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주유소 모두 ‘비명’…“소비억제효과도 이미 한계점”
2026.06.14 17:40
<1> 제도부터 정상화하자
휘발유·경유 최고가 11주째 유지
가격통제 따른 손실 보전한다지만
유가하락 전환땐 재무부담 불보듯
소비자 저항 심리도 점차 허물어져
종전 국면 앞두고 시장 정상화 시급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고가격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시장 왜곡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높은 가격이라도 같은 수준이 몇 주 동안 유지되면 소비자들은 이에 적응한다”며 “석유제품 최고가격이 가지고 있는 소비 억제 효과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가 3월 27일 석유제품의 ℓ당 최고가격을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설정한 후 11주 넘게 변화 없이 유지 중이다 보니 이 가격대에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담감이 점점 줄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일선 주유소의 석유제품 소매 가격도 조금씩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의 저항심리를 허물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오피넷)에 따르면 6월 2주차(7~11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ℓ당 2009.9원으로 전주 대비 0.5원 떨어졌다. 지난달 2주차에 ℓ당 2011.8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4주 연속 하락한 결과다.
경유 평균 판매 가격 역시 5월 2주차 2006.2원에서 6월 2주차 2004.8원으로 한 달 내내 꾸준히 떨어졌다. 변동 폭은 작지만 지속 하락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소비를 억제할 유인이 약해진 것이다. 손 교수는 “해외 자원 의존율이 높은 나라가 위기 상황에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책은 소비 억제”라며 “최고가격을 설정하더라도 조금씩 올리는 방식으로 소비자에게 적절한 신호를 보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출해야 할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도 최고가격제의 부작용 중 하나다. 앞서 정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실시하며 가격 통제로 인해 민간 기업에 발생하는 손실은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추가경정예산으로 예비비 4조 2000억 원도 확보해 뒀다. 업계는 손실 정산에 국제 제품 가격 변동을 반영해달라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도입 원가 기반 정산 원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정산 원칙이 담긴 고시는 이달 중 제정될 예정이다.
업계는 이처럼 정산을 진행하면 유가 하락기에 상당한 재무 부담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유사는 유가 상승기에 재고로 쌓아둔 원유의 평가 가치가 상승하면서 ‘재고 평가 이익’을 누리지만 반대로 유가 하락기에는 재고 가치도 함께 하락해 ‘재고 평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유가 상승기에 소매 가격을 최고가격제로 묶으면서 손실을 일부만 정산해주면 유가 하락기에 버틸 여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최고가격제가 길어지면서 영세 주유소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정유사가 납품하는 도매가격을 최고가격으로 묶어둬도 주유소마다 실제 판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개별 주유소별로 인건비, 영업비, 재고 비용이 모두 상이해서다. 전쟁 발발 직후 최고가격제 시행 이전 유가가 급격히 치솟은 기간에 재고를 비싸게 확보한 주유소들은 손실이 불가피한 구조다. 정유사 직영 주유소나 정부 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 등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팔다 보니 영세 자영 주유소들의 매출은 더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재정경제부와 산업부가 발표한 석유제품 판매 추이가 서로 다른 것은 자료 집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재경부는 매달 4대 정유사로부터 각 주유소에 납품한 휘발유·경유의 총량을 전달받아 발표한다. 반면 산업부는 석유관리원이 집계하는 각 주유소 휘발유·경유 판매 실적의 총합을 지표로 삼고 있다. 요컨대 5월 각 주유소가 정유사로부터 사들인 휘발유·경유의 ‘도매량’은 일 년 전보다 늘었지만 소비자들이 사간 ‘소매량’은 감소해 재고가 늘었다는 이야기다. 재경부가 집계한 5월 도매 판매량은 5월 들어 전년 대비 1.8% 늘어났지만 산업부 집계 소매 판매량은 5월 4.7%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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