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로 버텼지만 장기화는 부담…이란 타협 배경은
2026.06.15 09:00
▲ 이란 수도 테헤란
미국과 이란이 14일(현지시간) 종전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를 체결에 합의하면서, 위태로운 휴전 속 살얼음판 같던 중동 정세가 극적인 변곡점을 맞았습니다.
'슈퍼 파워' 미국과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에 전쟁 초기 일방적으로 밀리던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전면에 내세워 예상보다 꿋꿋이 저항해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전면적인 해상 봉쇄가 초래한 경제 파탄, 세계 최강 전력을 상대로 한 전쟁 재개에 대한 극도의 군사·경제적 부담, 그리고 폭발 직전인 내부 민심이 결국 강경하던 이란 수뇌부를 타협의 장으로 이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에 최고지도자까지 잃고 충격에 빠졌던 이란은 세계 원유 수송의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며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호르무즈 봉쇄의 파급력은 컸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호르무즈 해협 전면 통제 위협이 현실화하자 국제 에너지 시장과 금융시장은 한때 패닉에 빠졌습니다.
특히 중동 석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글로벌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고, 공급망 마비와 금융시장 위축이 도미노처럼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호르무즈 봉쇄라는 무기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란의 해협 통제에 맞서 지난달 중순 미국이 전면적인 대이란 해상 봉쇄 카드를 꺼내 든 것입니다.
미국의 해상 봉쇄는 이미 최악의 상황이던 이란 경제에 엄청난 충격파를 안겼습니다.
이란 법정 화폐인 리알화 가치는 지난달 말 암시장에서 달러당 180만 리알까지 추락하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리알화 가치 폭락 속에 공식 발표되는 연간 물가상승률은 50%를 웃돌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은 물론 식료품, 세제, 위생용품 등 일상 생필품마저 할부로 구매해야 할 정도로 민생은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입니다.
여기에 국가 재정 수입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유 수출마저 마비되면서, 이란의 경제 상황은 회복 불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입니다.
전면전 재개에 대한 공포도 이란 수뇌부의 결단에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보입니다.
이란은 전쟁 초기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당시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핵심 수뇌부를 잃었고, 맹렬한 공습 속에 주요 도시와 방공망이 사실상 초토화됐습니다.
휴전 기간 군사력을 다시 정비했다고는 하지만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비롯한 친이란 대리 세력(Proxy)마저 사실상 재기가 어려울 만큼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압도적인 공군력을 앞세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세례가 다시 시작되면 정권의 생존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종전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 8일 미 육군 아파치 헬기의 격추를 계기로 미국이 이틀간 대대적인 이란 공습에 나서면서 이런 공포가 되살아난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담당하는 하르그 섬의 원유 터미널 등 핵심 국가 인프라를 초토화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은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최근 이틀 간의 대대적인 공습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르그섬을 비롯한 이란의 석유 인프라 거점을 장악하겠다고 위협한 것이 이러한 압박을 가중했습니다.
계속되는 경제난과 전쟁 속에 들끓는 민심도 '시한폭탄'처럼 이란 지도부를 압박했습니다.
이란 정권은 전쟁 기간 대규모 관제 시위를 조직해 '미국 타도'를 외치고 지난 1월 민중봉기 주역들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는 등 반미 감정과 공포로 민심을 간신히 억눌러왔습니다.
그러나 장기화하는 전쟁과 살인적인 생활고 속에 정권을 향한 분노는 점점 임계점을 향해가고 있었다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만약 종전 합의에 실패해 미·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이 재개될 경우, 억눌렸던 시민들의 분노가 대규모 폭동으로 다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이란의 보복 공격 과정에서 불똥을 맞은 이웃 걸프 국가들의 노골적인 불만 표출과 외교적 고립 심화 역시 수뇌부의 운신 폭을 좁혔습니다.
결국 장기화하는 전쟁으로 정치, 경제, 외교적 부담이 한계치에 달한 상황에서 이란 수뇌부는 체제 생존을 위해 미국과의 타협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 정부가 종전 협상 과정에서 해외 동결 자산의 일부 해제와 자국 석유·가스·석유화학 제품 등에 대한 일시적 제재 해제 등을 적극 요구한 것 역시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순탄하게 합의가 이행되고 60일간의 추가 핵협상이 잘 진행될 경우 이러한 조치들이 파탄 직전의 이란 경제에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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