 4월 선전으로 향하던 한국일보는 홍콩에 먼저 들렀다. 항공편이 많은 홍콩으로 입국한 뒤 육로로 선전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국제도시 홍콩과 중국의 대표 혁신도시 선전은 남북으로 맞닿아 있다. 자동차, 고속열차, 페리 등을 통해 쉽게 오갈 수 있다. 무엇보다 지하철을 타고 출입경 심사장까지 갈 수 있다. 여권 검사를 포함한 출입경 절차를 지하철역과 연결된 심사장에서 밟는 것은 낯선 장면이었다.
4월 18일 오전, 홍콩 시내에서 도시철도(MTR)를 타고 북쪽 끝 록마차우역에 내렸다. 교통카드를 찍고 나오자 홍콩 출경 심사장이 보였다. 200m 보행교를 지나자 이번엔 중국 본토 입경 심사장이 나타났다. 중간에는 면세점도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경찰이 "보안 구역이라 카메라는 안 된다"며 제지했다. '공항이랑 똑같구나' 생각하며 입경 심사와 소지품 검사 등을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선전 남쪽 관문인 푸톈커우안역 밖까지 나왔다.
"여기로 오세요, 여기!"
오전 10시쯤 푸톈커우안역 앞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여행사 깃발이었다. 노랑, 초록, 빨강 깃발을 든 직원들이 홍콩에서 넘어온 여행객들을 맞고 있었다. 캐리어를 든 여행객들은 예약한 상품을 찾아 바쁘게 움직였다. 오전부터 붐비는 모습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선전 여행을 왔다는 미국인 매튜가 말을 걸었다.
"몰랐어요? 중국의 최첨단 기술을 체험하기 위해 선전으로 '기술 관광'을 오는 외국인이 얼마나 많다고요." 선전 거주 경험이 있다는 매튜는 선전의 기술 체험을 놓치면 안 된다며 무인기(드론)로 음식을 배달시키는 영상 등을 열심히 보여줬다. 선전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전시하는 '글로벌 쇼룸'이 되어 있었다.
로봇을 관광 코스로... '기술 쇼룸' 선전
선전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과학기술 관광지였다. 트립닷컴, 겟유어가이드 등 여행 플랫폼에는 드론 배송 체험, 자율주행 택시 탑승, 로봇 쇼룸 방문, 화창베이 전자상가 탐방을 묶은 상품이 여럿 올라와 있다.
선전시도 도시의 기술 이미지를 관광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선전시는 지난 2월 "기술을 활용한 외국인 관광객 경험을 최적화하고자 인공지능(AI) 여행 카드 등 스마트 관광 상품을 출시한다"고 알렸다. 중국이 한국 등 여러 국가에 적용하는 30일 무비자 입국 조치도 선전행의 문턱을 낮췄다.
관광객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선전시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333만여 명으로 전년 대비 38.1% 증가했다. 관광 수입은 110억 달러(약 16조7,255억 원)로 51.2% 증가했다.
선전으로 향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홍콩은 중요한 관문이다. 4월 25일 선전과 홍콩을 잇는 페리가 운항되는 선전의 셔커우항에서 만난 한 외국인은 "홍콩 여행을 간다고 하니 '선전도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이가 많았다"고 말했다. 셔커우항 관계자도 "항공편이 비교적 많은 홍콩으로 입국한 뒤 페리를 타고 선전으로 갔다가 며칠을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구경 넘어 비즈니스... 문턱 닳는 선전
선전을 찾는 이들은 단순히 구경만 하러 오는 건 아니다. 상당수는 견학, 연수, 출장 등 실용적 목적으로 선전을 찾았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AI 등 딥테크 투자자로 일하며 부업으로 기술 관광을 홍보하는 아리엘 푸는 이렇게 말했다. "첨단기술 관련 창업자와 연구자 등이 선전에 오고 싶어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최근에는 하드웨어 창업자들의 선전 방문 의사가 매우 높아졌어요. '미국에선 6개월 걸릴 일이 선전에선 6주면 가능하다며? 말이 돼?'라며 선전에 온 김에 사업 파트너를 찾는 거죠. 그래서 기술 관광의 경우 창업자, 제조업자, 투자자 등과의 교류 일정을 여행 일정에 포함시키곤 합니다."
아리엘이 밝힌 4월 17~22일 일정의 선전 여행 상품은 1,200달러(약 182만 원)였다.
선전은 올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를 계기로 선전의 관광 수요가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선전을 통해 차원이 다른 중국의 과학기술을 확실히 홍보하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구상이다.
"시간은 돈" 혁신 부른 개혁개방
외국인들이 선전으로 기술 관광을 오는 장면은 이 도시의 탄생과도 맞닿아 있다. 선전은 애초부터 중국이 세계를 향해 열어둔 창구였다. 1979년 선전의 셔커우에 공업구가 조성되면서 이곳은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부터 거대한 실험장이 됐다.
4월 25일 찾은 셔커우에는 외부 자본과 기술, 새로운 제도를 먼저 시험하는 선전식 발전 모델이 싹텄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셔커우항에서 1㎞ 떨어진 '시간의 광장'에는 '시간은 돈, 효율은 생명'이라는 문구가 금빛으로 새겨져 있었다. 중국 개혁개방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구호다.
영어 이름으로 '쿠퍼'를 쓰는 한 중국인은 해당 문구를 이렇게 해석했다. "선전은 '하지 말라'는 것 빼고는 나머지는 하도록 두는 도시입니다. 중국식 통제의 틀 안에서도 사업과 실험 공간이 넓게 열려 있는 거죠. 모두가 발전을 꿈꾸고 그걸 위해 열심히 일하죠. 베이징이 '정치의 도시'라면 선전은 '돈의 도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전 사람들은 '돈 얘기'밖에 안 해요."
인근에는 '첸하이·셔커우 자유무역시험구'도 있다. 새로운 제도와 사업 모델을 중국 전역에 적용하기 전에 먼저 시험해보는 공간이다. 셔커우 곳곳에는 '선전은 세계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는 문구도 있었다. 과거에는 외부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처럼 읽혔을 문구가, 지금은 중국의 기술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바뀌고 있었다.
'학습장' 선전... 유학 오는 중국인들
선전의 기술 관광은 외국인에게만 열린 건 아니다. 중국 내부에서 선전은 기술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찾아가는 학습장이다. 선전 북쪽 광둥성 둥관에 사는 황웨이제가 그랬다. 그는 주말마다 두 시간씩 차를 몰아 선전으로 AI 수업을 들으러 온다.
선전시 룽화구 지역센터에서 4월 19일 황씨를 만났다. 그는 "선전이 중국에서 혁신을 전파하는 대표 도시라는 점을 도시 바깥으로 알리고 싶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금요일엔 조금 일찍 퇴근해 선전으로 오고, 금요일 야간 수업과 주말 수업을 듣고 돌아갑니다. 하루 200위안(약 4만5,000원)짜리 호텔에 묵으면서 알리바바 큐원, 바이트댄스 더우바오, 딥시크 같은 대언어모델(LLM)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배워요."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도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2011년부터 부동산 개발 업무를 해온 그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AI 확산이 자신의 일자리와 업무 방식을 흔들 수 있다고 본다. "AI가 가져오는 파괴적인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전은 그런 학습 기회를 주는 도시예요. 여기선 열심히 일하면 원하는 것을 얻거나 배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중에는 AI를 기반으로 1인 회사를 차리고 싶어요. 선전엔 1인 창업 지원도 많거든요."
황씨와 인터뷰하는 동안 주변에 있던 다른 수강생들도 말을 보탰다. 그중엔 우한에서 5시간 걸려 온 중학교 교사도 있었다. 그는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면 교사도 설 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며 선전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선전은 빠르게 혁신하는 만큼 시민들이 혁신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센터 측은 "선전의 각 구마다 이런 교육을 한다"며 "어린이, 어르신 등 기술 변화에서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을 위한 수업도 더 많이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교육을 진행하는 건 시민들이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걸 도시 경쟁력으로 보는 인식과 닿아 있다. 실제로 선전시에는 황웨이제 같은 사람이 수십만 명이다. 선전시는 '십백천 계획'을 통해 당원·간부를 대상으로 AI 관련 책 10권을 권하고, 모든 연령대 시민을 대상으로 100개의 AI 공개 강좌를 제공하며, 1,000회의 AI 야간 수업을 연다. 선전시에 따르면 시내 625개 장소에서 AI 야간수업이 진행되고 40만 명 이상이 교육을 받았다. 선전은 세계가 중국 기술을 보러 오고 중국인들이 기술을 배우러 오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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