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100GW 목표, 전력망 확충이 관건[이유범의 에코&에너지]
2026.06.13 06:01
구조 개편 없이 목표 달성 어려워
서해안 HVDC 1070km·12조 사업
어민 반발·기술 국산화·재원 과제 산적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100GW 보급을 국가 목표로 설정한 가운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력망 확충 속도가 설비 보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에 따르면 2038년까지 태양광·풍력 설비는 현재 대비 35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상응하는 송·변전 설비 확충에만 약 72조8,000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발전 설비 확충과 전력망 정비 사이의 시간 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생산된 전력이 수요지에 닿지 못하는 구조적 병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생산 편중과 수요 편중의 구조적 불일치
현행 전력 계통은 발전 설비가 비수도권에 집중되고 전력 수요는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중앙집중형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 불일치가 심화되고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의 60% 이상이 호남권에 집중돼 있으나, 봄·가을철 수요 감소기에는 전력 계통이 생산량을 소화하지 못해 발전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출력제어가 반복된다. 2025년부터 호남권을 중심으로 태양광 출력제어 건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풍력·태양광 연간 출력제어율을 3% 수준으로 선제 반영하고, 2035년 이후에는 5%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명시했다. 이는 계통이 수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물량에 한계가 있음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100GW 설비 보급이 실현되더라도 출력제어에 따른 발전 손실분이 누적되면 실효 발전량은 목표치를 밑돌 수 있다.
반대로 수도권에서는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 산업의 전력 수요가 기존 계통 용량을 초과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 이후 대용량 전력 사용 시설은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하는데, 수도권에서는 전력계통 공급능력 부족을 이유로 한 불허 사례가 늘고 있다. 발전 과잉과 수요 과잉이 각각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역설이다.
전문가들은 이 구조적 불일치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본다. 수도권 전기 다소비 시설의 재생에너지 풍부 지역 이전이 정책적 해법으로 거론되지만, 통신망·전문인력·수요처 접근성 등 입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기업의 자발적 이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당근과 채찍' 방식으로 데이터센터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있으나 실적은 아직 제한적이다.
서해안 HVDC 에너지 고속도로의 구상와 과제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제시한 근본적 해법은 '에너지 고속도로'다. 호남권과 동해안 재생에너지 생산지를 수도권 및 주요 산업단지와 직접 연결하는 HVDC(초고압직류송전) 기반 대용량 장거리 송전망으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2025년 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핵심 사업인 서해안 HVDC는 525kV급 해저 송전선로 4개를 2030년부터 2038년까지 단계 구축하는 계획으로, 총 연장 1070km·전송용량 8GW·추산 사업비 12조2,000억원 규모다. 한전은 호남권 수도권 연결에 필요한 가공송전선로 9개 루트 가운데 4개를 해저 방식으로 전환해 지상 주민 갈등을 줄이고 공기를 단축한다는 전략이며, 1단계 사업(새만금~서화성)은 표준 공기보다 4년을 앞당겨 2030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해저케이블 경과지의 어업권 침해 문제는 수산업계 생존권과 직결되며, 보상 범위를 둘러싼 이견이 커질 경우 인허가 단계에서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 기술 측면에서는 LS전선·대한전선·효성중공업 등이 해저케이블과 HVDC 변환 설비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외국 기업이 주도해온 시장에서 국내 기술의 납기 경쟁력이 검증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재원 측면에서는 한전이 1단계 사업에 국민성장펀드 등 민간 자금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SPC) 방식을 최초로 도입하지만, 수익률 보장 구조와 전기요금 전가 문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RPS 개편과 재생에너지 시장 구조 전환
전문가들은 에너지 고속도로와 함께 지역 단위 분산형 배전망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부가 2025년 착수를 선언한 한국형 차세대 전력망은 재생에너지·ESS·수요관리 자원을 AI로 통합 제어하는 마이크로그리드 체계로, '지산지소(地産地消)' 기반 분산형 전력 체계가 목표다. 한전도 2026년 운영 과제로 출력제어 조건부 접속제도 시행, 재생에너지 허수·지연 사업자 관리 강화, ESS 활용 신제도 도입을 제시했다. 올해 상반기 확정될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이 에너지 고속도로의 단계별 일정과 투자 규모를 구체화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시장 제도도 함께 전환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중 RPS 제도를 총 발전량 대비 비율 이행 방식에서 용량(GW) 단위 목표 부여 방식으로 개편하고, 신규 설비에 대한 장기 고정가격계약 일원화 방안을 확정·시행할 예정이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도 현재 제주 시범사업을 거쳐 육지 적용을 검토 중이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신규 대형원전 기수를 실무안의 3기에서 2기로 줄이는 대신 태양광 추가 보급으로 공백을 메우는 방향으로 확정됐으며, 범부처 보급 정책이 계통 수용력 확충과 보조를 맞추지 못할 경우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이 맥락에서 나온다.
재생에너지 100GW와 에너지 고속도로는 정책 방향의 큰 그림에서 이견이 없다.. 문제는 속도의 비대칭이다. 태양광 패널은 1~2년 안에 설치되지만, 해저 HVDC 케이블은 경과지 협의에서 준공까지 7년 이상이 걸린다. 설비 보급 속도와 계통 확충 속도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한, 생산 과잉과 공급 부족이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는 지속된다. 올해 상반기 발표될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이 이 간극에 어떤 이정표를 제시하느냐가 에너지 전환 정책의 실질적 가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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