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제품 막히자 반제품으로… 中 철강, ‘관세 없는 길’로 들어온다
2026.06.14 06:01
슬래브 등 반제품 유입 증가
하반기 판재류 가격 회복 변수
중국산 철강 공세가 완제품에서 가공 전 중간 소재인 반제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올해 들어 중국산 철강 완제품 수입은 줄었지만, 후판·열연강판의 원소재인 슬래브(커다란 쇠판) 수입은 70% 넘게 늘었다. 반덤핑 관세로 완제품 수입 장벽이 높아지는 사이, 관세 대상이 아닌 반제품이 중국산 철강의 새 유입 통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4일 한국철강협회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국산 철강 완제품 수입 물량은 313만854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산 슬래브 수입은 22만9134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71.8% 늘었다. 슬래브는 쇳물을 굳혀 만든 두꺼운 직사각형 쇳덩어리로, 눌러서 얇게 펴면 후판·열연강판 같은 철판 제품이 된다.
철근·형강의 소재가 되는 막대 모양 반제품인 빌렛 수입도 6만6195톤으로 작년 대비 소폭 증가했다. 완제품 수입은 줄고, 그 전 단계 소재인 반제품 수입은 늘면서 중국산 철강 수입의 구성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관세 영향이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은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을 막기 위해 중국산 후판에 27.91~34.10%의 덤핑 방지 관세를 부과했고, 일본·중국산 열연 강판에도 최대 33%대 관세 부과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슬래브와 빌렛은 열연·후판·철근 등으로 만들기 전 단계의 반제품이라 반덤핑 관세 대상이 아니다. 완제품은 관세 부담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지만, 반제품은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적은 상태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다.
중국 철강사들은 부동산·건설 경기 침체로 자국에서 소화하지 못한 물량을 해외 시장에 내보내 왔다. 여기에 미국·유럽연합(EU)·한국 등 주요 시장이 중국산 완제품에 대한 수입 장벽을 높이면서, 반제품을 우회로로 활용하고 있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1~4월 중국의 완제품 철강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9.7% 줄었지만, 반제품 수출은 47.8% 늘었다”며 “중국의 과잉공급 압력이 완제품 직접 수출에서 슬래브·빌릿 등 반제품 우회 수출로 형태를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 차질도 중국산 반제품이 들어올 틈을 키웠다. 세계 주요 슬래브 수출국인 이란은 이스라엘·미국과의 충돌 이후 일부 제철소가 피해를 입으면서 반제품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3월 이후 중동 리스크로 이란산 반제품 공급이 제한되면서 그 공백을 중국산 반제품이 메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중국산 반제품 유입이 계속 늘면 하반기 후판·열연강판 가격 회복 폭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덤핑 조치로 중국산 열연·후판 등 저가 완제품 유입이 줄면서 국내 가격은 최근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슬래브는 관세 부담 없이 들어온 뒤 국내에서 후판·열연강판으로 가공될 수 있다. 완제품 수입은 줄었지만, 중국산 원소재가 다시 철판 제품으로 바뀌어 시장에 나오면 가격 회복세를 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반제품 수입 증가가 국내 후판·열연강판 등 판재류 가격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현재까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면서도 “이란 제철소 복구에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중국 내수 부진도 길어지고 있어 하반기 반제품 유입 규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체들은 공급 변수가 잇따르는 만큼 범용 판재류 가격 회복에만 기대기보다 수출 확대와 고부가 제품, 비철강 사업으로 실적 방어 전략을 넓히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 1위 포스코홀딩스는 철강 부문 비용 부담을 인프라·해외철강·이차전지소재 등 비철강 부문으로 보완하고 있다. 업계 2위 현대제철은 판가 인상과 함께 미국향 철근 수출, 데이터센터용 강재 공급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판재류 가격 방어와 고부가 제품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이 하반기 철강업계의 실적 개선 폭을 가를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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