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전
봉사시간 채우려다 진로 찾았다... '애플수박'이 학생들에게 준 기적
2026.06.13 19:11
| ▲ 왼쪽부터 정서윤 학생, 정소율 학생, 이용길 지도교사 |
| ⓒ 심규상 |
"엄마순은 여덟 마디에서, 아들순은 세 마디에서 순지르기를 해야 해요."
도심 한복판,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숨겨진 작은 텃밭에서 애플수박의 순지르기를 설명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진지하다. 충남교육청이 강조하는 '생태 전환 교육'을 학교 현장에서 가장 생생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온양여자중학교의 환경 자율동아리 '온초록'의 일상이다.
충남교육청이 이처럼 학교 현장의 환경 교육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당장의 행동 변화나 가시적인 성과를 넘어, 아이들이 먼 미래에 자연과 공존할 줄 아는 '생태 시민'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 즉 한 세대의 가치관을 바꾸는 '미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학창 시절 체계적인 환경 교육을 받은 세대가 훗날 사회의 의사결정권자가 되었을 때, 경제적 효율성보다 환경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난 2일 오후, 온양여중에서 5년째 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이용길 지도교사(체육)와 3년 동안 동아리의 주축으로 활약해 온 정소율·정서윤(3학년) 학생을 만났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동아리 활동 보고서를 넘어, 우리 미래 세대가 기후 위기 시대를 어떻게 마주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해답을 담고 있었다.
"환경 오염은 머리가 아닌 '경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체육을 전공한 이용길 교사가 환경 동아리를 맡게 된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전임 교사가 만든 '온초록'의 배턴을 이어받은 그는 시골 출신이라는 자신의 성장 배경을 살려 텃밭 중심의 생태 교육을 확립했다. 이 교사가 생각하는 생태 교육의 핵심 가치는 명확했다. 바로 '경험'이다.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학생들도 언론이나 교육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물이 어떻게 크는지 알고, 가물 때 물이 부족하면 작물이 안 자라는 것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이 작물을 재배할 때 필요한 화학비료로 인해 토양이 오염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미래 세대로 성장한 후에 환경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씨앗'을 만들어주는 것, 그 가치에 포커스를 두고 있습니다."
이 교사의 말대로 온초록의 활동은 교실 안의 죽은 지식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 온초록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나뉜다. 첫째는 상추, 오이, 토마토, 가지, 고추,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애플수박까지 직접 키우는 '작물 재배 경험'이다. 둘째는 버려지는 폐파레트를 수거해 사포질을 하고 마감해 '독서링'을 만들거나 바다 유리를 주워 키링을 만드는 '새활용 아이디어 제품 제작'이다. 셋째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환경 인식 개선 캠페인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일주일에 한두 번 모이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방학이나 농한기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점심시간마다 텃밭과 동아리방을 오가며 치열하게 진행된다. 전날 단체 대화방을 통해 내일 할 일을 공유하면, 이 교사가 수업이 있어 자리를 비우더라도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텃밭으로 가 물통을 옮기고 작물을 돌본다.
"처음엔 봉사시간 때문이었지만... 이제는 할머니보다 농사 잘 지어요"
| ▲ 온양여중 온초록 동아리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
| ⓒ 심규상 |
동아리의 맏언니인 정소율·정서윤 학생은 1학년 때부터 3년 동안 점심시간을 반납하며 온초록을 지켜왔다. 보통 중학교 3학년이 되면 학업 부담으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기 마련이지만, 두 학생은 여전히 텃밭의 대들보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온 계기를 묻자 아이들은 수줍게 웃으며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처음 중학교에 올라왔을 때는 딱히 환경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냥 봉사시간도 준다고 하니까 하겠다고 들어왔죠.(웃음) 그런데 이걸 3년 동안 계속하다 보니까 환경에 점점 더 관심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막연히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기상이나 환경을 연구하는 연구원 쪽으로 직업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바뀌게 됐습니다." (정소율 학생)
"저도 사실 환경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동아리 이름을 보니까 귀엽기도 하고, 요즘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니까 한 번 관심을 가져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왔거든요. 지금은 정말 잘 들어왔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정말 많이 쌓을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롭고 좋아요." (정서윤 학생)
3년의 시간은 아이들의 가치관과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스스로 '생태 시민'이 되어가고 있다고 실감하는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환경과 생태에 관한 지식이 많이 쌓였어요. 주말에 가족들을 도와드리러 가거나 할머니 댁에 갔을 때 텃밭 지식을 지인들이나 가족들에게 알려주면 약간 '있어 보이고' 뿌듯해요. 할머니께서도 '잘했다, 잘했다' 칭찬해 주시니까 엄청 보람차죠. 이제는 부모님보다 제가 농사를 더 잘 짓는 것 같아요." (정소율 학생)
"저희가 환경 활동을 하는 걸 전교생이 다 아니까, 친구들이 급식실에서 간식을 먹거나 분리배출을 할 때 저한테 와서 물어봐요. '이거 버릴 때 라벨을 제거해서 버려야 해?', '이건 어디다 버려야 해?' 하고 물어볼 때 내가 정말 환경 동아리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구나 싶어서 큰 보람을 느껴요." (정서윤 학생)
화학비료 대신 급식실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액비' 실험까지
| ▲ 온양여중 온초록의 활동은 첫째 '작물 재배 경험'이다. 둘째는 '자원순환 아이디어 제품 제작'이다. 셋째는 '인식 개선 캠페인 활동'이다. 사진은 지난 해 활동사진 |
| ⓒ 온양여중 온초록 |
| ▲ 온초록은 올해 화학비료 사용으로 인한 토양오염 진행 과정을 아이들과 실험하고 있다. 화학비료를 투입한 화분과 직접 만든 액비를 사용한 화분에서 작물이 어떻게 다르게 성장하는지 보고, 나중에 맛 평가도 할 예정이다. |
| ⓒ 온양여중 온초록 |
올해 온초록이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과학적 데이터 분석을 접목한 '토양오염 실험'이다.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화학비료가 토양을 어떻게 산성화시키고 오염시키는지 증명해 내겠다는 각오다.
"올해는 화학비료 사용으로 인한 토양오염 진행 과정을 아이들과 실험하고 있습니다. 화학비료의 대안을 찾기 위해 급식실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 중 작물에 필요한 3대 영양소를 추출해 '액비(액체비료)'를 직접 만들었어요. 화학비료를 투입한 화분과 우리가 만든 액비를 사용한 화분에서 작물이 어떻게 다르게 성장하는지 보고, 나중에 맛 평가도 할 예정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아산시 농업기술센터에 토양 분석을 의뢰해서 화학비료를 쓴 흙이 어떻게 산성 토양화되는지 결론을 도출해 보려고 합니다." (이용길 교사)
이 정도면 단순한 취미 동아리 수준을 넘어선 연구 프로젝트다. 이 교사는 아이들을 이끌고 충남 환경사랑 학생동아리 발표대회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처음에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떨린다며 손사래를 치던 아이들을 이 교사가 강하게 붙잡았다. "지금 떨리니까 해봐야 한다. 이 경험이 쌓여야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떨지 않을 것이다." 체육 교사다운 뚝심 있는 격려였다.
이렇듯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 환경 동아리를 운영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예산과 시간의 한계, 그리고 전문 기관의 부재는 늘 아쉬운 대목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율동아리 활동이 정규 교육과정이 아니다 보니 별도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체육 전공이다 보니 환경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해 늘 한계를 느낍니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과 우수 사례를 보여주고 싶어서 서울에 있는 새활용플라자까지 견학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다녀오면 학생들이 정말 깊이 공감하거든요. 하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자주 가기는 어렵습니다. 충남권에도 학생들이 환경을 체계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이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습니다." (이용길 교사)
"당장의 결과보다 한 세대를 바꾸는 배움이 중요"
동석한 충남교육청 환경교육 관계자는 도움말을 자처했다. 충남교육청 미래인재과 조나리 장학사는 "현장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1월 충남도내 생태체험학습 자원 114곳과 교육과정을 연계한 도움 자료, 지속가능발전교육을 위한 수업꾸러미 40차시를 개발해 보급했고, 지난 3월에는 충남기후환경교육원이 개관해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며 적극적인 지원책을 설명했다.
또한 1교 1환경사랑 학생동아리 운영을 위해 충남 도내 714개 초중고에 동아리 운영비를 지원하고, 온양여중처럼 우수한 학생주도형 환경동아리의 사례가 확산될 수 있도록 매년 발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장학사가 전한 일화와 설명은 환경 교육이 왜 단기적 성과가 아닌 '미래 비전'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 지자체에서 친환경 관점과 경제적 효율성이 대립하는 중요한 의사 결정이 있었는데, 결국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 참여한 주무관과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는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받았던 세대였다'고 하더군요. 지금 당장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 각 분야의 책임자나 의사결정권자가 되었을 때 생태적인 관점을 최우선에 둘 수 있는 '생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충남 환경 교육의 최종 목표입니다."
이용길 교사 역시 올해로 온양여중 근무 5년 차를 맞아 내년에는 학교를 옮겨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동아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업무 인수인계 개념이 아닌 자율 동아리 특성상, 자신이 떠나더라도 이 소중한 '초록 불씨'를 이어받아 줄 동료 교사를 직접 섭외하겠다는 책임감을 보였다.
'온초록'이 온양여중을 초록으로 물들이는 비결
| ▲ 왼쪽부터 온양여중 이미영 교감과 정서윤·정소율 학생, 정서윤 학생, 이용길 지도교사 |
| ⓒ 심규상 |
"매년 특별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성과에 집착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더운 날 아이들에게 텃밭 일을 너무 무리하게 하면 오히려 환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거든요. 그저 자율적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1년 동안 아무런 상처나 어려움 없이 환경을 긍정적으로 경험하고 나가는 것,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길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온초록이 5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결이자 앞으로의 비전입니다." (이용길 교사)
인터뷰가 끝날 무렵, 정서윤 학생이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며 수줍게 손을 들었다. 3년 동안 온초록의 정신을 가슴에 새긴 학생다운 당찬 포부였다.
"저희 동아리 이름인 '온초록'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어요. 하나는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이다'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초록 세상을 위해 불을 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슬로건처럼 저희가 하는 활동이 작아 보일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학교 복도나 텃밭 주변에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는 친구들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저희 캠페인에 많이 동참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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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왜 멈췄을까' 함께 관찰하는 교사들, 충남 미래교육이 바꾼 교실 https://omn.kr/2i2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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