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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와 고노의 ‘간담상조’...대통령 취임 다음날 단둘이 조찬

2026.06.14 06:31

[이하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115회>]

일본 ‘고노 담화’ 주역 고노 요헤이 89세로 별세
70년대 김대중 납치사건 때부터 깊은 인연 쌓아
청와대서 둘이 만나 새로운 한일관계 구축 논의
DJ, 간 이식 수술 고노에 당일 위문 편지 보내기도

2000년 3월 27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고노 요헤이 외무상을 접견 하고 있다. 두 사람은 1970년대부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아 양국관계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경제신문은 두 사람의 관계를 서로 간과 쓸개를 보여줄 정도로 속마음을 털어 놓는 '간담상조'에 비유했다./e영상 역사관

일제 시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역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이 8일 별세했습니다. 향년 89세였습니다.

일본 언론은 그의 죽음을 단순한 원로 정치인의 별세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 주요 신문들 그가 전후 일본 정치에서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강조한 큰 정치가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고노는 1993년 발표된 ‘고노 담화’로 기억됩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 과정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의 뜻을 밝힌 이 담화는 훗날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으로 이어지는 한일 화해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고노 담화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정치인

저 역시 고노 담화를 통해 그를 알게 됐습니다. 1999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외교통상부를 담당하면서 처음 그를 알게 됐고, 도쿄 특파원 시절에는 그와 그의 아들 고노 다로 의원(외무상, 방위상 역임)과 관련된 기사를 여러 차례 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제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그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2015년 8월 출간된 고노 요혜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의 회고록 '일본 외교에 대한 대한 직언' 표지.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나왔으며 맨 마지막에는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의 대담이 실려 있다.

저는 70년대부터 이어진 두 사람의 깊은 관계에 의해서 한일 화해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경제신문이 고노의 별세를 추모하면서 DJ와의 관계를 ‘간담상조(肝膽相照)’라고 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국적은 달랐지만, 간과 쓸개를 서로 꺼내 비춰본다는 고사성어에 걸맞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깊이 신뢰하는 관계였습니다.

고노는 생전에 ‘일본 외교에 대한 직언-회상과 제언’이라는 책을 통해 일본의 외교 정책 및 자신이 관련된 비화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2015년 출간된 이 책에서 DJ와의 인연과 비사를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고노는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당시 일본 정계에서 그에 대한 구명운동에 앞장서면서 인연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정치적 교류를 넘어 신뢰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이 책에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장면 1] DJ 취임식 다음 날 통역 없이 단둘이 식사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장면은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후 있었습니다. 김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에서는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 다케시타 노보루와 외무상을 지낸 고노가 참석했습니다. 고노는 “두 전직 총리는 왜 내가 초청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기록했습니다. DJ 납치사건 이후, 쌓아온 두 사람의 인연이 일본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겁니다. 고노는 취임식 다음날 아침 청와대에서 통역도, 비서관도 없이 단둘이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임식 다음 날 전직 일본 각료와 단 둘이 비공개 식사를 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김 대통령은 마음으로부터 축하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지금부터 한일 관계를 단단히 구축해 가자고 했습니다.

고노는 “도쿄에서는 여러 차례 만났지만 서울에서 처음 만나게 된 자리가 김 대통령과의 면담이 됐다. 그가 겪어온 긴 고난의 세월을 알기에 꿈만 같은 일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처럼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논의했습니다.

그로부터 반년 뒤 김 대통령은 다시 고노를 서울로 초청했습니다. 이번에는 당일치기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해 두 시간 동안 단둘이 회담했습니다. 양국 현안에 대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눴는데, 고노는 DJ 임기 중인 1999년 10월 다시 외무상으로 기용됐습니다.

2000년 3월 26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과 고노 요헤이 일본 외무상이 대북정책 공조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갖고 있다./조선일보

[장면 2] 간 이식 다음 날 아 9시에 받은 DJ 위문 편지

고노는 오랫동안 앓던 C형 간염 악화로 아들 고노 다로 의원으로부터 간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정치인은 한사코 자신의 병약한 모습을 보이기를 꺼려합니다. 하지만 고노는 일본 사회에서 간 이식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어서 사회적 의미를 고려,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공개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9시쯤 예상치 못한 ‘손님’이 국회로 찾아왔습니다. 주일 한국 대사관 소속 외교관이 김 대통령의 자필 위문 편지를 들고 의원회관을 찾아온 것입니다. 고노는 “나의 수술 소식을 듣고 아마도 김 대통령이 급히 편지를 써 마지막 항공편으로 보낸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 고노가 DJ를 외경(畏敬)하는 정치가로 부르는 것은 이런 배경도 있을 겁니다.

그로부터 1년 뒤 김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자 고노는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단을 내립니다. 간 이식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의사들이 비행기 탑승을 만류했습니다. 주변에서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김대중 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후 방한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으로서 고군분투한 김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직접 위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 결국 의사에게 알리지 않은 채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2009년 8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왼쪽에서 두번째)이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부장,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무장관 등이 헌화를 마치고 걸어나고 있다./조선일보

김 대통령 취임 후 1년 8개월이 지난 1999년 10월 다시 외무상이 된 그는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섰습니다. 그는 “고난의 시절부터 서로를 지지해 온 국경을 초월한 정치인 간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꼈다. 어떤 주제든 주저 없이, 안심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김 대통령은 일본을 신뢰했고 양국 현안에 대해 과감한 결단을 내려주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국내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 결단은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고노는 김 대통령 재임 후반기에는 안타깝게도 일본 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적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고노의 일본 정치 비판

고노가 회고록에서 밝힌 실망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이 먼저 손을 내밀었음에도 일본이 충분히 화답하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김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 문화를 개방했지만, 일본 측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구체적 조치가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일본 측이 보다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화답했다면 한일 관계는 더욱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실제로 양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이를 넘어 양국 국민 간 교류를 장기적으로 확대하고 미래 세대의 상호 이해를 넓힐 수 있는 보다 과감한 정책과 제도적 장치까지는 일본이 나아가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고노는 “나 역시 외무대신으로서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일부는 실현됐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회고했습니다.

고노가 꼽은 두 번째 실망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였습니다. 고이즈미는 2001년 4월 취임 후, 같은 해 8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이듬해인 2002년 4월에도 다시 참배했습니다. 두 차례 모두 김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고노는 그의 야스쿠니 참배가 한일 관계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습니다. 어렵게 구축해 온 한일 간 신뢰를 흔드는 상징적 사건이었다고 봤습니다.

그는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의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방한에 앞서 후쿠다 야스오 당시 관방장관(나중에 총리)에게 “누구나 거리낌 없이 추도할 수 있는 새로운 국립 추모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국내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특정 종교색이나 역사 논란에서 벗어난 새로운 추모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겁다. 아울러 이 문제와 관련한 정부 자문기구의 논의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도 직접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후쿠다 장관은 “언제 실제 건설이 가능할지는 약속할 수 없지만 절차는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고노는 이 같은 내용을 김 대통령에게도 전달했습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어느 정도 이해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새로운 추모 시설 건립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고노는 회고록에서 이 문제를 언급하며, 당시 어렵게 쌓아 올린 한일 화해와 신뢰의 흐름이 일본 정치의 한계로 인해 충분히 이어지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DJ와의 신뢰에 기반한 약속을 지키려 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의 버팀목이었던 일본 정치인 고노 요헤이의 삶과 업적을 기억하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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