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열려도 끝나지 않은 물가전쟁...돌아온 ‘매의 시간’
2026.06.14 17:44
미-이란 종전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이번 주 세계 중앙은행의 ‘수퍼위크’가 시작된다. 전쟁 종식 양해각서(MOU) 체결 가능성에 국제유가는 꺾였지만, 중앙은행의 시계는 긴축 쪽으로 기울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더라도 에너지 충격이 물가와 환율에 남긴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세계 경제에 다시 ‘매(긴축)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14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과 호주 중앙은행은 16일 금리를 결정한다. 17일에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스웨덴·브라질·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바통을 이어받고, 18일에는 영국·스위스·노르웨이가 뒤따른다. 같은 에너지 충격에 대한 중앙은행들의 답이 이번 주 확인되는 셈이다.
종전 논의는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이란과의 합의는 14일(현지시간) 서명될 예정이며, 서명 직후 호르무즈 해협은 모두에게 열릴 것”이라고 썼다. 다만 이란은 “14일은 아니다”라며 시점 조율에 나섰고, 핵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완전 개방을 둘러싼 이견도 남아 있다.
유가는 먼저 움직였다. 브렌트유는 12일 종가 기준 배럴당 87.33달러로 전날보다 3.37% 하락했다. 3월 초 이후 최저 수준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면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압력은 한풀 꺾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석 달간의 충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밀어올렸고, 원자재·운송비 부담을 키웠다. 환율을 자극해 수입물가 부담도 높였다. 중앙은행의 판단은 물가의 2차 파급 차단에 무게를 두고 있다.
먼저 움직인 곳은 유럽중앙은행(ECB)이다. ECB는 지난 11일 예금금리를 연 2%에서 2.25%로 0.25%포인트 올렸다. 2023년 이후 3년 만의 첫인상이다. 에너지 가격이 뛰며 유로존 물가가 3%를 넘어선 게 배경이다.
일본은행(BOJ)도 기준금리를 0.75%에서 1%로 올릴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 조사에서 이코노미스트 51명 중 49명이 16일 0.25%포인트 인상을 점쳤다. 엔화가 달러당 160엔 부근까지 약해진 데다, 5월 기업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6.3% 올라 2023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도 분위기는 매파(긴축) 쪽이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4.2%로 3년 만에 4%를 넘어섰고, 근원물가는 2.9%였다. 생산자물가(PPI)는 전월 대비 1.1%, 전년 대비 6.5% 올라 2022년 11월 이후 가장 큰 연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17일 FOMC에서는 동결이 유력하지만, 인하 논의는 사실상 사라졌다. 로이터는 “시장이 이란 전쟁 이후 금리 인하 기대를 접고, 10월까지 인상 가능성을 약 60%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매파 전환이라도 이유와 강도는 다르다. ECB와 호주, 노르웨이 등은 물가 전이 차단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등은 통화 약세와 외국인 자금 이탈 방어가 중요하다. 한국은행은 이 압력을 동시에 받는다. 다음 달 1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둔 신현송 한은 총재는 최근 2주 사이 세 차례 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 12일 창립 76주년 기념사에서도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변수는 다시 호르무즈 해협이다. 미-이란 MOU가 통항 정상화로 이어지고 유가가 80달러대에서 안착하면 중앙은행의 긴축 강도는 약해질 수 있다. 반대로 호르무즈 통항 정상화가 지연되면 유가가 다시 출렁일 가능성도 있다.
긴축은 물가와 환율,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지만 대가도 크다. 가계 이자 부담, 부동산 시장, 기업 차입비용을 동시에 압박한다. 결국 이번 주가 세계 경제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중앙은행들이 이번 유가 충격을 일시적 변수로 볼지, 기대인플레이션을 흔드는 반복적 공급 충격으로 볼지에 따라 향후 금리 경로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엘리 니르 TD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에 “공급 충격은 한 번에 그쳐야 일시적 변수로 볼 수 있지만, 충격이 잇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며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시장과 중앙은행은 공급 충격이 장기 물가 압력으로 번질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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