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바이든은 '경쟁' 트럼프는 '안정', 美의 달라진 대중전략
2026.06.14 09:55
“강하지만 조용하게. 큰 몽둥이, 조용한 발걸음.”
지난 5월 30일 싱가포르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국방부) 장관은 미국의 아시아 지역 안보 전략에 대해 이같이 요약했다. 또 중국과 “품위 있는 평화”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샹그릴라대화는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와 싱가포르 국방부가 해마다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개최하는 아시아 지역 최대 규모 연례 다자안보회의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비교적 정돈된 형태로 미국의 향후 계획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했다. 월터 러셀 미드 허드슨연구소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헤그세스 장관이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미국의 적대국과 동맹국을 놀라게 했다”고 했다. “아시아에서 미국 국방정책의 미래에 관한 사려 깊고 합리적인 연설을 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헤그세스 장관의 ‘신중한 연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SNS 폭언과 균형이 맞지 않아 보일 지경이었다고 그는 평가했다.
‘품위 있는 평화’
이란 전쟁 개전에 찬성했던 거의 유일한 주요 내각 구성원이었던 그는 현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주파수’가 일치하는 인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연설에서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 5월 13~15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지속가능한 세력 균형’을 원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지난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미국과 중국이 공정성과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전략적 안정’을 갖춘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묘사하면서 “우리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세력이지 그것을 교란하는(disrupt) 세력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아울러 “우리는 역내 전반에 걸쳐 (아시아 국가들이) 놀라운 성장과 기회를 가능하게 한 현상 유지(status quo)를 수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이 지역 내에서 우리(미국)의 오랜 입지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며 “단순히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할 명백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헤그세그 장관이 안정을 강조한 것은 단순한 수사로 볼 수도 있지만 트럼프 정부가 궁극적으로 중국과 어떤 관계를 수립하고자 하는가를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제이크 워너 퀸시연구소 동아시아국장은 앞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중 양국이 가장 크게 이견을 보였던 때는 미국이 양국 관계를 ‘강대국 간의 경쟁’으로 규정하고자 했을 때였다”고 지적했다.
워너 국장은 바이든 정부 당시 중국은 이런 미국의 접근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중국은 미국이 ‘전략적 경쟁’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면 양국 관계 전체가 ‘제로섬 게임’으로 바뀐다는 것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건설적·전략적 안정성을 추구하는 성명을 낸 것은 중국이 미국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고 인식한 것이자 동시에 그 안에서도 윈-윈을 추구할 수 있는 협력의 여지를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회담 직후 많은 국내외 언론은 무역 문제에서의 합의 결과가 다소 불확실한 ‘열린 결말’로 끝난 점을 지적했다. 또 대만 문제를 먼저 공격적으로 들고 나온 시진핑 국가주석의 행보가 갖는 의미에 주목했다. 하지만 헤그세스 장관의 발언 전체를 종합해 보면 트럼프 정부는 내부적으로 이번 회담이 중국과 ‘안정’을 추구한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란전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무역 문제에서 협상을 완료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을 강행한 이유일 것이다. 백악관 관료들이 회담 내내 낮은 자세로 대언론 코멘트를 자제하면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방위산업 경쟁 늘려 역량 강화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대만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국방장관이 샹그릴라대화 연설에서 대만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적어도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미·중 정상회담 과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시작부터 대만 문제를 거론하면서 단호하게 나온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회담 후 성명서에서도 ‘핵심이익’을 침해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대만은 중국의 핵심이익이다.
중국도 미국에 대해 우호적으로 발언했다. 중국 대표단 단장인 멍샹칭 국방대 교수는 전날 연설에서 헤그세스 장관이 미·중 정상회담과 양국 정상 간 합의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중국과 미국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길 희망한다”며 “양국 군 관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이며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유럽과 일본에서는 미국과의 관계 불안정성을 우려하면서 ‘협력과 단결’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주로 나왔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이란 문제는 일부러 피해갔다. 말을 보탤 수도 있었겠지만 아시아 지역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방위산업의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자신의 임기를 마칠 때 쯤에는 “주요 방산업체가 다섯 곳이 아니라 10~20곳이 되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방위산업 분야의 경쟁을 강화해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미군의 역량을 신속하게 보강하겠다는 얘기다. 이는 워싱턴 내에서 한국의 방위산업 역량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시장 진출의 기회가 생길 가능성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韓 국방비 증액, 동맹 모범 사례로 강조
한국에 관한 언급도 적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국방비 증액의 모범 사례로서 한국을 칭찬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부담 분담’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대한민국을 주목하라. 새 국제 표준인 3.5%(GDP 대비) 합류하고 재래식 방어에 대한 더 큰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위협 환경에 대한 냉철한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에 대해 중국을 겨냥한 ‘항공모함’이나 ‘단검’에 비유해 물의를 빚었던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도 이 자리에 참석해 한국 관련 발언에 추가로 설명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관련 질문이 나오자 브런슨 사령관이 직접 답하도록 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이 “(중국 같은) 다른 나라들이 이 지역에서 우리를 어떻게 볼지 고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강해야 하고, 한국 내에 적절한 역량을 갖춰야 하며, 동시에 그러한 (외부) 위협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이 갈수록 강경해지는 것에 대해 워싱턴에서 인지하고 있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보여준다.
헤그세스 장관은 또 핵추진 잠수함 관련 질문에 대해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기존에 가능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던 영역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아울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언급했다. 전시작전권 전환에 관해서는 “미군이 담당해 온 작전계획과 책임이 충분히 존중받는 방식으로,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큰 틀에서 양국이 같은 목표를 공유하지만 실행 방식에선 이견이 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워싱턴=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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