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교실이 무너진 곳에서 드라마는 뜨거워진다
2026.06.13 09:00
"말로 안 되면 때려서라도 가르친다"…선 넘은 카타르시스
허구의 통쾌함, 월요일이면 사라져…사이다 뒤의 현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이 교육계 안팎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공개 전까지만 해도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공개 이후에는 교육 전반에 걸친 문제의식을 공유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 아이를 왕따로 지목해 괴롭히고, 그 아이는 결국 학교 옥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이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 측이나 교사들이 이 사안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막강한 권력자라, 학교도 교사들도 오히려 눈치를 본다. 결국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가해 학생은 또 다른 아이를 왕따로 세워 똑같이 괴롭힌다.
교육 빌런들이 드러낸 복합적 현실
학교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교육이 기본적인 역할조차 해내지 못하는 상황. 갑자기 교육부 산하 교권보호국에서 파견된 나화진(김무열)이라는 선생님이 나타난다. 그는 다른 선생님들과 다르다. 가해 학생의 뺨을 날리면서 나화진은 말한다. "말로 해서 듣는 놈은 말로, 때려서 듣는 놈은 때려서라도 가르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은 이미 선을 넘을 대로 넘어버린 대한민국의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작품 속으로 가져와, 교권보호국이라는 가상의 조직을 통해 해결해 가는 판타지 드라마다. 학생 인권을 악용해 교권을 무력화하는 빌런들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참교육'하는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원시원한 사이다 응징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빌런들도 참 다양하다. 거의 조직범죄화돼 가는 학교폭력부터 거짓 영상으로 선생님마저 나락으로 보내는 학생, 스토킹 수준의 악성 민원으로 선생님을 극한 상황까지 몰아붙이는 극성 학부모, 시험지까지 빼돌려 성적을 조작하는 비리 교사, 의대 입학에 혈안이 되어 사실상 아이를 학대하는 학부모, 나아가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마약을 학교 안에서 조직적으로 유통하는 아이들까지 등장한다. 극화된 면은 있지만 실제 교육 현실에서 빈번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드라마에 이처럼 다양한 교육 빌런이 등장한다는 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교육 문제의 해결이 왜 어려운가를 에둘러 말해 준다. 이는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부터 학부모, 교사에 이어 정치권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다. 실제 현실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드라마는 이 지점을 판타지로 가져온다. 주먹을 쓰는 아이에게는 똑같이 주먹을 날리고, 가짜 영상으로 선생님을 나락으로 보낸 아이에게는 그 실체를 고발하는 영상을 공개해 똑같은 나락을 경험하게 한다. 스토킹 수준의 악성 민원을 넣는 학부모에게는 역으로 선생님이 시시콜콜한 것까지 문자로 물어보게 해 그 스토킹의 고통을 체감하게 한다. 의대 입학을 위해 학대 수준으로 공부시키는 학부모에게는 똑같이 빡빡한 시간표에 맞춰 무한 문제 풀기를 시킨다. 실제 교육 현실에서는 결코 쉽게 풀릴 수 없는 고구마 가득한 문제들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사이다로 채워지는 판타지가 펼쳐지는 것이다.
《참교육》은 교권보호국이라는 가상 조직이 등장한다는 점만 봐도 실제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판타지 드라마다. 마치 《모범택시》의 무지개운수 같은 가상의 조직이 사법 체계가 해결하지 못하는 억울한 사람들의 사적 복수를 대행해 주는 판타지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하지만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비교적 분명한 범죄에 대한 이야기와 달리, 《참교육》은 아이와 학생, 학부모가 얽힌 교육 문제를 소재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사안이 훨씬 복잡하다.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일방적인 사이다 판타지는 자칫 어느 한쪽만의 편향되고 불편한 시선들을 만들 수 있다. 《참교육》이 학생, 교사, 학부모까지 선을 넘는 다양한 빌런을 세워 그런 일부를 전체의 문제로 그려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이유다.
사실 현실의 문제의식에서 탄생하는 드라마에서 교육만큼 뜨거운 소재도 없다. 현재의 교육 제도만큼 총체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고, 그 해결책 또한 쉽지 않은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2007년 방영된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아들의 성적을 위해 서울 강남으로 이사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온 이후 《SKY 캐슬》 《일타스캔들》 《졸업》에 이르기까지 교육 관련 소재에 대한 관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게 별로 없고, 나아가 더 심각해진 것이 현실이다.
《SKY 캐슬》에는 대치동 엄마들도 모르고 극소수 사람들만 아는 톱급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괴물이 등장하고, 《일타스캔들》에는 학교 교사보다 더 스타가 된 학원 선생이 등장한다. 《졸업》에서는 학원가의 치열한 경쟁과 대결이 펼쳐진다. 물론 이들 드라마마다 장르적 색채는 다르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건 한국의 비정상적인 입시 교육 현실이다. 한국인들은 그 누구보다 이 교육 현실에 관심이 많고, 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고치려 하기보다 경쟁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더 크다. 이들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이유다.
하지만 드라마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일종의 가상이고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참교육》에 등장하는 교권보호국은 현실에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시스템이다. 교권은 일선 교사들이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따라서 교권보호국이라는 시스템의 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 현실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허구의 통쾌함 뒤에 남는 교육 현장의 무게
그렇다고 드라마의 문제 제기가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또 학부모들에게 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교사들에게 교권보호국 같은 든든한 조력자의 존재는 절실하게 느껴진다. 학교조차 교사들이 소신껏 가르칠 수 있는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주지 않는 현실이 아닌가. "어른이 애들을 두려워하면요, 세상은 망하는 겁니다"라는 극 중 나화진의 대사는 그래서 단지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만 들리지 않는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학부모들과 그 비호를 받는 학생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학교 안에서 교사들은 사실상 아무런 방패막 없이 일선에 나서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허구의 통쾌함은 월요일이 되면 사라진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참교육》에 대해 교사의 절망감을 고발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서도, 그렇게 씁쓸한 현실을 이야기한 건 실제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교총은 초법적인 영웅이 아닌, 실효성 있는 법·제도적 장치와 현실적인 실천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즉 드라마가 허구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문제의식을 꺼내는 것이라면, 그 문제의식을 통해 변화하려는 노력만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편의 드라마가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드라마가 할 수 있는 건, 현실의 답답한 문제들을 균형 있는 시선으로 대중 앞에 펼쳐놓는 것이다. 그래서 어차피 바뀌지도 않을 것이라며 그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않던 우리가 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드라마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일이 아닐까. 허구의 사이다 판타지를 통해 잠깐의 시원함을 경험한 뒤 남는 교육 현장의 무게들을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드라마의 존재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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