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전
“세상에 벌써 끝났네, 정말 멋진 하루였다” [경계의 사람들]
2026.06.14 09:10
낡은 창문을 갈아끼우는 공사가 한창이라 모든 물건에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는다. 로베르토(73)는 다리를 절뚝이며 노인 지원 주거시설의 조그만 방 안을 청소해보려다 풀썩이는 분진에 고개를 내젓는다. 벌써 몇 주째 건물 전체 창문을 교체하느라 혼자 사는 작은 방이 엉망이다. 로베르토는 이내 청소를 관두고 의자에 걸터앉는다. 오래 서 있고 나면 반드시 다리를 쉬어줘야 한다. 통증은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온다. 발바닥이 따끔거린다는 건 기나긴 통증이 올 거라는 신호다. 두 번째 심근경색은 5년 전이었다. 심장에 다시 피를 돌게 하려면 다리에서 건강한 정맥을 떼어내어 이식해야 했다. 다리 세 군데를 절개했고 심장 혈관에 우회로 네 개를 만들었다. 2주간 수술이 다섯 번 이어졌다. 심장은 제 기능을 하게 됐지만 다리 근육 일부가 괴사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후유증은 여전하다. 보도블록이 깨져나가 울퉁불퉁한 런던 거리를 지팡이를 짚고 걷다 보면 때론 길에서 무너질 것만 같다. 추운 날이 유독 힘들다.
영국의 5월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지난주엔 천둥이 치고 우박까지 내렸다. 그 춥던 날 마주쳐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눈 이웃을 로베르토는 잠시 떠올린다. 같은 건물에 사는 허리가 심하게 굽은 80대 노인이었다. 거동이 불편해 슈퍼마켓에서 장을 대신 봐달라는 부탁을 자주 해오던 사람이다. 그는 2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시설로 옮기게 됐다고 했다. 로베르토는 “혼자 사는 건 아무래도 우울한 일이니 당신이 좋은 곳으로 가게 되어 기쁘다”라고 대꾸했다. 홀로 집 안에 있다 보면 점점 삶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전부 포기하겠다는 나쁜 생각만 든다는 걸 로베르토는 잘 안다. 그는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며 밖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또래 친구들을 꽤 많이 봤다. 바깥에서 바삐 움직여야 정신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로베르토는 생각한다. 그건 찰나일지라도 고통을 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리가 아플 때도 그가 외출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먼지투성이 방을 둘러보던 로베르토는 무심코 옷장에 눈길이 닿자 아이처럼 미소를 짓는다. 옷장 안쪽에는 턱시도 여러 벌이 걸려 있다. 라인스톤이 잘게 흩뿌려져 은은하게 반짝이는 검은 턱시도를 지난달에 새로 샀다. 거울 앞에서 미리 입어보며 로베르토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 댄스클럽에 대해 생각한다. 런던 동부 해크니 지역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더 포시 클럽(The Posh Club)’이다. 60세 이상만 들어갈 수 있다. 로베르토는 전날 밤 잠을 설칠 정도로 들떴다가, 매번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갈색 벽돌 교회 건물 앞에 줄을 선다. 그가 기다리는 건 춤과 공연이기도, 농담과 미소이기도 하다.
줄을 서 있으면 웨이트리스와 웨이터 복장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 가진 옷 중에서 가장 근사한 걸로 차려입은 노인들이 하나둘 도착해 얼굴을 빛낸다. 그중 일부에겐 이게 그달의 유일한 외출이다. 이윽고 오전 11시30분 문이 열리면, ‘한낮의 나이트클럽’이 나타난다. 과거로 돌아간 듯 천장에는 번쩍이는 디스코볼이 돌고 있다. 고풍스러운 빈티지 식기에 샌드위치와 차가 담뿍 담겨 나오고 샴페인 잔도 오간다. 황금빛 의자에 앉아 3시간 동안 마음껏 먹고 마시며 드래그 퀸 공연, 누드 발레 공연, 훌라후프, 코미디, 서커스 등을 볼 수 있다. 교회의 다목적 공간을 빌린 자리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속되고 신나는 공연이다. 주로 70~90대인 참가자 120명이 어울려 춤을 추며 새 친구를 사귄다. 몸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은 휠체어 위에서 팔을 달싹이며 어울린다. 댄스플로어 옆엔 목발과 지팡이가 흔하게 보인다.
일본계 브라질 출신 이주민인 로베르토가 그 댄스클럽을 알게 된 건 다른 이주민 노인들을 도우면서였다. 영어가 서툰 이주민 노인들을, 언어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그리고 은퇴 뒤 우울감을 느낄 무렵 포시 클럽이 다시 떠올랐다. 그곳에서 춤과 공연을 매개로 사람들과 왁자하게 어울리면 시름이 잦아들었다. 그곳에 오는 많은 노인들이 자녀나 가족에게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대개 자기 이야기도, 가족 이야기도 꺼린다. 묻는 것 역시 조심스러워한다. 그저 손을 내밀고 음악에 몸을 맡기며 함께 춤을 춘다.
로베르토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도 그 공간 안에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진다고 느낀다. 춤을 잘 추는 로베르토에게 사람들은 끊임없이 손을 내밀고 춤을 청하고 말을 건다. 그는 다리 통증이 고문처럼 올라올 때면 잠시 쉬려다가도, 사라지는 시간이 아깝고 아쉬워 금세 스테이지로 돌아간다. 내일 죽는다고 하더라도 당장 주어진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다. 시간이 얼마나 금방 가버리는지, 공연과 춤이 끝나면 “세상에, 벌써 끝났네, 정말 멋진 하루였다”라고 감탄하며 탄식한다. 음악과 춤으로 고조된 기분 덕분에 하루종일 배가 고프지 않을 때도 있다. 행복하고, 노곤하다. 화물이나 금융 쪽 일만 평생 해온 로베르토에게 열린 새로운 삶이다. 또래 친구들이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외로워 보이거나, 우울해하면 로베르토는 늘 이렇게 말한다. “이봐, 우리 다 같이 포시 클럽에 가자. 적어도 세 시간은 다 잊을 수 있을 거야.”
“아무나 못 가는 파티에 오실래요?”
WHO 사회적연결위원회(Commission on Social Connection)에 따르면 노인의 사회적 고립은 세 명 중 한 명이 겪을 정도로 흔하다. 노년의 외로움은 단일한 원인으로 진단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다. 사회경제적 계층, 정책, 제도, 인프라가 모두 얽혀 있고 바탕에는 연령 차별과 수치심이 깔려 있다. 그중에서도 이주민·난민·장애인·LGBTQ+(성소수자) 등 소수자일 경우 고립이 가중되기 쉽다. 사회는 노인들이 생존 그 이상을 욕망할 수 있으며, 내일을 기다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퀴어들은 달랐다. 정상성에서 배제되고 잦은 상실을 견디며 ‘선택된 가족’과 공동체를 꾸려온 지혜를 노년층에게로 확장시킨다.
사이먼(59)은 슈퍼마켓에서, 시장에서, 런던 해크니의 구청 앞에서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비 넥타이를 맨 채로 사람들을 기다린다. 진주 문양으로 꾸며진 고급스러운 초대장을 건네며 해크니 지역의 노동계급 노인들에게 말을 붙인다. “안녕하세요, 아무나 못 가는 파티에 오실래요? 당신과 나처럼 멋진 사람만 올 수 있는 곳이에요. 옷을 쫙 빼입고 오실 수 있나요?” 사이먼이 찾는 사람들은 환경미화원·간병인·식당 노동자·가사 노동자 등 사회의 필수 노동과 돌봄을 담당해온 노인들이다. 이주민, 유색인종, 장애인들. ‘계급’이라는 말로 자신을 정의하기보다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는 노인들. 젊었을 때 다니던 댄스홀이나 빙고 홀은 다 사라지고, 이젠 어쩌다 한 번 오는 가족을 기다리며 텔레비전만 보는 노인들. 사회적 접촉도, 외출할 기회도 적은 노인들. 사이먼은 당신이 외로워 보여서 초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소득층이거나 노동계급이라 초대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화려한 파티와 젠체하지 않는 예술을 보고, 칵테일을 마시러 오라고 권한다.
사이먼은 노동계급 노인들이 일하느라 친구를 사귈 여유가 충분치 않았다는 걸 안다. 그의 부모도 노동계급이었고 다섯 자녀를 키우느라 삶에 치여 친구라곤 없었다. 가정에만 헌신했던 어머니 르네가 남편과 사별한 뒤 심한 고립감을 겪는 걸 사이먼은 지켜보았다. 14년 전인 2012년 당시 83세였던 르네와 이웃 노인들을 위해 사이먼이 연 조그만 파티는 ‘더 포시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노인들에게 확장됐다. 이제는 영국 런던 등 네 곳에서 매달 정기적으로 열린다. 항상 매진이지만 한 클럽당 120명 이상을 받지 않는 이유도 서로 충분히 알고 지낼 수 있는 마을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입장료 10파운드에 부담없이 ‘사교의 민주화’를 누리게 하고 싶다.
처음 포시 클럽을 기획할 때는 다른 시대적 배경에서 살아온 데다 대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노인들에게 ‘동성애 혐오’가 있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노인들은 젊은 퀴어 자원봉사자들과 기쁘게 어울려 춤을 추었다. 노인들은 레즈비언 진행자의 재치에 웃음을 터트렸다. 웨이트리스나 웨이터 복장을 한 사람의 성별이 모호해 보여도 딱히 따져 묻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저렴하게 대여할 수 있는 낡은 교회는 꼭 어울리는 협업 상대가 되었다. 정부 예술 지원금과 자원봉사로 지속가능성을 찾았다. 사이먼이 함께하는 퀴어 예술 컬렉티브 덕키는, 평생 사회에 돌봄을 베풀며 고되게 일해온 사람들이 포시 클럽을 통해 관심과 돌봄을 돌려받기를 바란다. 관객으로 참여하던 로베르토의 춤 솜씨를 눈여겨보다가 크리스마스 파티에 단독 공연을 해보자고 제안하는 식이다. 다리가 불편한 로베르토는 지팡이와 의자를 활용한 춤으로 무대에 올랐다. 포시 클럽이 열리는 ‘마지막 주 수요일’을 기다리는 건 노인만이 아니다. 자원봉사자도 계속 그곳으로 돌아온다. 돌아갈 곳, 기다릴 일이 있다는 건 모두가 외로움과 싸우는 걸 도와준다.
집 열쇠를 나눠 받은 자원봉사자
모든 노인이 집 밖에서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건 아니다. 그런 경우엔 바깥 공기를 가져다주는 친구가 절실해진다. 드물게 맑은 햇빛에 공기가 슬쩍 들뜨던 지난해 4월 오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걸어 집에 돌아가던 잭(61)은 ‘오늘이 그날인가’ 생각하며 ‘오픈하우스’의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게이인 잭은 오랫동안 이 도시가 자신을 반겨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원봉사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올 때부터 저소득층 아파트에 당첨돼 들어갈 수 있었다. 공공청사 건물에서 청소하는 일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파트너와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 총에 맞아 죽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보수적인 도시,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며 커밍아웃을 하기도 쉽지 않은 잭에게 샌프란시스코는 오래 기다린 집과도 같은 도시였다. 에이즈(AIDS·후천면역결핍증)에 감염된 지 34년째였다. 같은 병에 걸린 숱한 친구들을 떠나보냈다. 감염 사실을 알게 된 당시엔 사형선고와도 같은 병이었는데, 꿈꿔본 적도 없는 60대가 됐다. 시간을 벌었으니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오픈하우스’는 잭의 집에서 가까운 퀴어 커뮤니티를 위한 비영리단체다. 자원봉사자로 등록하고, 매주 토요일 아침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가 어울려 커피를 마시는 모임부터 참가하기 시작했다. 잭이 혼자 브런치를 사먹을 정도의 돈이면 스무 명은 먹일 간식을 사갈 수 있었다. 사람들이 그 음식을 나누어 먹는 걸 보며 뿌듯해하다 보면, 그 모임을 누가 만들었는지 이따금 궁금해졌다. 궁금증은 의외로 노인 방문 자원봉사를 하던 첫날 풀렸다.
2025년 크리스마스 무렵 처음 만난 데이브(84)는 요양병원에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관절염과 디스크로 허리가 매우 좋지 않다고 했다. 낙상으로 팔을 다쳐서 팔걸이 붕대도 한 상태였다. 먹어야 하는 약의 양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약을 든 간호사가 연이어 들어오며 대화가 중간중간 끊겼다. 잭은 고향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데이브 또래인 잭의 아버지도 척추뼈와 고관절이 좋지 않아 수술해도 살아남을 확률이 50%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멀리 살다 보니 주로 형제들에게 아버지 간호를 맡기고 있는 잭은,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데이브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온통 하얗게 센 데이브는 젊은 시절엔 한가락 하던 샌프란시스코의 히피이자 헌신적인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였다고 들었다. 세대 간 대화를 도모하는 커피 모임을 오픈하우스에 도입한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약 기운으로 멍해 있던 데이브는, “어서 건강을 회복하셔서 커피 모임에 돌아오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잭이 말을 건네자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는 양 놀라며 기뻐했다. “아프고 나선 내가 다시 거기 갈 수 있다곤 생각도 못 해봤네. 다시 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 잭이 불교 신자라는 걸 데이브에게 설명하는 걸 듣던 옆 침대 노인이 무심코 말을 걸어왔다. “혹시 불교에선 자살에 대해 뭐라고 해요?” 여생을 침대에 누워 보내야 한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다고 했다. 잭은 병실에 드리워진 죽음의 기운에 슬퍼졌지만 대답 대신 불경을 들려주었다. 환자들은 그걸 듣거나 따라 했다.
오픈하우스의 자원봉사자는 교육을 거친 뒤, 자신과 비슷한 성정체성이나 공통점을 가진 노년 세대 한 명과 연결된다. 게이이고 스무 살가량 차이가 나는 잭과 데이브가 짝이 되는 식이다. 노년층을 돌보는 비영리단체가 주로 운영하는 ‘방문 봉사자(Friendly Visitor)’ 프로그램 중 하나다. 간병이나 원치 않는 돌봄에선 어느 정도 경계를 두도록 교육받고, 만나서 대화하는 걸 주된 역할로 부여받는다. 오픈하우스의 경우 한 달에 최소 두 번 이상 만나 1시간30분 이상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느슨한 규칙이 있다. 그런 정도 틀 안에서 LGBTQ+ 노인들이 다음 세대와 연결되어 친구가 되도록 돕는다.
현재 노년이 된 퀴어 노인들은 동성 결혼이나 양육에 대한 법적 장벽이 오래 지속되거나 여전히 남아 있는 탓에 가정을 꾸리거나 자녀를 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고, 빈곤율도 높다. 이런 구조적 원인은 독거와 사회적 연결 약화로 이어진다. 워싱턴 대학이 미국의 성적·젠더 다양성을 가진 노인들을 추적 관찰해 연구한 결과, 외로움 비율은 일반 노인의 거의 두 배에 이르렀다. 데이브의 경우에도 홀로 낙상 사고를 당해서 보행자가 그를 발견하기 전까지 길에 방치되어 있었다. 오픈하우스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커뮤니티의 눈과 귀가 되어달라고 교육한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고립을 줄이는 방법이다.
방문 자원봉사로 연결된 사람들 중에는 세대 차가 큰 경우도 있다. 그중엔 20대 바이섹슈얼 여성 티타와 70대 레즈비언 여성 매기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날 정도로 가까워진 사례도 있다. 매기는 티타에게서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 실험과 신선한 시각을 배우고, 이주민인 티타는 매기에게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산 역사를 배운다. 우정은 때로 10년 이상 장기적 관계로 발전해 ‘선택된 가족’이 되곤 한다. 원가족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은 퀴어들에게 이런 관계는 양쪽 모두에게 대안적 가능성이다.
데이브가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3월, 잭은 냉장고를 열어 정리할 정도로 그와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요양병원에서 혹시라도 혼자인 데이브를 소홀히 대할세라 퇴근 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들른 결과였다. 유통기한이 5년은 족히 지나 완전히 층이 분리된 케첩이나 언제 넣어뒀는지 알 수 없는 냉동 채소를 몽땅 정리했다. 거의 먹지 않은 작은 샌드위치가 냉장고에 남아 있는 걸 보고, 데이브가 제대로 먹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통증이 심할 때 데이브는 잠을 오래 자서 견뎌보려고 한다. 먹는 시간을 놓치고, 힘이 없으니 다시 잠에 빠진다. 보행 보조기를 쓰지 않으면 걸을 수 없어서 늘 뉴스를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 있다. 한번은 옷장 안에 와인 8병이 감춰져 있는 걸 봤는데 나흘 뒤 가보니 몽땅 사라졌다. 술에 취해 고통을 잊는 편을 택한다는 것도 그렇게 눈치챘다.
데이브의 집 열쇠는 데이브의 친구와 간병인, 옆집 이웃, 그리고 잭까지 네 사람이 나누어 갖고 있다. 잭은 수시로 그 집을 드나든다. 먹지 않는 게 걱정되어서다. 먹고 싶은 걸 물어 직접 요리를 하고, 데이브가 오랜만에 잘 먹는 모습을 기쁘게 보며 남은 걸 소분해두고 오기도 한다. 하루는 우연히 꽃을 가져갔더니 데이브의 얼굴이 환하게 달아오르며 오래전 가꿨던 정원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젠 매번 작은 부케를 빵과 함께 가져간다. 데이브는 꽃과 빵을 받고 기분이 좋을 때면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사랑의 여름’에 히피들끼리 모여 살며 인권운동을 하던 얘기를 들려주곤 한다. 도시에서 소요가 일어나면 모두 달려가서 해결하던 무용담 따위를 어제 일처럼 떠올리며 젊음으로 잠시 돌아간다. 보수적인 도시에서 이주해온 게이인 잭에게, 손윗세대인 데이브가 히피 공동체 안에서 보낸 청춘은 이상향이자 전수받고 싶은 역사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자신의 노년도, 데이브가 겪고 있는 노년을 보며 구체적으로 그리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공청사에서 청소 일을 하는 잭은 황동을 빛이 나도록 닦는 걸 무척 좋아한다. 90년이 넘은 그 건물에는 황동으로 된 계단 난간 손잡이가 1층부터 4층까지 빙 둘러 있고 거대한 황동 문도 여럿 있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작은 수건을 들고 황동을 문지르자 검은 때가 묻어나오며 묵직하게 윤기가 도는 원래 모습이 드러났다. 오래 지나지 않아, 계단 난간 아래쪽이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고 방치돼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아래쪽이 한 번도 제대로 빛난 적 없었다는 생각에 잭은 오래도록 사로잡혔다. 건물의 다른 청소는 미뤄두고 오로지 황동만 끝없이 닦고 싶을 정도였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청사 앞을 지나다 자문했다. 왜 그렇게 황동을 닦는 데 집착하게 됐지?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다. 오래되고, 누구도 봐주지 않으며,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다시 빛나게 만드는 느낌이 좋았다는 걸. 오래된 황동을 뽀얗게 윤이 나도록 닦아서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순간이 좋았다는 걸. 낡고 오래된 금속에 점점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고 있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그렇게 닦고 또 닦아 제 모습을 찾아줄 수 있는 한 다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에 왈칵 눈물이 났다. 제련하고 다듬으면 본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건 그가 믿는 불교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데이브에게 꽃을 선물하고는, 표정이 사라졌던 그 얼굴에 풋풋한 빛이 드는 걸 보는 것 역시 딱 그런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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