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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연의 K컬처] ‘참교육’의 한계: 교사의 참된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2026.06.13 00:11

김치, 강남스타일, BTS, 영화 기생충 등 일과성 이벤트들에 머물렀던 세계의 관심이 이제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K컬처로 대변되는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현상들, 그리고 그들의 명과 암을 사회과학적으로 관찰하고 반추해 봄으로써 한국문화의 본성을 재조명해본다.

넷플릭스 제공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의 흥행 돌풍이 매섭다. 학교 폭력과 악성 민원, 촌지, 시험문제 유출 등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대한민국의 교실에 가상의 초법적 국가 기관인 ‘교권보호국’이 투입돼 악질 가해자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한다는 이 파격적인 설정은, 답답한 현실에 지친 대중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있다. 교사를 죽음으로 내몬 악성 민원이나 갈수록 흉악해지고 지능화되는 10대 소년범죄 등 현실에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참담한 비극들이 극 안에서는 비현실적이리만큼 철저한 인과응보로 귀결된다. 하지만 화면 속 시원한 타격감이 지나간 자리에는 묘한 씁쓸함과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에서 교권 침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속이 후련할까. 교사는 정말 무력한 집단인가. 현실에서는 폭력도 사용할 수 없는(물론 해서도 안 되지만) 그들에게 남은 권력은 이제 없는 걸까.

사회심리학자 존 프렌치와 버트램 레이븐이 제시한 ‘권력의 5가지 원천’은 대인관계에서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고전 이론이다. 공식적인 직위나 법적 규정에 의해 통제하고 지시할 수 있는 ‘합법적 권력’, 타인이 원하는 경제적·사회적 이익(돈·승진·성적 등)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보상적 권력’, 처벌이나 불이익 등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줘 공포로 굴복시키는 ‘강압적 권력’,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정보력에 기반해 상대의 신뢰와 의존을 이끌어내는 ‘전문가 권력’, 상대방의 자발적 동경(‘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을 이끌어내는 ‘준거적 권력’ 총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이 다섯 가지 권력의 원천 중, 무너진 교실에서 그나마 유효하게 남아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참교육을 시전할 수 있는 주먹일까, 지식을 앞세운 전문성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각 권력을 ‘독립성’과 ‘영향력의 범위(force field)’에 기반해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독립성은 권력자가 눈앞에 부재하거나 직접적인 감시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 영향력이 지속되는가를 묻는다. 채찍을 휘두르는 ‘강압적 권력’이나 당근을 쥐어주는 ‘보상적 권력’은 이 척도 앞에서 무너진다. 감시카메라가 꺼지거나 보상이 끊기는 순간, 강제되던 질서는 무너지고 권력은 신기루처럼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칭찬 스티커, 상점, 혹은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생활기록부 기재 등 외적인 보상만을 앞세운 지도는 치명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선행이나 성실한 학습 태도가 내면의 도덕적 성장이나 배움의 기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직 눈앞의 보상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조건반사적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의 행동이 교육의 본질적 목적과 심각하게 괴리되는 뼈아픈 부작용을 낳고 만다. 칭찬이 여전히 긍정적 교육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배양하고자 행동을 했을 때 스스로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권력자로부터의 인정에만 반응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강압적 권력 역시 오직 타인의 공포를 양분 삼아 자라난다. 과거 교사들이 훈육이라는 명분 아래 쥐고 있던 최소한의 강압적 권력마저 이제 교실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정당한 꾸중조차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혀 조리돌림 당하거나 무분별하게 고발당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이른바 ‘역관광’의 치명적인 덫이 돼 버렸다.

존경과 매력에서 우러나오는 ‘준거적 권력’은 다르다. 이 힘은 타인의 내면에 완전히 내재화돼 몽둥이를 든 감독관이 지켜보지 않아도, 칭찬 스티커라는 얄팍한 유혹이 없어도, 학생은 자신이 롤 모델로 동경하는 스승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유추하며 이것을 준거 삼아 외부의 통제나 개입 없이도 원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할 수 있다.

영향력의 범위는 권력이 상대방의 행동과 삶에 개입하는 폭을 의미한다. 압도적인 정보력에 기반한 ‘전문가 권력’이나 법과 규정에 묶인 ‘합법적 권력’은 훌륭한 통제 수단이지만, 오직 해당 지식 분야나 특정 직무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과거 교사는 지식을 독점하며 학생들 앞에서 절대적인 지적 권위를 누렸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의 눈부신 발달은 교실의 권력 지형을 완전히 뒤집어 놨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전 세계의 방대한 지식과 완벽한 정답, 심지어 뛰어난 작문과 논리적 추론까지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시대다. 평생을 바쳐 지식을 쌓은 베테랑 교사보다 주머니 속 AI가 더 빠르고 정확한 해답을 내놓는 현실 속에서 ‘지식의 전달자’라는 역할만으로는 더 이상 학생들 앞에서 교사의 권위를 세울 수 없다. 또한 ‘교사’라는 타이틀 자체가 부여하던 합법적 권력 역시 해체되고 있는 현실이다. 학생인권조례나 아동학대처벌법에 근거한 각종 민원에 교권은 학교 안에서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준거적 권력의 파동은 이런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스승을 향한 ‘일체화(identification)’ 의지는 단지 교칙을 지키게 만드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한 아이의 전반적인 가치관, 윤리적 태도,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뒤흔들고 재조립하는 무한하고도 전인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타인의 감시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절대적 독립성과 한 인간의 삶 모든 영역에 깊은 울림을 주는 무한한 영향력의 범위.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점에서 누군가가 마음 깊이 닮고 싶어 하는 존재가 됨으로써 얻어지는 준거적 권력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위대한 힘일 수밖에 없다. 물리적 폭력이나 첨단 기술로도 이 권력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 주인공 알렉스는 극악무도한 폭력을 일삼는 비행 청소년이다. 국가는 그를 교화하기 위해 ‘루도비코 요법’이라는 잔혹한 세뇌 치료를 강제한다. 알렉스의 눈을 강제로 뜨게 한 채로 끔찍한 폭력 영상을 반복 시청하게 하며 극심한 구토와 고통을 유발하는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결국 알렉스는 폭력 충동을 느낄 때마다 신체가 먼저 끔찍한 고통을 기억하고 구토를 일으켜 스스로 폭력을 멈추게 된다.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이 가해자들에게 폭력의 고통을 물리적으로 되돌려줘 극도의 공포를 심어주는 보복 방식은 이 루도비코 요법과 소름 돋도록 닮아 있다. 두 세계 모두 ‘국가 주도의 압도적인 강압적 권력’을 통해 범죄자를 물리적으로 무력화시키고 강제로 질서를 회복하려 한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알렉스의 강제된 선량함을 지켜보던 교도소의 신부는 이렇게 절규한다. “선함이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선함은 선택하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겉은 오렌지처럼 달콤해 보이지만, 속은 태엽으로 움직이는 장난감에 불과한 인간. 공포와 신체적 고통 때문에 억지로 선한 행동을 강요받은 인간은 도덕적 주체성을 상실한 기계 장치일 뿐, 진정으로 교화된 인간이 아니라는 큐브릭의 서늘한 통찰이다. 드라마 속 가해자들 역시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친 것이 아니라, 나화진이라는 더 거대한 폭력이 두려워 굴복한 ‘시계태엽 오렌지’로 전락했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교사만이 진정한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고전적이고도 원론적인 명제이건만, 희미해지는 교권과 이 순간에도 학습을 계속하고 있을 AI 앞에서 이 말의 의미가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겸 한국문화데이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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