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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률 99.7%, 상법 개정 비웃는 대기업 '독립이사'[시험대 오른 사외이사]①

2026.06.14 11:00

상위 대기업 상장기업 계열사 100곳 이사회 안건 조사
2929개 안건 중 반대·보류로 이어진 건 8건
반대 의견 자체가 적다…"부결될 만한 건 안 올려"
"외부이사 의장 맡아도 실질 변화 어렵다"
편집자주상법 개정으로 사외이사는 '독립이사'라는 새 이름을 달게 됐다. 기업들은 총수들이 맡아온 이사회 의장 자리를 사외이사에게 넘기고 금융지주들도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름과 형식이 바뀌었다고 견제 기능이 곧바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재계 주요 기업 이사회에서는 사외이사의 반대 의견이 여전히 드물고 금융지주 이사회 역시 최고경영자(CEO)의 의사결정을 추인하는 '거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외이사가 진정한 독립성을 갖추려면 후보 추천 경로 다변화, 실질적 권한 부여, 평가·공시 체계 개선, 법적 책임 강화 등 구조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본지는 산업계와 금융권 이사회 운영 실태를 짚고 사외이사 제도가 형식을 넘어 실질적 견제 장치로 자리 잡기 위한 과제를 살펴본다.


상법 개정안 통과로 이사회의 책임이 한층 커졌지만 대기업 사외이사(개정 상법 상 독립이사)의 견제 기능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주요 대기업 이사회에서는 안건의 99% 이상이 원안대로 통과되면서 사외이사가 독립적인 감시자 역할보다 경영진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들은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등 독립성 강화에 나서는 한편,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정관 개정을 추진하면서 상법 개정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14일 아시아경제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공시대상기업집단 상위 상장사 10곳과 계열사 포함 100곳을 대상으로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사외이사 이사회 안건 찬반율을 전수조사한 결과, 총 2929개의 의결 안건 중 반대 또는 보류 표가 부결 또는 보류로 이어진 안건은 8건으로, 0.3%에 못 미쳤다.



조사 결과 전체 안건 수에 비해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 자체가 여전히 희박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이사회에서 행사한 반대표는 22건, 보류표는 총 14건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해 총 안건 가결률은 99.73%(2921건)에 달했다. 이는 국내 대기업 이사회가 여전히 총수와 사내이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사외이사의 독립적인 견제 기능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 제도는 오랜 기간 '거수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는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후보 추천 과정에서부터 경영진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작용하면서 독립성이 제한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사외이사가 주요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내거나 안건 수정을 요구하는 사례가 드물고, 이사회가 경영진의 결정을 따르는 기구로 기능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로봇 지분 인수·美 LNG 참여 반대"…사라진 반대표

사외이사의 반대표만으로 안건이 뒤집힌 사례는 사실상 찾기 어려웠다. 보류·반대 의견이 실제 부결로 이어진 경우는 대부분 총수 등 사내이사와 의견이 일치했을 때였다. 지난해 이사회 의결 안건 중 보류 또는 반대표가 나온 15건 가운데 7건은 사외이사의 이의 제기에도 그대로 가결됐다. 반대 사유로는 ▲사업 시너지 불확실성(SK네트웍스) ▲로봇 관련 지분 인수 및 사업 양도 승인(LG전자) ▲재무제표 및 영업보고서 승인(LG에이치에스애드) ▲미국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SP사 참여 건(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있었다.

특히 LG전자는 지난해 1월 자율주행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의 경영권 인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 사외이사가 "사업상 시너지 효과가 약하고, 미래지향적 사업 강화 관점과 인력 재배치 측면에서도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나머지 6명의 사내·외이사 찬성으로 가결됐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역시 미국이 추진하는 알래스카 LNG 참여 건을 두고 반대 의견이 1건 제시됐지만 통과됐다.

사업 적합성과 수익성에 대한 회의적 의견이 나왔지만 소수 의견에 그쳐 의결에 반영되지 못했다. 상법상 이사회 안건은 이사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이사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는 구조여서, 사외이사 1~2인의 반대만으로는 결과를 뒤집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사외이사들의 의견이 반영돼 안건이 수정 가결되는 경우가 9건 있었다. 지난해 포스코홀딩스에서는 내부회계관리규정 개정, 회사 성과평가·임원보상체계 개선 등 4개 안건에서 이사들의 수정 의견이 안건에 반영됐다.

반면 사외이사의 반대 의견이 실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안건이 보류되거나 부결된 사례도 일부 확인됐다. 15건 중 8건이 실제 보류·부결로 이어졌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다수는 총수 등 사내이사와 사전에 의견이 일치한 경우였다. 휴젤은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건에서 사내·사외이사 전원이 반대해 부결됐다. SK도 사외이사 전원 반대로 부결된 안건이 2건 있었지만, 두 건 모두 총수 측 사내이사와 입장이 같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사외이사의 반대가 실효를 거두려면 총수의 뜻과 맞닿아야 한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산업계에 본격적으로 생겨난 소위원회들도 과거보다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실제 영향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별 ▲평가보상위원회(보상위) ▲ESG위원회 ▲내부통제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재정위원회 ▲감사위원회(감사위) ▲회장후보군관리위원회 등이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회의에서 주요 안건을 논의하기 전 각종 소위에서 사전 논의를 거치는 등 완충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 차원에서 의견을 제시해 안건이 보류·수정되는 사례는 6건에 불과했다.

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위원회를 만들었다면 실질적 권한이 주어져야 하는데, 권력 분산이나 전문성 제고 기능은 거의 없다"며 "사추위에선 99% 회사 오너 측근, 실세들이 미리 선정한 인물을 그대로 내려보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감사위는 회계 부정 등이 터졌을 때 이사들이 져야 할 법적 책임 소재가 명확하고 크기 때문에 그나마 정착이 된 반면, 사추위나 보상위 등은 안 한다고 해서 당장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정착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상법 개정에 '편법 대응'…바뀐 게 없는 이사회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개정안은 기업 경영에서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의무 선임 비율을 3분의 1이상으로 높였다. 또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최대주주에게 합산 3% 룰을 적용해 의결권을 제한하고, 분리선출해야 하는 감사위원 이사 수도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100분의 1 이상 주주의 청구가 있을 시 집중투표제 실시를 의무화한다.

주주 가치 제고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 기업들은 이사회 수장을 외부 인사로 앉히며 독립성 제고에 나섰다. 올해 LG그룹은 ㈜LG를 비롯해 주요 상장사 11곳에서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도록 했다. 그동안 이사회 의장직을 맡아온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8년 만에 의장직을 내려놓았다. 지난해 SK그룹 지주사인 SK㈜는 김선희 사외이사(매일유업 대표이사 부회장)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하고, 카카오는 함춘승 피에이치앤컴퍼니 사장을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재계에선 이같은 변화에도 실질적인 개선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더라도 후보 선임과 안건 선정 과정에서 경영진의 영향력이 여전히 작용할 수 있는 데다, 의장직 자체가 독립적인 견제 권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또다른 전문가는 "A 기업은 사외이사 구성만 봐도 각 회사의 특성에 맞는 적합한 인물을 뽑는 게 아니라 법학 교수 1명, 회계학 교수 1명 등을 임명하는 식으로 끼워 맞추기식 구성에 가깝다"며 "후진적인 지배구조의 한계 때문에 경쟁력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B 기업에 대해서는 "그나마 이사진에게 먼저 의견을 묻고 조율한다"고 평가했다.



상법 개정 역시 이같은 구조를 개선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 주요 기업들은 로펌의 도움을 받아 정관 변경 등을 통해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오는 9월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시행되기 전 선제적으로 이사 수를 줄이고, 기존 이사들의 임기를 연장하거나 퇴임 시점을 분산시키는 등의 조치를 통해 추가로 선출할 이사가 없도록 만드는 식이다.

한화그룹은 주요 계열사 11곳에서 사외이사 임기를 일제히 3년으로 확대했다. 효성중공업도 이사 정원 축소 안건을 추진했으나 국민연금의 반대로 무산됐다. 주주 충실 의무 조항 역시 선언적 의미만 지닐 뿐 책임을 부여하는 세부 조항이 전무하며, 소송을 통해 법적 책임을 따질 수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기업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의장 자리에 총수 대신 외부 인사를 앉히는 것만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아직까지 회사가 부결이 될 만한 안건을 애초에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사외이사가 소위원회 차원에서 안건을 함께 사전 검토하는 등 논의 장치들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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