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우리 다시 학교 가자”… 시니어 사역 동행 잰걸음
2026.06.15 03:08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채영신을 꿈꾸던 소녀의 관심은 농촌으로 향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읽었던 상록수를 마음에 품었던 그는 서울여자대학교 농촌과학과에 진학했다. 박에스더(73) ‘아름다운동행’ 대표 이야기다. 결혼도 농촌과 가까웠다. 남편은 농촌진흥청에서 일생 일한 이한기 박사다. 둘은 하객도 없이 가나안농군학교에서 김용기 장로의 주례로 결혼했다.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던 둘은 그렇게 부부가 됐다.
도시와는 담을 쌓고 살 것만 같았던 그의 삶이 바뀐 건 우연과도 같았다. 최근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 교정에서 만난 박 대표는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한 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이 ‘기독신문’이었다”면서 “그게 일생의 필업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독신문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 기관지다. 박 대표는 당시 편집국장으로 일하며 여성 지도력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시작은 미약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신문사 일을 도왔고 목요일부터는 대학원에서 식물생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가정생활위원회가 펴내던 ‘새가정’으로 자리를 옮겨 편집장이 됐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행보였다. 길지 않은 시간 새가정사에서 일하다 다시 친정인 기독신문으로 돌아왔지만 곧 광야와 같은 삶이 펼쳐졌다.
하필 신문사가 교단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흔들릴 때였다. 1987년 촉발된 교단 분쟁 사이에서 편집국장과 부국장 등 선배들이 줄줄이 해고당하고 말았다. 당시 문화부장이던 그는 졸지에 후배 기자 3명과 함께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건 사장 김인득 장로였다. 벽산그룹 회장이던 김 장로는 그를 부국장으로 승진시켰고 이듬해에는 편집국장으로 임명했다. 그의 나이 36세 때였다.
보수적인 교단 신문사의 여성 편집국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뉴스거리였다. 주변에서는 아버지인 박명수 예장합동 전 총회장의 후광이라고 수군대기도 했다. 하지만 18년이란 긴 시간 동안 편집국장으로 교단 신문사를 이끌었던 그의 리더십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견이 없다.
편집국장 방에 ‘정론직필’이라는 휘호를 붙여놓고 교단의 폐부를 찌르는 기획 기사를 연거푸 게재했다. 눈치 보지 않고 써야 할 기사를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던 그는 삶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성장세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어요.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죠.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 언론의 현실적 한계를 느끼며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정의와 공의, 개혁과 갱신의 기치로 데스크를 지켜왔던 모습을 성찰하게 된 셈이다.
박 대표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하다 ‘내가 내 눈을 찔렀다. 예수님 얼굴에 침 뱉는 짓을 한 건 아닐까’라고 반성했다”고 회상했다. 신문사를 그만둔 박 대표는 2006년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실은 ‘아름다운동행’을 창간했다. 비판보다 격려를, 사건보다 사람을 깊이 살피며 갈등보다 화해를 선물하기 위해 설립한 매체는 20년간 우리 사회에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박 대표는 아름다운동행을 통해 한국교회에 가정예배 운동을 펼쳤고 감사운동과 감사학교를 국내외에 확산해 왔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시니어 사역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원더풀 콰이어’ 합창단이나 시니어 아카데미, 시니어 비전 세우기 등도 시작했다.
무엇보다 감사운동으로 공동체 회복을 꿈꾸고 있다. 대한어머니회 중앙회장도 역임한 그는 선교사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조용한 누룩 운동’을 이끌고 있다.
이날 서울여대에서 만난 것도 ‘우리 다시 학교 가자’라는 구호 아래 시니어들을 위해 개설한 ‘MBL(My Best Life) 아카데미’ 때문이었다. 이 과정은 서울여대 평생교육원과 아름다운동행이 공동으로 개설한 과정이다.
그는 “MBL 아카데미는 저출생, 초고령화 사회 속에서 시니어들을 도움받는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기여자로 세우는 사역 중 하나”라면서 “시니어의 깊은 신앙적 경륜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축복의 자산으로 쌓이는 세대 공존의 미래를 꿈꾼다”고 했다.
20대부터 줄곧 기자로 살았던 박 대표는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물질이 목적이 되면 그 목적을 이룬 후 반드시 허무해집니다. 하지만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따라 사는 인생은 삶의 정상에 섰을 때 확연히 다른 열매를 거둔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줄기 맑은 샘물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좋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게 삶의 지혜이고 힘입니다. 인생이라는 광야에는 좋은 동지가 필요합니다. 뜻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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