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무대' 된 백악관…"역사적" "부적절" 환호·비판 교차
2026.06.15 11:05
▲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에서 바라본 백악관 사우스론의 UFC 경기장 '클로'(Claw)
14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은 사상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열리는 이종격투기(UFC) 경기 'UFC 프리덤 250'을 관람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습니다.
평소 차들로 붐비던 백악관 주변 도로 위는 차량 출입이 전면 통제된 채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는 시민들의 행렬로 가득 찼습니다.
백악관 인근 내셔널몰에서는 백악관 본관보다 더 높게 솟은 UFC 경기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 건국 250주년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80세 생일을 기념해 열린 이날 UFC 경기를 위해 지난달 말 백악관 사우스론(남쪽 잔디밭)에 설치된 거대한 임시 경기장입니다.
8각형 경기장 '옥타곤' 위를 덮은 아치형 대형 철제 구조물이 집게발(claw)을 연상시키는 형태여서 경기장에 '클로'(Claw)라는 별칭도 붙었습니다.
상단 구조물은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바탕의 흰색 별, 붉은색 디자인으로 꾸며졌습니다.
미 언론에 따르면 백악관 사우스론에 설치된 이 경기장에는 4천500여 명이 입장하고, 백악관 남쪽의 엘립스 공원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최대 8만 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게 준비됐습니다.
백악관 사우스론과 엘립스 공원 모두 티켓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우스론 좌석은 현역 군인과 정·관계 인사, UFC 측 초청객 등으로 채워졌으며, 엘립스 공원 입장권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전 추첨을 통해 배포됐습니다.
사전 추첨을 통해 티켓 확보에 성공한 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시민들은 섭씨 33도까지 올라간 찌는듯한 날씨에도 오후 이른 시간부터 엘립스 공원 입장을 기다리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성조기 문양이 새겨진 모자와 티셔츠, UFC 관련 의상을 갖춰 입은 시민들은 백악관과 경기장을 배경으로 연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도미닉 아다모(22·뉴저지) 씨는 "추첨에서 당첨이 돼 워싱턴DC에 처음 왔다"며 "전쟁 같은 일은 잠시 잊고 모두가 함께 즐길 좋은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시카고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재러드 모랄레스(24) 씨는 "백악관에서 UFC 개최를 한다는 게 말도 안 될 것 같았지만 실제로 열리게 됐다"며 "한번 꼭 와봐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온 도슨 니켈(26) 씨도 "다시는 없을 역사적 이벤트"라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 타결 소식이 전해지기 전이었지만, 그는 UFC 개최 시점이 적절하냐는 질문에 "전쟁은 전쟁이고 스포츠는 스포츠"라고 강조했습니다.
UFC 팬인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크리스 헥(51) 씨는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이렇게 안 했겠지만, 트럼프는 뭐든 하는 사람"이라며 "그도 UFC 팬이니깐 백악관에서 경기를 열고 싶어 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암표상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취재진이 시민들의 반응을 취재하고 있자 한 남성이 다가와 "티켓이 필요하냐"며 200달러에 입장권을 팔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관심을 보이지 않자 곧바로 "150달러는 어떠냐"고 가격을 낮췄고, 자리를 뜨려 하자 이번에는 "100달러"를 외치며 따라붙었습니다.
결국 사지는 않았지만, 사전 추첨으로만 배포된 티켓의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경기장으로 향하는 관람객들의 줄 바로 옆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수십 명의 시위 참가자들은 피켓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 등 행정부 관계자들의 얼굴 모형을 들고 백악관에서의 UFC 개최를 비판했습니다.
시위를 주최한 시민단체 '서드액트'의 DMV(워싱턴DC·메릴랜드·버지니아) 지부의 수전 더글러스(69) 대변인은 "우리가 UFC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기가 백악관에서 개최될 이벤트는 아니다"라며 "백악관은 민주주의의 중심이자 대통령이 있는 곳이지, UFC와 기업들의 광고 무대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더글러스 씨는 백악관 사우스론의 UFC 관람 티켓 가격이 15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트럼프와 UFC 회장(데이나 화이트)은 아주 친한 친구이고, 크립토닷컴(가상확폐 기업)까지 관여하며 너무 많은 돈이 오가고 부패의 온상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한 경제 상황을 걱정하고 시작해선 안 됐을 전쟁을 걱정해야 했다"며 UFC 개최 시기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다른 시위자인 알렉시스 존스턴(49) 씨는 역대 대통령들이 백악관 시설을 스포츠 행사에 활용한 적이 있지만 이번 UFC 대회처럼 대규모 이벤트를 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존스턴 씨는 "대통령은 자신에게 투표했든 하지 않았든 모든 국민을 대표해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일이 대통령 본인이나 가족에게 직접적인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토드 미첼(65) 씨는 "트럼프는 직위를 이용해 자기 자존심을 채우고 개인적으로 돈을 벌고 기업인 친구들을 챙기는 것 같다"며 "이건 미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백악관 UFC 대회를 둘러싼 엇갈린 시선은 여론조사 수치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3∼8일 미국 성인 4천531명을 대상으로 조사(오차범위 ±2.0%)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백악관 UFC 경기 개최가 '적절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6%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부적절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46%였고 나머지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본 행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에 최종 합의했다고 발표한 지 약 2시간 30분 뒤인 오후 8시 시작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하고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12대의 전투기가 상공에서 편대 비행을 했습니다.
체급별로 치러진 7개 경기에는 일리아 토푸리아와 알렉스 페레이라, 저스틴 게이치 등 UFC를 대표하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나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옥타곤 서편 케이지 좌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을 비롯해 배우자 멜라니아 여사,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 가족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해가 지자 경기장을 비추는 현란한 조명이 밤하늘을 밝혔고, 강렬한 음악과 관중들의 함성이 백악관 일대에 울려 퍼졌습니다.
세계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한 백악관은 이날만큼은 외교와 안보의 무대라기보다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거대한 행사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특히 자신의 생일에 백악관에서 격투기 경기를 연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특유의 파격적 정치 행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논란 속에 시작돼 논란 속에 마침표를 찍게 된 이란전쟁 관련 합의 직후 열린 백악관 격투기 행사는 '초강대국'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강인함'을 자국민, 특히 트럼프 지지층에 어필하는 상징적 효과를 노린 것 아닌가 하는 '억측'마저 들게 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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