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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답 칼럼] '선거 끝나니 사업도 끝'… 전임자 지우기에 갇힌 지방행정

2026.06.14 18:00

편집자주

'미지답(우리의 미래, 지방에 답이 있다) 포럼'으로 균형발전에 앞장서 온 한국일보 전국 취재기자들이 매주 월요일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역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상욱 울산시장 당선자가 지난 3일 오후 울산 남구 선거캠프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울산= 뉴스1


얼마 전 아이들과 자주 가던 집 앞 무인문구점에 들렀다. 평소 같으면 금세 필요한 물건을 척척 집어 들었을 아이들이 그날은 매장 안을 몇 바퀴나 돌았다. 진열대 배치가 달라진 탓이다. 뒤늦게 들은 얘기지만 사장이 바뀌었다고 했다.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울산, 부산, 인천, 대전, 세종, 강원, 충남, 충북 등 광역시·도는 절반인 8곳의 단체장 소속이 바뀐다. 시·군·구정을 이끄는 기초단체장 역시 전국 227곳 중 3분의 1이 다른 간판을 단다. 벌써 전임 사업에 칼을 대겠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하물며 동네 구멍가게도 사장 따라 매장 진열이 달라지는 마당에 수조 원 예산을 굴리는 단체장이야 오죽할까. 그럼에도 소속 정당이 바뀐 지역에서 유독 ‘재검토’, ‘백지화’, ‘전면 수정’과 같은 단어들이 집중 등장하는 현실은 쉬이 지나치기 어렵다.

울산에선 국내 1호 수소트램 도시철도 1·2호선 건설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예고됐다. 김상욱 울산시장 당선자가 출퇴근 수요 등을 고려해 1호선 대신 2호선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기조를 밝히면서다. 1호선은 2029년 개통을 목표로 지반 보강 등 우선시공분 공사가 진행 중인 반면 2호선은 아직 예비타당성조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광역시 승격 이후 처음 단행된 시내버스 노선 개편은 원점에서 검토되고 있다. 1차 설계공모를 마친 세계적 공연장 건립은 백지화 수순에 들어섰고, 35년 만에 부활한 공업축제는 폐지가 유력하다. 모두 민선 8기에 펼쳐진 역점사업이다. 김 당선자는 선거 후 첫 언론인 간담회에서 “전임 시장 사업 중 이어갈 만한 것은 어떤 게 있느냐?”는 질문에 “있으면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부산은 국비까지 확보한 사직구장 재건축 사업, 충북은 청주 돔구장 건설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대전에선 2023년 첫선을 보인 ‘0시 축제’가 3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세종시의 금강 관광 개발 사업인 ‘비단강 금빛 프로젝트’와 인천의 도시재생사업 ‘제물포 르네상스’도 변화가 예상된다. 부산·경남의 행정통합 논의 역시 정권 교체 이후 동력이 약화돼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선심·전시성 사업은 과감히 쳐내는 게 맞다. 그러나 주민 공청회와 의회 심의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상당부분 진척된 사업까지 정파적 잣대로 멈춰 세우는 건 다른 문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매몰 비용과 민간 사업자와의 줄소송 부담은 결국 행정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북 남원시는 2022년 지방선거 이후 테마파크 개발 사업을 중단하면서 민간사업자에게 400억 원대 손해배상금을 물게 된 바 있다.

같은 사업을 두고 어제까지 당위성을 홍보하다 오늘부턴 문제점을 찾아내야 하는 공무원들의 처지도 아이러니하다. “기껏 커피 쿠폰 도장 10개를 다 찍어 무료 음료 받으러 갔더니 삼겹살집으로 바뀌어 있는 기분”이라는 한 공무원의 우스갯소리가 마냥 가볍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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