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은 유엔 파산 막을 생각이 없다 [US REPORT]
2026.06.12 21:01
새 사무총장 뽑는다지만…
올해 유엔(UN)은 10번째 사무총장을 맞이하게 된다. 최근 차기 사무총장 선출 절차에 들어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올해 말 끝나면 제10대 사무총장이 내년 1월 취임하는 일정이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레베카 그린스판 전 코스타리카 부통령, 마키 살 전 세네갈 대통령,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 전 에콰도르 외무장관 등 5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10년 전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출마했을 때는 13명이 후보로 나섰다. 당시와 비교하면 유엔 사무총장직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지난 6월 1일(현지 시간) 국제노동기구(ILO)는 7월 취임 예정이던 미국인 셩 리 부사무총장 내정자 임명을 취소했다. 미국이 유엔 분담금을 체납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2024년부터 올해까지 총 2억5700만스위스프랑(약 4932억원)을 미납했다. ILO는 최대 공여국인 미국 체납으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문제는 ILO에 그치지 않는다. 유엔 전체가 세계 1·2위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상습 체납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다. 양국은 분담금 체납액 1·2위 국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엔은 지금처럼 체납이 쌓이면 오는 8월 자금이 바닥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의 유엔 분담금 체납액은 일반 예산과 평화유지 예산을 합쳐 42억800만달러(약 6조4500억원)에 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후 유엔이 제 역할을 못 한다며 돈줄을 죄었다.
차기 수장 경쟁엔 후보 5명 흥행 부진
강대국 독주…‘세계 중재자’ 역할 위축
자금 우려 속 인력·조직 감축 ‘고육책’
앞서 미국은 유엔에 올해 말까지 유엔 고위직 감축, 연금제 개편, 출장 시 비즈니스석 금지부터 평화유지 임무 감축까지 9가지 개혁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분담금을 못 내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특히 중국이 유엔 사무총장실 산하 기금 등으로 매년 수천만달러를 지원하는 방식을 없애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유엔에 중국의 입김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미국은 이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유엔인구기금(UNFPA) 등 유엔 기관 31개를 비롯해 총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했다.
중국도 막대한 분담금을 빌미로 유엔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체납액은 4억5500만달러(약 6859억원)다. 유엔은 운영 자금 42%를 미국과 중국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WSJ는 “미국은 아예 분담금을 내지 않고, 중국은 수년간 납부 시스템을 교묘하게 이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재정난만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유엔은 5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휘둘리는 거버넌스 한계로 존재 이유를 의심받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고,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 전쟁도 불사했다. 중국은 전 세계 공급망을 흔들며 영향력을 키운다. 강대국 독주가 심해지면서 전 세계 중재자를 자처하던 유엔 역할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최근 이란 전쟁 과정에서도 유엔의 대응은 구속력 없는 결의안 채택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마저도 5개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간 충돌로 성사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상 노골적인 ‘유엔 패싱’이 판치는 상황에서 돈줄까지 말라가는 셈이다. 유엔 창설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유엔은 직원 수천명을 줄이고 여러 사무소를 폐쇄했다. 평화유지군 활동 비용도 줄이는 고육지책으로 버티는 중이다. 새 사무총장에 거는 기대만큼이나 우려가 큰 상황이다.
[뉴욕 = 임성현 특파원 lim.su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63호(2026.06.10~06.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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