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딸 계좌에 2000만원, 삼전 주식 사줘도 세금 0원"...아들 결혼할 때 2억 주면 '탈세' [은퇴자 X의 설계]
2026.06.13 07:56
"민준이는 삼성전자 주식 120주 있다는데, 나는 몇 주 있어?" 요즘 엄마아빠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질문이다. 자녀들이 미성년자일 때부터 자산을 증여해, 주식 투자 등으로 불려주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이렇게 커진 자산은 성년이 됐을 때 세금 한푼 없이 모두 자녀들의 몫이 된다.
[파이낸셜뉴스] 지난 2024년 기준으로 만 1세가 되기 전 증여를 받은 '0세 수증자'가 700명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큰 화제가 됐다. 이들의 1인당 평균 증여액은 9141만원으로, 평범한 직장인의 연봉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부러움 반, 속 쓰림 반의 반응 속에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는 한탄이 쏟아지는 이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숫자 뒤에 숨은 자산 격차의 현실이다. 자녀의 독립과 결혼을 마주한 50~60대 부모들이 서둘러 증여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배경이 여기에 있다.
벌어지는 자산 격차, '살아있을 때 먼저 준다'
실제 자산 격차는 소득보다 무섭게 벌어지고 있다.
국가데이터처·한국은행·금융감독원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자산 상위 10% 가구가 전체 순자산의 44.4%를 보유한 반면, 하위 50%의 비중은 9.8%에 그쳤다.
이 변화를 가장 뼈아프게 체감하는 이들이 바로 지금의 50~60대다. 자녀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지만, 치솟은 집값은 자신들의 신혼 시절과 차원이 다르다. 상속은 먼 미래의 일이고 자녀의 전세·매매 계약은 당장 눈앞의 현실이다 보니, 살아있을 때 먼저 지갑을 여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산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녀에게 전세 보증금을 보태주거나 결혼 자금을 쥐여주는 행위 모두 법적으로는 '증여'에 해당한다. 내용을 잘 모르고 돈을 건넸다가 뒤늦게 국세청으로부터 자금 출처 소명 요청을 받고 당황하는 이들은 대개 평범한 부모들이다.
미성년 자녀 증여?…복리의 마법
생전 증여 흐름은 미성년 자녀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만 18세 미만 미성년 수증인은 1만4217명으로 전체 증여세 신고의 9.2%를 차지했다. 증여재산 가액은 1조2382억원 규모였다.
현재 미성년 자녀에 대한 증여재산 공제 한도는 10년간 2000만 원이다. 이는 부모와 조부모 등 직계존속을 모두 합산한 기준이다.
증여는 일찍 시작할수록 활용 횟수가 늘어난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2000만원, 열 살에 다시 2000만원, 성인이 된 뒤, 30세에 각각 5000만원을 증여하면, 이론적으로 자녀가 31세가 될 때까지 총 1억4000만원을 세금 없이 합법적으로 넘겨줄 수 있다.
여기에 투자 수익까지 더해지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증여한 돈을 주식이나 펀드로 장기 운용해 불어난 자산 수익은 온전히 자녀의 소유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조부모가 먼저 아이에게 2000만 원을 증여해 한도를 채워버리면 부모가 줄 수 있는 공제 몫은 사라진다. 친가와 외가를 합산해 계산하기 때문이다.
가현세무법인 염지훈 세무사는 "공제 한도 안에서만 증여하려고 기다릴 필요는 없다"면서 "자산 여유가 된다면 세금을 다소 내더라도 자녀 명의로 부동산을 일찍 취득하는 게 유리한 경우도 있다. 취득 이후 오른 가치는 자녀 몫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모 돈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성년 자녀 증여가 늘고 있지만 정작 성인 자녀에게 돈을 건넸다가 뒤늦게 신고 문제를 겪는 부모들도 많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박진수 씨(59·가명)는 지난해 아들(30)의 집 계약을 앞두고 처음으로 세무사를 찾았다. 서울 외곽 소형 아파트를 계약하려는데 아들 소득만으로는 계약금을 맞추기 어려웠다. 박 씨 부부는 고민 끝에 5000만원을 보태주기로 했다.
박 씨는 부모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 집 구하는 데 조금 보태준 건데 세금 문제가 생기겠나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부모 자금이 섞이는 순간 자금출처 확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아들이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에 부모 지원금 항목이 기재됐고, 이후 박 씨는 자금 출처 확인 안내를 받았다.
박 씨가 보낸 돈은 성인 자녀 공제 한도(5000만원) 내에 있어 증여세 자체가 부과되진 않았다. 하지만 박 씨가 찾은 세무사는 "세금이 없더라도 증여 신고로 자금의 출처를 기록해 두는 편이 추후 소명에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아버지 5000만원, 어머니 5000만원이면 1억원 아닌가요?"
박 씨 부부도 상담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된 내용이 적지 않았다.
현재 기준으로 부모가 성인 자녀에게 증여할 경우 10년 동안 5000만원까지 증여세 공제를 받을 수 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3조). 많이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부모 각각의 한도로 생각하는 경우다. 하지만 세법은 부모와 조부모 등 직계존속 전체를 하나로 본다. 아버지 5000만원, 어머니 5000만원을 따로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신 공제는 10년 단위로 다시 적용된다. 지금 자녀에게 5000만원을 증여했다면 10년 뒤 다시 5000만원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자녀가 이미 성인이라면 지금 신고해두는 것만으로도 10년 뒤 공제를 다시 적용받을 수 있는 구조다.
삼촌·이모·고모 등 기타친족은 별도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 경우 10년 동안 1000만원까지 추가 공제가 가능하다. 직계존속 한도를 모두 사용한 뒤에도 친족 증여는 별도로 계산된다.
결혼을 앞둔 자녀라면 '혼인·출산 공제'
박 씨에게는 아직 미혼인 딸(27)도 있다. 상담 과정에서 딸의 결혼 자금 이야기가 나오자 세무사는 2024년부터 시행된 '혼인·출산 증여재산공제'를 적극 활용하라고 권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혼인신고일 전후 각 2년(총 4년) 이내에 부모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을 경우, 기존 성인 자녀 공제 5000만원 외에 최대 1억원을 추가로 공제받을 수 있다. 즉, 자녀 1인당 총 1억5000만원까지 증여세 없이 이전이 가능하다.
결혼식보다 신혼집 계약이 먼저 이루어지더라도, 돈을 준 날이 혼인신고일 전 2년 이내에만 들어온다면 혼인 공제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 이 공제는 평생 합산 1억원이 한도이므로, 결혼할 때 1억원을 다 쓰면 추후 아이를 낳았을 때 출산 공제를 중복해서 받을 수는 없다.
만약 신랑과 신부 양가 부모가 이 제도를 모두 활용한다면 어떨까. 신랑 측 1억5000만원, 신부 측 1억5000만원을 합쳐 최대 3억원까지 세금 없이 신혼 밑천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차용증만 쓰면 안전하다?"…국세청은 통장 잔액을 본다
세금을 피하고자 증여 대신 '돈을 빌려준 것(금전소비대차)'으로 처리하려는 부모도 많다. 박 씨 역시 "차용증을 쓰고 무이자로 빌려줬다고 하면 괜찮지 않냐"고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험한 발상이다. 현행 적정이자율 4.6%를 전제로 하면 무이자 대여액이 약 2억1700만원 이하일 때 이자 차액에 따른 증여세 문제는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자에 대한 판단일 뿐이다. 원금이 실제 대여였는지는 차용증, 이자 지급 내역, 원금 상환 기록으로 따로 입증해야 한다.
금액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 대출이 맞느냐'는 실질 규명이다. 소득이 없거나 적은 자녀에게 거액을 빌려줬다면서 이자나 원금을 상환한 금융 기록이 전혀 없다면, 국세청은 차용증을 단순 형식적 문서로 보고 원금 전체에 대해 증여세를 추징한다.
세무법인 청담택스매니지먼트의 황정길 대표 세무사는 "예를 들어 부모님으로부터 3억원을 빌리면서 증여세 이슈를 피하고 싶다면 일부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면서 "적정한 수준의 이자율을 정해 차용증을 쓰고 매년 이자를 부모님 계좌로 꼬박꼬박 이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황 세무사는 이어 "이자율 요건을 맞추더라도 국세청으로부터 이를 '진짜 대출'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차용증 작성과 실제 이자 지급 내역, 추후 자녀가 소득 원천을 통해 실제 상환한 증빙이 갖춰져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이자뿐 아니라 3억원 원금 전체가 증여로 추징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세청 및 세무업계가 주목하는 주요 자금출처 소명 위험 패턴은 다음과 같다.
더 무서운 건 몇 년 뒤의 문제
박 씨는 주택 취득 과정에서 비교적 일찍 자금 흐름 확인 절차가 진행돼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늦게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모가 자녀 집 마련 과정에서 보태준 돈이 부모 사망 이후 상속세 조사 과정에서 다시 확인되는 사례다.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더라도 과거 계좌 흐름은 기록으로 남는다. 소명이 되지 않으면 가산세까지 붙을 수 있다.
현금으로 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동일인 기준 하루 1000만원 이상의 현금 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한다. 반복적인 현금 거래나 쪼개기 송금 역시 자금 흐름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다.
세무사들은 "1000만원만 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전체 자금 흐름을 함께 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결국 가장 안전한 방법은 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신고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내' 노후는 괜찮은가
박 씨는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으로 자신의 국민연금 예상 수령액과 은퇴 후 필요 생활비를 계산해 보았다. 아들의 주택 자금에서 시작된 계산이 딸의 결혼 자금까지 이어지면서, 정작 부모 본인의 노후 자금 계획은 뒤로 밀려나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 미래를 위한 계산은 열심히 한다. 본인 노후를 위한 계산은 그다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가 매주 토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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