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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국산 신약'인데 처방 못해…역수입 1년새 4배↑

2026.06.14 18:17

세노바메이트(온토즈리) 분기별 공급 현황/그래픽=윤선정
뇌전증 국산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국내 허가 이후에도 7개월이 넘게 출시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 급여를 받은 뒤 공급하겠다는 제약사 방침 때문이다. 미국·유럽에서는 수 많은 환자를 구하고 있는 신약을 정작 한국 환자는 비싼 가격에 역수입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뇌전증 국산 신약 세노바메이트는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산 41호 신약으로 허가받았지만 제약사의 '급여 등재 후 출시' 방침에 따라 국내 처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노바메이트는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이중작용제로, 발작을 조절하는 효과가 탁월해 뇌전증 치료의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2019년 미국 허가 후 출시된 '엑스코프리'는 분기마다 판매 실적을 새로 갱신하며 SK바이오팜의 효자 상품이 됐다.

하지만 정작 종주국인 한국 환자는 수 년째 치료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식약처의 허가를 획득했지만 출시되지 않아 비급여 처방조차 불가능하다. SK바이오팜과 한국 등 30개국의 생산·판권 계약을 체결한 동아에스티는 "정부로부터 급여를 획득한 이후 내년 출시가 목표"라고 말했다.


국산 신약 '역수입' 나선 환자들...수입 물량 급증


환자와 보호자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국산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역수입에 나서고 있다. 실제 지난해 3월부터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구매 대행이 본격화된 이후 1년 동안 유럽 제품 '온토즈리' 수입 물량은 4배 넘게 증가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제품 '온토즈리'의 국내 공급 건수는 2025년 2분기 65건에서 2026년 1분기 268건으로 4.1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공급량(팩 기준)은 79팩에서 347팩으로 4.4배 늘었다. 온코즈리는 환자 상태에 맞춰 용량, 포장 단위별로 여러 제품이 있는데 공급되는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이 센터는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하지만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희귀·필수의약품을 수입해 공급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기관이다. 환자가 진단서와 처방전, 구입동의서 등을 제출하고 약값·운송비를 자비 부담하면 약을 구매 대행해준다. 세노바메이트는 미국에서 2019년, 유럽에서 2021년 허가받아 각각 '엑스코프리', '온토즈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수입 시 비용이 9~10배 차이가 나서 환자가 온토즈리를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온토즈리 수입 시 알약 84개(3개월 치)가 든 1팩당 가격은 55만원, 운송료를 포함한 부대비용은 50만원 정도다. 해외 운송료는 N 분의 1로 나눠 신청자가 많을수록 낮아진다. 이를 감안한 한 달 약값은 대략 25만원으로 연간 300만원 선이다. 신청 후 수입까지는 6~8주가 걸린다. 센터 관계자는 "환율·유류비 등이 오르며 수입 비용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과거 간질로 불린 뇌전증은 온몸이 경직된 채 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엉뚱한 행동을 반복하는 발작이 주요 증상이다. 뇌 신경세포의 이상 흥분이 원인으로, 환자가 자신의 의지로 증상을 조절할 수 없어 평소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한다. 세노바메이트는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 이중작용제로 발작을 조절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한국을 비롯한 다국가 임상시험에서 유의미한 발작 빈도 감소율과 완전 발작 소실률을 기록하며 뇌전증 치료의 '게임 체인저'란 수식어가 붙었다.

지금도 뇌전증 환자 커뮤니티에는 특히 아들· 딸의 치료를 위해 세노바메이트 역수입 방법과 치료 후기를 묻는 보호자들의 글이 쇄도한다. 9세 환아의 보호자는 지난달 뇌전증 카페에 "더 써볼 약이 없다"며 "새로운 약을 시도하고 좌절하기를 2년째지만 그래도 또 희망을 걸어본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자가면역뇌염에 걸리고 뇌전증이 나타났다는 15세 아들부터 중학교 1학년부터 뇌전증을 앓아 지금은 35세 된 딸의 증상 완화를 위해 구입 방법을 묻는 보호자까지 '눈물의 사연'이 쌓여가고 있다.




내년 초 출시 목표...신약 급여 적용까지 1년 이상 걸려


신약은 식약처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아도 이후 급여 적용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비용효과성 등 평가)·국민건강보험공단(약가 협상)·보건복지부 등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체 기간이 보통 1년~1년 반 정도 걸린다. 세노바메이트는 급여 후 내년 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허가 후 급여를 받지 않아도 비급여로 환자가 쓸 수는 있지만, 비급여·급여 등 출시 방식은 제약사의 권한으로 정부가 강제할 권한은 없다.

허가 후 출시가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낮은 약가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급여 시 신약 가격을 기존 치료제와 가격·효과 등을 비교한 후 매기는데 이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뇌전증처럼 기존 치료제가 오래 쓰이고, 그래서 가격이 저렴하면 '기준'이 낮아서 효과 좋은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구조다.

신약 가격이 낮으면 역으로 해외에서 한국 가격을 약가 인하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어 제약사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 신약 허가를 아예 포기하거나, 받아도 출시하지 않는 '코리아 패싱'이 일어나는 이유다. 화이자의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레바티오'는 2007년 4월 품목 허가를 받았지만 약가 협상에 실패해 출시되지 않다가 6년이 지나 특허 만료 후 복제약(파텐션)이 나오고서야 환자가 쓸 수 있었다.

세노바메이트의 국내 출시 지연도 경제성의 논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SK바이오팜으로부터 국내 생산·판권을 계약한 동아에스티는 본지에 "비급여로 출시할 경우 실제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환자가 많지 않을 수 있다"며 "향후 급여 협상에서도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급여로 출시할 경우 가격이 비싸 수요가 적을 수 있는데, 이것이 신약 가치를 떨어트려 약가 협상 시 가격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신약 접근성 지적...정부 강화조치 발표


우리나라 환자의 신약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낮은 약가에 허가 신청을 미루거나, 건강보험 급여 등재 후 제품 출시를 결정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이에 정부는 올해 희귀난치성질환을 대상으로 허가·급여를 연계한 '신속 등재'와 약가 협상의 불이익을 줄이는 '유연 계약제'를 통해 신약 접근성을 확대할 계획이다. 유연계약제는 신약이 급여 결정 돼도 표시가격(공개)과 실사용 가격(비공개)을 별도 계약으로 다르게 책정하는 이중가격제도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발표한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에서 신약 접근성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는 신속 등재를 통해 허가 후 급여 기간을 100일 이내로 단축하고 사후 평가 강화를 통해 건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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