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의 이메일까지 고치는 팀장…완벽주의의 덫 [.txt]
2026.06.13 10:02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한 통제 성향
팀원들은 숨 막히고 자신도 번아웃
과감한 권한 위임과 신뢰가 해법
영철씨는 40대로 회사에서 신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주위에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기획부터 제품 출시까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세부 사항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영철씨는 직장에서 팀원이 상부 보고를 위한 발표 자료를 만들어 오면 오류가 없는지 반드시 확인합니다. 자료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밤을 새워서 다시 만들곤 합니다. 보고서에 있는 숫자가 정확한지 꼭 확인하고, 팀원들이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미리 검토해 문구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고 수정합니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은 그의 초인적인 성실성을 인정하면서도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철씨가 책임을 맡은 신제품 출시를 코앞에 두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자 영철씨는 심장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출시일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팀원들에게 빨리 문제점을 확인하도록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이 만든 문서 전부를 자신에게 보고하고 검토하는 회의를 했습니다.
영철씨는 일상적으로 한번 회의를 시작하면 세시간이 넘도록 지속했습니다. 이번에도 신제품에 관해 반복적으로 기나긴 회의를 했지만 영철씨도, 팀원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팀원들은 힘든 회의를 하느라 일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영철씨가 지나칠 정도로 팀원들을 닦달하자 팀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팀원들은 영철씨만 보면 피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부서 내 소통은 단절되고 영철씨만 왕따가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팀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자 영철씨는 직접 밤을 새워가며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신제품 출시는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영철씨는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전신이 마비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팔다리가 마치 납을 달아놓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회사 이메일을 읽는데 머리가 멍하고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출근도 못 하고 인근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지만 뇌나 신경에는 문제가 없다고 진단받았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키보드를 치는 손이 덜덜 떨리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철씨는 결국 병원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습니다.
검사 결과 영철씨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완벽주의 성향은 달성하기 어려운 높은 기준을 세우고, 이를 강박적으로 성취하려고 하며, 오직 그 결과에 따라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하는 성격 특성입니다. 겉보기에는 성실하고 철저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영철씨는 신제품 출시 지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심장의 박동이 증가하고 숨이 막히면서 팔다리가 무거워지는 신체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영철씨는 이전에도 시험이나 발표를 앞두고 이런 증상을 느껴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증상은 과도한 긴장으로 교감신경계가 과활성화되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교감신경계는 위기 상황에서 신체를 빠르게 활성화해 대처하기 위한 신경 시스템입니다. 교감신경계 활성화는 단기적으로 집중력과 순발력을 높여줄 수 있지만 며칠간 지속될 경우에는 심한 피로와 주의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지게 되는데,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인해 잠도 안 자고 일에 몰두하면 결국 번아웃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처음 영철씨가 이런 증상을 느낀 시기는 그가 초등학생이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평온했던 가정은 영철씨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압류 딱지가 붙고, 부모님이 절망하며 다투던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은 어린 영철씨에게 세상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극도로 위험한 곳이라는 공포를 심어주었습니다. 영철씨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통해 이를 극복했고 공부도 잘하고 직장에서도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담당하는 조직이 커지고 복잡한 일을 맡게 되자 영철씨가 가진 완벽주의적 성향으로는 더 이상 일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영철씨는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는 성향이 지금은 자신과 주위 팀원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확인하고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00퍼센트 만족할 순 없더라도 주위에 맡겨보고 수용함으로써 더 좋은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철씨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하는 습관을 ‘권한 위임’으로 대체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는 리더가 구성원의 업무를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지시·점검·승인하며 통제하는 관리 방식으로, 구성원의 자율성과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큰 방향은 영철씨가 잡아주되 세부적인 내용은 과감하게 권한 위임을 하고 맡기도록 했습니다. ‘내 영역'과 ‘세상의 영역'을 구분해보기로 했습니다. 돌발 상황, 시장의 반응 등 내가 통제할 수 없고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긴장을 낮춰보기로 했습니다.
팀원들을 신뢰하고 통제의 끈을 늦추자, 신기하게도 팀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살아나며 신제품 개발은 전보다 훨씬 유연하고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영철씨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견되어도 화를 내거나 밤을 새우지 않습니다. 대신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개발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죠. 같이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개인별로 자세한 것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진료, 상담을 하면서 파악해야 합니다. 기사만 읽고 자신 자신을 진단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기사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모두 가명을 쓴 것임을 밝힙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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