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26주년] '적대적 두 국가' 시대, 다시 6.15를 읽다
2026.06.14 15:31
남북 정상회담은 애초 6월 12~14일로 발표되었으나, 하루씩 순연되어 6월 13~15일로 조정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6월 13일 서울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약 1시간 7분 동안의 비행을 마치고 평양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환영인파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비행기 문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예고 없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을 잡고 "반갑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라고 첫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또 한번 놀라운 장면이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같은 차량에 동승한 것이다.
당시 외교통상부 의전 관계자는 "정상외교 의전상 파격 중의 파격"이라고 말했다. 공항에서 백화원 영빈관으로 이동하던 55분 동안 남북 정상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을지가 미국 정보기관 등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당시 평양시내에 60만 인파가 쏟아져 나와 두 정상을 향해 환호를 보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화원에서 "대통령께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평양에 오셨습니다. 전방에서는 군인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나갈 판인데, 대통령께서는 인민군 명예의장대의 사열까지 받으셨습니다. 이건 보통 모순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단연코 최대의 관심사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구라파 사람들은 나보고 왜 은둔생활 하느냐고 합니다",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라고 하여 좌중을 웃게 만들기도 하였다.
마지막 날인 15일,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손을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6.15공동선언은 남북정상회담의 백미였다.
남북공동선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13일부터 6월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시킨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
첫 남북정상회담은 결코 순탄하게 열린 것이 아니었다. 당사자인 남과 북 사이의 협의 과정에서 다양한 일들이 있었으나, 미국도 개입하였다.
2009년 4월 월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정상회담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는 "2000년 초반, 임동원 국정원장의 대북 비밀접촉이 강화됐다. 임 원장은 적어도 두 차례 방북해 김정일을 만났다. 나는 당시 워싱턴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이 어느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깜짝 놀라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경고였다"라고 술회했다.
미국은 2000년 5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자문관을 보내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미국의 요구를 포함시키려고도 하였다. 조선일보는 2000년 5월 10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셔먼 자문관은 남북정상회담 결과가 미국의 북한 미사일, 핵문제 해결 노력과 어떻게 연결될지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라고 보도했다.
정상회담 이후 조지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1년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 불러 무례하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주미국 대사 양성철은 "대북 접근의 차이는 3월 7일 백악관 오찬석상에서, 그리고 오찬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회견에서 부시는 '회의(skepticism)'라는 말을 두 차례나 사용했다"라고 전했다.
이런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켰던 데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있었던 셈이다.
6.15공동선언 1항은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자체가 6.15공동선언 1항의 이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전환시킨 유일한 합의
과거에도 남북 사이에 대화와 합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합의들은 사실상 이행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는 6.15공동선언이 가진 생명력을 높이 사며 6.15공동선언을 통일의 이정표라고 부르곤 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물론 군사 분야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교류가 오가며 각종 합의가 도출됐다. 북미간 핵 갈등이 계속되고 2002년 제2연평해전이 일어나기까지 했으나 남북관계는 계속 이어졌다.
김대중 정부 이후에도 2007년,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합의가 있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곧 이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행되지 못했다.
2018년 세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이 이어져 국민의 큰 기대를 모았다. KBS가 4월 30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4%가 4.27 정상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2018년 남북 합의들은 미국이 대북 제재를 앞세워 남북 교류를 가로막았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넘지 못하면서 사실상 실질적인 이행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지금에 와서 보면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6.15공동선언은 역대 남북 정상 합의 가운데 가장 뚜렷하게 현실을 변화시킨 합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적대적 두 국가'가 된 오늘, 6.15의 물음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6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를 천명하며 통일을 부정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조선것들과의 관계를 보다 명백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것은 더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천명했다.
위 발언에서 언급된 '주적'에 대해선 최근 지방선거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한동훈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후보가 '주적'이 누구냐고 묻자 하정우 후보는 "안보상의 주적은 국방백서에 명시된 대로 북한군과 북한 정부"라고 답했다.
그러나 사실 '국방백서'에는 주적이라는 표현이 없다. 2004년부터 북한에 대한 '주적' 표현이 삭제되었다. 정권에 따라 국방백서에 북한군을 '적'이라는 표현이 포함되었다가 삭제되기를 반복했으나, '주적'이라고 다시 명시된 적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은 주적으로 통용된다. 헌법 제3조에 한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한국 영토를 무단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로 취급된다.
한편, 헌법 제4조, 제66조 등엔 평화통일 의무도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북한은 영토를 무단점령한 주적이자 한 민족으로서 평화통일의 동반자라는 모순이 오래도록 존재해왔다. 북한을 주적이자 통일의 동반자라고 보는 모순적인 견해는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빚어냈다.
6.15공동선언 2항은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는 내용이다.
남측의 연합제안은 유럽연합처럼 남과 북이 각각 국가로 존재하면서 남북 연합 형태로 통일을 하자는 제안이다.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은 국가를 하나로 합치되 남과 북이 각각 정부와 제도를 유지하자는 제안이다. 따라서 6.15공동선언 2항에서 말한 공통성이란 남과 북이 각자의 체제와 제도를 유지하고 공존하는 통일을 하자는 취지로 해석되곤 한다. 6.15공동선언의 핵심은 상대를 굴복시킬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협상의 상대로 인정했다는 데 있었다.
남북관계에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지금이다. 오늘날 북한은 한국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현시점에서 북한을 어떻게 규정하고 대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의 정신이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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