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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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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노동자, ‘아줌마’가 아닌 전문 노동자입니다

2026.06.14 09:37

책 『밥 집는 여자들』 저자 정다정 인터뷰
학교 급식실 안, 커다란 솥이 자리하고 있다. (출처: 정다정)    


매일 수백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맞이하는 따뜻한 밥 한 끼. 그 뒤에는 뜨거운 수증기와 무거운 조리도구 사이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밥 하는 아줌마’로 부르곤 하지만, 이들의 일터는 결코 가정 내 주방의 연장선이 아니다. 그들의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12년 차 급식 노동자인 어머니를 둔 딸이자, 연구자로서 급식 노동에 관심을 갖게 된 정다정 작가는 대학원 논문에 급식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후 그 내용을 바탕으로 책 『밥 집는 여자들』을 쓰게 됐다.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급식 노동은 무엇이었을까? 정다정 작가를 만나 우리 사회가 외면했던 급식 노동의 진짜 얼굴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급식 노동의 세계-
작가가 조리실 안으로 직접 들어가다
 
정다정 작가가 급식 노동에 주목하게 된 것은 대학원 진학 후 논문 주제를 정해야 했던 시기였다. 원래 여성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작가 주변에, 급식 노동자로 일하는 어머니와 이모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동이 그동안 사회적으로 비가시화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특히 조명하고 싶었던 건 ‘노동자로서의 모습’이었다.
 
“급식 노동 이야기하면 ‘힘들다’는 말이 주로 나오잖아요. 최근 몇 년 간은 ‘폐암 발병’ 문제도 있고요. 물론 그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전 급식 노동의 전문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사람들이 어떤 노동자인지에 대해서요.”
 
초기엔 인터뷰만으로 연구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용하는 도구와 노동 과정, 그들만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정 작가는 두 달 동안 직접 급식실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한 달은 배식을 돕는 급식 보조원으로, 나머지 한 달은 양해를 구하고 직접 조리실 안으로 들어가 노동의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급식 보조원은 사실 급식 조리사랑 일하는 게 달라요. 조리사는 출근도 일찍 하고 조리 과정에 참여하지만, 보조원은 배식을 돕는 거라 하루에 3시간 정도 일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리사들의 노동을 직접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양해를 구했죠.”
 

책 『밥 집는 여자들』을 쓴 정다정 작가 (출처: 정다정)    


수백 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고도의 전문성과 리더십
 
정 작가가 현장에서 목격한 것은 집에서 서너 명의 밥을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대량 조리의 고도화된 숙련도’였다. 사람들은 흔히 ‘집에서 요리 좀 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치부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오징어국을 끓인 적이 있어요. 보통 집에선 오징어를 넣고 끓여서 끝내잖아요. 근데 급식실에선 오징어를 넣어서 끓이다가 다시 건져내더라고요. ‘왜 그렇게 하시는 거냐’고 물었더니, 500~600인분의 오징어국을 끓일 때 재료를 한 번에 다 넣고 끓이면 장시간 조리로 인해 오징어가 질겨진다는 거에요. 그래서 급식 조리사들은 오징어를 먼저 데쳐 맛을 내고 건져낸 뒤, 국을 다 끓인 후 배식 직전에 오징어를 다시 넣는 방식으로 조리하시더라고요.”
 
수백 명분의 면을 삶을 때도 끓는 물 대신 오븐 역할을 하는 ‘스팀기’를 이용했고, 대량의 시금치를 데쳐서 씻을 때도 뜰채로 모두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특수 제작된 수조 밑의 배수구를 열어 물을 빼면서 효율적으로 채소를 건져냈다. 거대한 무침기에 밥과 재료를 넣고 뭉치지 않게 일일이 손으로 섞는 볶음밥 조리 과정 역시 대규모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요령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숙련된 조리사들은 정해진 짧은 시간 내에 안전하게 음식을 내기 위해 단순한 요리사를 넘어 “전체 조리실의 흐름을 지휘하는 ‘리더’의 역할”을 수행했다. 오븐에 생선과 빵을 함께 구울 때 냄새가 섞이지 않도록 순서를 조율하거나, 각 노동자들의 동선과 비는 시간을 파악해 즉각적으로 업무를 재배치하는 등 전체 공정을 통솔하는 능력을 보였다.
 
“일하시는 분들이 농담으로 경력이 많은 분을 두고 ‘저 사람은 뒷통수에도 눈이 달렸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럴 정도로 누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아는 거에요. 마감이 정확한 시간 내에 음식을 완료해야 하니까, 지금 누가 어떤 작업을 맡아야 하는지 파악하고 있는 거죠.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능력인 거죠. 그리고 학교 급식은 학생들의 건강을 염두해야 하기 때문에 염도도 체크하거든요. 그걸 체크하는 기계가 있는데, 오래 일하신 분들은 그것도 정확히 맞춰요. ‘지금 이거 염도 몇 정도 나오겠네’하고 기계로 확인해 보면 그 숫자더라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토록 중요한 숙련도와 몸에 축적된 경험은 공식적인 매뉴얼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 10년 차와 1년 차의 경력 수당 차이가 고작 1~2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된 역사, 그에 반하는 노동 강도와 산재
 
그 이유에 대해 정다정 작가는 “노동의 저평가 이면에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책 『밥 집는 여자들』(정다정 기록, 산지니)    


 
1990년대 학교 급식이 확대되던 시기, 급식 노동은 일하는 기혼 여성들의 도시락 싸는 가사노동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정 작가는 “이 과정에서 여성 노동의 전문성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 없이, 단순히 다른 계층의 여성을 값싼 노동력으로 채워 넣는 방식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들의 노동은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고, 우리 사회는 급식 노동자들을 전문 노동자가 아닌 ‘아줌마’, ‘이모’로 퉁쳐버리고 말았다. 이런 식의 급식 노동에 대한 편견과 무지의 여파는 오늘날 고위험, 고강도의 노동 환경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정 작가는 급식 노동자들의 위험한 노동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학교 급식실은 인력이 너무 적어요. 다른 공공기관이나 군대의 경우, 조리 인력 1명당 70명 정도의 식사를 감당하는 반면, 학교 급식실은 1명당 학생 120~150명을 감당하고 있죠. 이런 상황은 당연히 노동자에게 업무가 가중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연쇄적으로 많은 문제를 발생시켜요. 일을 빨리 해야 하니까 바쁘고,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사고가 나는 거죠. 급식실 자체가 사실 위험한 공간이잖아요. 항상 물이 바닥에 있고, 뜨거운 물을 쓰고, 칼질도 계속 하고요. 그런 환경 속에서 마음이 급하다 보면 사고가 나는 거에요.”
 
급식실에선 화상이나 근골격계 질환 같은 산업재해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더불어 더 큰 문제는 노동자들이 회복할 시간, 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치거나 아프면 회복을 해야 하잖아요. 근데 쉬질 못해요. 왜냐면 일할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요. 내가 쉬면 동료가 힘들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쉬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인력 확충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밥 짓는 아줌마’에서 연대하는 ‘노동자’로
 
고립된 공간에서 침묵하던 이들에게 변화를 가져온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노동조합’이었다. 과거 급식 노동자들은 휴가를 쓰지 못해도 보상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에 무조건 서명하거나, 행정실 직원의 하대에도 묵묵히 참아야만 했다. 또한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하다가 화상을 입는 등 불필요한 관행 속에서 산재를 당하면서도 자비로 치료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노조에 가입한 후, 이들은 부당한 사측의 요구가 불법임을 깨닫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급식실 내 소독고에 앞치마와 고무 장갑 등이 걸려있다. (출처: 정다정)    


“가끔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하라는 학교가 있대요. 근데 약품을 써서 청소하는 거기 때문에 뜨거운 물로 안 해도 되거든요. 뜨거운 물로 청소를 하려고 하면 화상 등의 사고가 더 일어나기도 하고요. 그런 요구가 있을 때 ‘그렇게 안 해도 된다’는 걸 노조에서 알려주는 거죠. 또 급식실은 학교 건물과 분리된, 좀 고립된 공간일 때가 많아요. 다른 학교 직원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으니까 ‘외딴 섬’처럼 존재하기도 하는 거에요. 그리고 학교에서 보내는 공문은 영양사만 볼 수 있고요. 그러니까 여러 행정 정보에서 차단되는 거에요. 근데 노조에 가입하니까 노조에서 바로 바로 정보를 알려주더라는 거에요.”
 
노조 활동을 통해 이들은 “자신들을 ‘돈 벌러 나온 아줌마’가 아닌 ‘당당한 급식 노동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것. 정 작가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무척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급식 노동에 포함된 아이들을 향한 ‘돌봄’
 
책에선 급식 노동자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와 행위를 ‘돌봄’으로 해석한다. 정 작가는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이 힘든 노동을 이겨내는 가장 큰 방식으로 ‘아이들을 향한 돌봄과 애정’을 꼽았다”고 했다.
 
“제가 일했던 곳은 남자 중학교였는데, 정말 배식 시간이 전쟁터 수준이거든요. 거의 500명의 남중생들 몰려오는데 배식이 10~20분 사이에 다 끝나요. 그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폭풍처럼 몰려오기 때문에 보조원도 조리사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심지어 장난치는 학생들도 있고, 그럼 더 정신이 없죠. 근데 그 와중에도 조리사들은 학생들의 기호를 파악해 돈가스 소스를 찍먹/부먹으로 나눠주더라고요. 또 다친 아이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반찬을 뺏어 먹는 아이를 훈육하기도 하고요.”
 
이는 단순한 서비스 정신이나 모성애로 퉁쳐서 설명할 수 없는, 매일 밥을 먹이며 쌓아 올린 고도의 ‘돌봄의 기술’이자 자부심이다. 정 작가는 “이들이 학생들에게 단순히 밥만 먹여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급식실을 ‘배움과 돌봄의 장’으로 재구성하며 고된 노동을 긍정적인 의미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이지 않는 노동에 새로운 이름 부여하기
 
최근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인력 배치 기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지만, 정 작가는 “법 제정이 끝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인력 확충 수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작가는 “이 책이 제도를 만드는 정치인과 교육 행정가들, 그리고 같은 학교 건물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진짜 노동을 잘 모르는 영양사와 교직원들에게 닿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할 때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줌마가 아니라 전문 노동자입니다.” 정다정 작가가 뜨거운 조리실에서 길어 올린 이 선언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가사 노동’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값을 매기고 지워버렸던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빼앗긴 이름을 되찾아주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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