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설 시달리던 롯데의 '완벽한 부활'
2026.06.13 09:03
고강도 구조조정과 자산 유동화 효과
하반기에도 실적 개선 기대[비즈포커스]
2024년 12월 롯데그룹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는 극단적인 소문까지 나돌았다.
해당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롯데를 향한 의구심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석유화학 업황 악화로 롯데케미칼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냈다. 회사채 재무 특약을 준수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 위험이 전면에 부각됐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맞물리며 롯데건설의 미착공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가 그룹 전체의 유동성을 압박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오프라인 유통의 침체와 이커머스의 적자 누적 역시 롯데의 유동성 위기설에 기름을 부었다. 계열사 주가는 폭락했고 시장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롯데그룹은 당시의 암운을 완전히 걷어내고 완벽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전 계열사가 기대를 뛰어넘는 실적을 내며 반등에 성공하면서다.
‘덩치 키우기’라는 기존의 관성을 버리고 뼈를 깎는 고강도 구조조정과 자산 유동화라는 정공법을 택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롯데그룹은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8조6000억원, 영업이익 787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81% 늘었다. 수년간 추진한 고강도 구조조정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의 결과다.
‘지라시’에 흔들렸던 거인
그동안 롯데그룹은 과거의 문어발식 확장을 멈추고 저효율 자산을 과감히 정리했다. 롯데웰푸드 증평공장, 롯데케미칼 파키스탄 법인(LCPL) 등을 매각했다. 유휴 부지(양평동 칠성몰 부지 등)는 매각 대신 계열사 간 협력을 통해 수익성 높은 부동산 자체 개발 사업으로 전환해 자산 가치 극대화에 나섰다.
화학 부문 역시 기초화학 비중을 줄이고 인공지능(AI)용 회로박,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등 고부가 친환경 스페셜티 소재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다변화했다.
롯데그룹은 비핵심 사업 정리에 따른 자산 감소로 재계 순위가 다소 조정되기도 했으나 시장에서는 “외형 확장을 버리고 내실과 현금을 선택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빛을 발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PEST 관점 경영’도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PEST는 정치(Political), 경제(Economic), 사회(Social), 기술(Technological) 변화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거시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요 사업 전략에 PEST 관점을 적극 반영해왔다”며 “그 효과가 마침내 나타나 1분기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특히 식품·유통·호텔 등 주력 사업군이 본원적 경쟁력을 회복하며 실적 상승을 견인했다.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은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신 회장이 강조한 PEST 관점 경영을 바탕으로 외부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롯데쇼핑은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3조5816억원, 영업이익 2529억원을 기록하며 그룹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특히 백화점 사업의 경우 명품 라인업 확대 등 주력 점포 경쟁력 강화와 꾸준히 증가하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국내 인구 감소에 대응해 꾸준히 진행해 온 해외 사업 확대도 실적을 견인했다. 롯데쇼핑의 경우 베트남에 자리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가 분기 기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동남아 대표 리테일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2023년 문을 연 지 3년 만에 누적 방문객 3000만 명을 돌파했다. 개점 122일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고 지난해 말 기준 누적 매출은 6000억원을 넘어섰다. 이에 힘입어 백화점 해외 사업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무려 268.7% 증가했다.
대형마트인 롯데마트도 해외에서 호실적을 거뒀다. 업황이 좋지 못한 국내를 벗어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집중한 결과다. 롯데마트는 국내 유통업계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 점포를 직접 운영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현지 물류·상품 운영·인력 육성을 직접 수행하며 시장 경쟁력을 높였고 이 같은 전략이 최근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롯데웰푸드와 롯데칠성음료도 해외 사업이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롯데웰푸드의 경우 인도와 카자흐스탄 등 주요 해외 법인 매출은 2705억원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수출을 포함한 해외 매출 비중도 32%까지 확대됐다.
롯데칠성음료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부문 매출이 37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1%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43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2123%나 급증했다. 최대 해외 법인인 필리핀 법인이 수익성 개선 작업을 통해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호텔롯데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면세 사업부 판매 구조 개선 효과로 수익성을 높였다. 올해 ‘L7 충장 바이 롯데호텔’과 ‘브리드 바이 롯데호텔’을 새롭게 선보이며 성장 기반도 확대했다. 전망도 밝다. 롯데호텔 서울 리뉴얼 오픈과 위탁 운영 확대가 향후 실적 개선 요인으로 꼽힌다.
‘턴어라운드’ 시동…신사업 승부수
그룹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롯데케미칼도 사정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 10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미국과 이란 전쟁 등 중동 지정학 리스크를 면밀히 관리하며 글로벌 공급망 변동성과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응한 것이 주효했다.
기민한 원료 조달과 국내외 에틸렌 생산 공장 가동률 최적화를 통해 수익성을 개선했으며 중동 리스크에 따른 스프레드 개선과 긍정적 래깅(시차) 효과도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탰다. 이를 통해 올해 1분기 영업이익 735억원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롯데는 올해도 롯데렌탈 지분 매각과 케미칼 자회사 지분 활용 등을 통해 비주력 사업 효율화를 이어간다. 롯데케미칼은 대산·여수공장 사업 구조를 재편해 재무 구조를 개선할 계획이다.
확보한 투자 재원은 고부가·고성장 사업에 재투자해 질적 성장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체질개선에 성공한 롯데는 신사업 육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는 포트폴리오 재편의 일환으로 바이오, 전지·반도체 소재 등을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는 상황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올해 12만 리터 생산 규모의 송도 1공장을 준공하고 2027년 상반기 상업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2023년 미국 바이오 기업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으로부터 인수한 시러큐스 공장은 항체부터 ADC(항체·약물 접합체)까지 생산 가능한 통합 CDMO 허브로 운영한다. 송도 공장은 대규모 상업 생산거점으로 육성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두 생산거점을 연계한 ‘듀얼 사이트’ 전략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실제로 올해 4월 일본 글로벌 제약사와 CDMO 계약을 체결했고 5월에는 영국 바이오 기업 오티모파마(OTTIMO Pharma)와 항체의약품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AI 데이터센터와 ESS 시장 확대에 맞춰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최근 자회사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은 AI 데이터센터용 회로박, 반도체용 초극박, ESS용 전지박, EV 배터리용 전지박 등 4대 고부가 제품군 투자에 활용할 계획이다.
익산공장은 고부가 회로박 중심으로 전환하고 말레이시아 공장은 전지박 통합 생산기지로 재편해 생산 효율과 원가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거버넌스 체계도 전면 개편했다. 롯데는 2026년 정기인사를 기점으로 기존 ‘계열사→HQ(사업군)→지주’ 체제에서 중간 조직인 HQ를 없앴다.
의사결정 단계를 축소해 계열사와 지주 간 소통 속도를 높인다는 이유에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권한 위임과 빠른 의사결정으로 현장 실행력을 높여나가며 실적을 더욱 끌어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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