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포기했나 [특파원 리포트]
2026.06.14 13:00
오히려 북한은 핵무장 강경 자세
비핵화 용어 반복에 대한 의문도
[이명철 이데일리 베이징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년 만에 북한을 찾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정상들을 중국에서 맞이한 시 주석은 올해 첫 해외 방문지로 북한을 꼽았다. 그만큼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전략·실질적 협력을 강화하자면 연대를 과시했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였던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아 의문을 낳기도 했다. 이에 중국이 그동안 가져왔던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선회한 것 아니냔 시각도 나온다. 중국은 과연 북한의 핵 문제를 포기한 것일까.
협력 강화만 외친 북·중, 민감한 핵 문제 안 꺼내
시 주석이 북한을 찾을 것이란 소식은 지난달부터 돌기 시작했다. 시 주석은 올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독일 등 서방 정상들이 잇달아 중국을 찾아 국제 외교에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런 점에서 시 주석이 올해 해외 첫 방문지로 북한을 지목한 의도에 관심이 쏠렸다. 미·중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동맹국인 북한과의 영향력도 챙기려는 포석으로 보였다.
시 주석은 6월 8~9일 북한을 국빈 방문하면서 김 위원장과 ▲환영 행사 ▲정상회담 ▲국빈 만찬 ▲공연 관람 ▲우의탑과 노동당 간부학교 방문 ▲소규모 오찬까지 함께 하며 긴밀한 행보를 보였다.
8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신시대 중·북 관계의 최고 수준 설계와 전략적 지도를 강화하고 지역·세계의 평화, 안정, 발전, 번영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도록 협력할 의향이 있다"면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국 당과 정부는 전통적 중국과 북한 우정을 중시하는 확고한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수준과 분야에서 우호 교류를 더욱 확대·활성화하고 교류를 심화하며 외교, 법 집행, 군사 업무 교류를 강화하고 관계 발전을 위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도 "경제무역, 인프라, 과학기술, 교육, 인문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의 새로운 발전을 촉진하며 함께 현대화 길을 나아가도록 도울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측은 회담 이후 열린 환영 만찬에서 '중요한 합의'에 도달했다고도 발표했다.
북·중 회담 중 외부로 공개된 발언에서 북한 핵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2019년 시 주석이 평양을 찾았을 때 비핵화 문제를 언급한 것과는 상반된 입장이다. 특히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히려 북한이 먼저 핵 문제를 언급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시 주석 방문을 앞둔 6월 6일 담화를 통해 백악관 측 발표를 '상투적인 거짓 유포 놀음'이라고 비판하면서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는 절대 불퇴의 한계선이며 누가 인정하든 말든 엄연한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보인 가운데 시 주석이 일련의 북한 방문 일정에서 한 차례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의외로 보인다.
실질적 북한 비핵화 달성 정책 찾을 필요성도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와중에 마찰을 줄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코로나19 국경 폐쇄 여파로 중국과 교류가 뜸해졌다. 그동안 핵무기 개발을 가속함으로써 유엔 안보리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을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김 위원장이 직접 러시아를 찾기도 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하면서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동북아 정세에서 북한은 한·미·일 동맹에 대응하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중국 또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할 필요성을 갖고 있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협상력도 높아졌다. 뉴욕타임스(NYT)는 “김 위원장은 전쟁에서 러시아의 어려움을 틈타 관계를 강화하고 중국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외교 정책을 재조정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그는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공급했고 러시아는 수십억달러 상당의 석유, 식량, 무기 기술 및 기타 원조를 북한에 주며 보답했다”고 분석했다.
이미 북한의 핵 개발이 이뤄진 상태에서 재차 비핵화를 선언하는 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김 위원장은 4일 새로운 핵물질 생산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무기급 핵물질 생산 능력은 종전의 2배를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앞서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으나 비핵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지속·안정적이라고 원론적 입장을 밝히면서도 비핵화를 논의했는지 여부엔 답변을 삼갔다. 사실상 한반도 비핵화란 문구에 대해 입단속을 들어간 모양새다.
베이징 고위급 외교 소식통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체제 보장에 대한 중국 입장이 변하지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이 비핵화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 대한 무의미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계속해서 이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나 그 의미에 대한 의문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억지할 수 없는 여건에서 반복적인 비핵화 언급이 의미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견해다.
이 소식통은 "중국 스스로도 비핵화를 이뤄내지 못했단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있을 것"이라며 "중국도 용어 자체에 집착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지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입장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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