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전
[만나보니] 호암상 오성진 "나는 천재 아닌 시스템의 산물"
2026.06.15 07:39
블랙홀 난제 푼 37세 수학자 "좋은 씨앗 더 많이 키워야"
[촬영 조승한]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올해 삼성호암상 물리·수학 부문 과학상을 받은 오성진(37) 미국 UC버클리 교수 겸 고등과학원 교수에게는 늘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중학교 2학년을 마친 뒤 한국과학영재학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잇달아 월반해 19세에 졸업했다. 31세엔 미국 UC버클리 교수로 임용됐다.
우주의 블랙홀 내부에서 나타나는 불안정성을 수학의 비선형 쌍곡 편미분방정식으로 규명함으로써 세계 수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올해 호암상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하지만 11일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오 교수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시스템'을 꼽고 "제도의 혜택을 잘 받은 씨앗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제가 특별히 천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한국의 수학·과학 영재교육을 위해 구축한 시스템이 의도한 경험을 교과서적으로 해 왔고, 그것이 소중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영재학교·KAIST·고등과학원…수학자 키운 성장 사다리 오 교수는 중학교 2학년을 마친 뒤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진학할 때만 해도 수학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2학년부터 대학 과정 수업을 듣는 학교 커리큘럼을 통해 미적분학을 접하며 수학의 매력에 눈을 떴다.
오 교수는 "극한의 정의 같은 걸 왜 이렇게 비직관적이고 복잡하게 정의했을까 생각했다"며 "안에 숨어있는 의미를 이해하고 나니 빈틈없이 직관을 담을 수 있는 정의라는 것을 알게 됐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수학이 단순히 공식을 외워 빠르게 적용하는 과목이 아니라 커다란 아이디어와 논리, 증명의 체계가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였다면 그렇게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수학에 관심이 많던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며 공부했던 경험도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했다.
[촬영 조승한]
수학을 연구 분야로 정한 뒤에는 속도가 더 붙였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수업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KAIST 제도를 활용해 학부 과정을 상당 부분 건너뛴 그는 입학 후 두 번째 학기부터 대학원 과목을 들었다.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을 거치고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고등과학원으로 돌아온 것도 전환점이 됐다. 고등과학원은 전문연구요원을 통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다.
오 교수는 "지금 하는 연구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 상당수도 고등과학원에서 얻었다"며 "그때는 다른 생각 없이 연구만 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호암상 수상 업적의 기반이 된 블랙홀 관련 핵심 논문 역시 이 시기에 나왔다.
유학 때 지원받은 삼성 장학금, 고등과학원 재직 중 받은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과제도 호흡이 긴 지원이라 유용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블랙홀 연구로 세계 무대 우뚝…"한국도 더는 불이익 없어" 오 교수의 연구 분야는 편미분방정식이다. 물리·화학·공학 등 다양한 자연현상의 기초를 이루는 비선형 편미분방정식의 성질을 수학적으로 엄밀한 증명을 통해 규명하는 게 주된 연구 분야다.
블랙홀 내부의 불안정성을 수학의 비선형 쌍곡 편미분방정식으로 규명한 그는 최근에는 충격파 형성과 같은 극단적 현상이 발생하는 상황에 두루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는 "컴퓨터 계산만으로는 신뢰하기 어려운 극단적 상황들이 있다"며 "그런 문제들은 엄밀한 수학적 답을 찾는 순수 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촬영 조승한]
오 교수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관련된 난제를 수학적으로 규명하는 새로운 분석법을 제시한 업적을 인정받아 올해 세계수학자대회 초청 강연자로도 선정됐다.
그는 과거와 달리 각 분야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한국 수학자들이 늘어나며 국적에 상관없이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며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때 한국에서 교육받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이나 디스카운트를 느끼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수학을 하는 이유로 그는 '몰입'을 꼽았다.
오 교수는 "독서나 음악, 운동도 좋아하지만, 수학은 깊이를 달리해가며 그런 종류의 느낌을 계속 준다"며 "여러 일들이 점점 시간을 빼앗지만, 여전히 생각하며 몰입할 때는 즐겁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구가 다 그렇지만 수학도 문제를 진짜 푸는 순간은 얼마 안 된다"며 "대부분은 실패하지만, 가끔 성공하고 동료들과 나누는 일이 에너지를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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