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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출구조사…이제 AI에게 물어볼까?

2026.06.13 06:00

6.3 지방선거일 당시 방송사가 진행한 출구조사원이 출구 조사함을 들고 있는 모습

■ "너무 차이가 크게 나는 거 아니야?"

6월 3일 지방선거 투표가 종료된 뒤 개표가 진행되던 밤, 기자는 야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도국(뉴스룸)에서는 TV 화면을 주시하던 기자와 스태프 사이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몇 시간 전 발표했던 지상파 3사 공동 출구조사 결과가 개표가 진행될수록 어긋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경합 지역의 1, 2위 후보가 밤새 엎치락뒤치락 뒤바뀌는 대혼전이 반복되자 뉴스룸의 공기는 얼어붙었습니다. "너무 차이가 크게 나는 거 아니야?", "완전히 체면을 구겼네…" 여기저기서 허탈한 표정으로 혼잣말하는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방송 3사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진행한 출구조사 예측은 무참히 빗나갔습니다. 방송사 직원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선거 당일의 출구조사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선거전부터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조사업체와 언론사들은 '민심의 향방'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여론조사 응답 외면하는 현실

이번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 전화를 몇 번이나 받으셨나요?

기자는 15번 정도 받았습니다. 바쁜 업무 시간에 자주 걸려 와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응답을 잘 하지 않은 건 여러분이나 저뿐만이 아닙니다. 요즘 전화 여론조사 응답률은 전국적으로 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100명에게 전화를 걸면 채 5명도 응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전화 여론조사 응답은 5% 아래로 하락했다. 전화 여론조사는 최근 스팸 전화로 처리돼 표시되기도 한다.

방송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출구조사를 실시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선보다는 후보자가 많은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더욱 그렇습니다.

KBS·MBC·SBS 방송 3사는 선거 때마다 공동으로 출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들어간 비용은 약 28억 원. 방송사 한 곳당 10억 원에 가깝습니다. 대선은 16억 원, 총선은 무려 73억 원이 들었습니다.

선거 당일 투표소 595곳에서 나오는 유권자를 붙잡아 일일이 묻는 작업입니다. 이번엔 약 10만 명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거기에 사전투표자 1만 5천 명에 대한 전화조사까지 더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측은 어긋났습니다. 왜 틀렸을까요?

서울시장 출구조사는 민주당 정원오 후보가 5.4%포인트 앞선다고 했습니다. 실제 결과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당선이었습니다. 오차범위 밖의 역전이었습니다.

부산 북구갑은 하정우·한동훈·박민식 후보의 3파전에서 출구조사는 순위를 틀렸습니다. 실제로는 무소속 한동훈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평택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국·유의동·김용남 후보가 맞붙은 이 선거구에서 출구조사는 3자 모두 1%포인트 내 초박빙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는 유의동 후보가 6~7%포인트 차이로 당선됐습니다.

대구시장은 더 황당했습니다. 0.8%포인트 박빙이라던 예측과 달리 실제 격차는 9%포인트였습니다.

조사업체들이 분석한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말하기 싫은 표심입니다. 출구조사에 응하지 않은 무응답자 20% 중 다수가 보수 성향이었습니다. 자신이 보수 후보를 찍었다는 사실을 조사원에게 밝히기 꺼렸습니다.

둘째, 진보 성향의 과대 표집입니다. 사전 투표자 전화조사에서 서울과 경남 일부 지역은 진보 성향 응답이 전체의 70%를 넘었습니다.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이번 선거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발생했던 상황"이라고요.

28억을 써도 구조적인 문제는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이 만든 가상의 한국인

엔비디아(NVIDIA)는 최근 흥미로운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한국인 100만 명의 가상 인물 데이터입니다. 이름하여 '네모트론-페르소나-코리아(Nemotron-Personas-Korea)'.

통계청, 건강보험공단, 대법원 등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가상 한국인들은 된장찌개를 먹고 아파트에 삽니다. 농촌에 사는 고령층도 있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젊은 세대도 있습니다. 기존 AI 데이터에서 소외됐던 다양한 계층을 실제 인구 분포대로 담아냈습니다.

경희대 이종혁 교수 연구팀은 바로 이 데이터에 주목했습니다. 응답률 추락과 비용 과다라는 기존 여론조사의 한계를 넘을 대안을 실험적으로 연구한 것입니다. 가상 한국인 1,000명을 뽑아 AI가 실제 여론조사 문항에 대신 답하게 했습니다. 실제 여론조사를 대체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런 방식이 보완 도구로 가능한지를 학문적으로 검증한 시도입니다.

이것을 '실리콘 샘플링(silicon sampling)'이라고 부릅니다. AI가 응답하는 샘플링이라는 뜻입니다.

■미국에선 이미 시작됐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2023년 챗GPT에 미국 유권자 정보를 입력했습니다. 성별, 나이, 지역, 학력 같은 인구통계 정보를 준 뒤 실제 선거 설문에 답하게 했습니다.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실제 미국인 응답 패턴과 90% 이상 일치했습니다. 비용은 단 29달러였습니다.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1,052명을 두 시간씩 심층 인터뷰해 AI 분신(아바타)을 만들었습니다. 이 AI 분신이 설문에 답하게 했더니 본인이 2주 뒤 같은 문항에 직접 답한 것과 86%가 일치했습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밴더빌트대 연구팀은 챗GPT로 만든 합성 응답을 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상당수의 응답이 실제 인간 응답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달랐습니다. 아예 방향 자체가 반대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수 성향인데 진보 성향으로, 이민자 유입 반대인데 오히려 찬성으로 나오는 식입니다. 평균은 그럴듯하게 맞아도 세부 관계는 완전히 틀릴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게다가 같은 질문이라도 AI 모델이 업데이트되면 3개월 만에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사람보다 사람을 더 잘 아는 AI.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요?

■AI도 속마음을 숨깁니다

실리콘 샘플링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AI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답을 하도록 학습되어 있습니다. 노골적인 거부나 극단적 표현을 피하도록 훈련된 것입니다.

출구조사에서 보수 유권자가 속마음을 숨기듯, AI도 속마음을 숨깁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구조는 같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AI 분신(아바타)은 인구통계와 과거 응답 이력으로 구성됩니다. 안정적인 성향은 꽤 잘 반영합니다. 하지만 투표 당일 형성되는 맥락적 판단은 포착하지 못합니다. 견제론, 정권심판론, 부동산 이슈 등은 이번 6.3 선거에서 경합 지역 표심을 뒤흔든 변수들인데 이런 요동치는 표심까지 포착할 수 있느냐는 한계도 있습니다.

선거 전문가와 정치인들은 민심이란 고정된 숫자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투표 당일까지 흔들리고 맥락에 따라 바뀌고 때로는 집단적으로 권력의 균형추를 조율합니다. 그 거대한 흐름을 AI 분신(아바타)이 담아낼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 빈자리를 AI가 채울 수 있을까?

전화 여론조사 응답률은 이미 한 자릿수로 떨어졌습니다. 28억짜리 출구조사는 반복해서 틀립니다. 기존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것은 분명합니다. 방송사에서는 출구조사 회의론도 제기됩니다.

그 빈자리를 AI가 채울 수 있을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역설적입니다. 출구조사가 틀린 핵심 이유는 사람들이 속마음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그 속마음을 AI가 대신 읽어줄 수 있다고요?

사람이 말하기 꺼리는 것을 AI가 말해준다.

그게 가능하다면 여론조사의 미래는 바뀝니다. 가능하지 않다면 출구조사의 실패는 다음 선거에서도 반복되거나 출구조사 자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우리가 관행적(?)으로 해온 여론조사, 출구조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이 칼럼은 이종혁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의 논문 '한국형 실리콘 샘플링의 가능성과 한계' 및 한국언론학회 컴퓨테이셔널방법론 연구회 세미나(2026.6.5)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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