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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로(路)와 도요타시(市) [임병식의 일본, 일본인 이야기]

2026.06.13 11:11

임병식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입구에 있는 환영 입간판의 모습.
6.3지방선거에서 흔한 공약은 ‘기업 유치’였다. 출마자들은 예외 없이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세수 확보를 외쳤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는 전북 새만금에 9조 원 규모 단계적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 클러스터, 수소 생산에 투자하는 내용이다. 전라북도와 회사 측은 총 16조 원 이상 경제 유발 효과, 7만 명 이상 고용 창출을 전망한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참석해 분위기를 띄운 만큼 지역민들은 한껏 들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소재한 경기 남부 지방자치단체는 최근 돈벼락을 맞았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법인소득세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이천과 수원, 용인, 화성, 평택은 올해 최소 500억 원에서 최대 2,000억 원 이상 세수가 늘었다.

SK하이닉스가 소재한 이천시의 지방세 증가는 극적이다. 2024년 3,111억 원에서 2025년 6,182억 원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해는 8,081억 원을 전망한다. 불과 2~3년 전에는 ‘0원’ 수준이었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한 개 기업이 이천시 전체 예산의 25%를 감당한다니 놀랍다.

삼성전자 거점 도시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수원시 지방소득세 또한 ‘0원’에서 1,000억 원대로 급증했다. 화성과 평택, 용인도 수백억 원에서 1,000억 원 이상 늘었다. 용인시는 여기에 더해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가동하는 2027년 이후 수천억 원대로 확대될 전망이다. 세수 증가 차원을 넘어 지역 자체가 바뀌는 상황이다. 이천시는 고마움을 담아 SK하이닉스 본사로 이어지는 도로를 ‘SK하이닉스로’로 명명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 박물관 로비에서 관람객들이 옛 자동차를 살펴보고 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올해 초 다녀온 아이치현 도요타시(豊田市)가 떠올랐다. 이천은 도로에 기업명을 붙였지만, 도요타시는 아예 시 이름을 바꿨다. 도요타시의 옛 이름은 고로모시(挙母市)다. 1959년 주민투표와 의회 의결을 거쳐 변경했다. 도요타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WELCOME TO TOYOTA CITY’ 입간판이 보인다. 이 도시가 도요타를 얼마나 아끼는지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도요타시에는 도요타 본사 외에도 도요타 스타디움, 도요타 기념병원, 도요타 자동차박물관이 있다. 어디를 가든 도요타 자동차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도시 전체가 도요타 자동차를 중심으로 짜였다.

1938년 가동 이후 90여 년 만에 도요타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다. 연간 1,000만 대를 생산하고 매출은 40조 엔에 이른다. 직원만 37만 명 규모다. 도요타시 인구는 대략 40만 명으로, 자동차 관련 종사자는 21만 명으로 추정한다. 본사 및 생산 연구 시설, 주변 1, 2차 부품 협력업체 근로자까지 포함한 수치다. 지역경제가 자동차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돼, 기업 하나가 지방자치단체 살림을 쥐락펴락하는 모양새다.

4조 엔 규모 지역경제에서 자동차 산업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방세수는 도요타 그룹의 실적 변동과 긴밀하게 연동돼 있다. 도요타 자동차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지방세입도 오르락내리락한다. 도요타시는 이렇게 도요타 자동차와 한 몸이 되어 생태계를 구축했다.

구마모토 TSMC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여름 찾은 기쿠요정(菊陽町)은 가동 1년여 만에 ‘TSMC 도시’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한때 배추밭이었으나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을 유치한 뒤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됐다. 인구가 늘고 세수가 증가했으며 부동산 가격도 뛰었다. 도로와 교통망이 확충되고 상권이 형성됐다. 현지 부동산업소에는 TSMC 직원용 임대주택 문의가 끊이지 않았고, 곳곳에서 신축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공장 하나가 지역 풍경과 생활 반경을 바꾼 것이다.

일본 구마모토에 있는 대만 TSMC 공장 전경.
이들 사례는 왜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지 보여준다. 기업 유치는 더 이상 일자리 몇 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업 이익은 지방세입이 되고, 지방세는 도로와 학교, 복지 시설과 문화시설로 이어진다. 산업이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대다.

그늘도 있다. ‘삼전닉스’ 호황은 경기 남부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도요타시와 나고야권 역시 산업 성장과 함께 주거비 상승과 지역 격차 확대를 경험했다. 성장의 과실은 모두가 나누지만, 성장의 비용 또한 누군가는 감당해야 한다. 기업이 들어온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 사이 격차도 벌어졌다.

도요타시의 자동차 산업, 기쿠요정의 반도체 공장, 그리고 이천과 수원, 용인, 화성, 평택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벨트는 결국 같은 질문을 수렴한다. 도시를 움직이는 주체는 행정인가, 기업인가. 이제는 둘을 분리해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기업 유치를 외치는 게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기업 유치에만 지역의 명운을 거는 것은 위험하다. 기업은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지역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기업을 유치하느냐가 아니라, 기업이 창출한 부와 기회를 어떻게 지역 전체의 경쟁력으로 전환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업의 성장을 지역의 자산으로 바꾸는 힘, 그것이 진짜 경쟁력이다.

임병식의 일본, 일본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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