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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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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적의 시작, 피란학교

2026.06.13 00:31

[아무튼, 주말]
[전봉관의 폐허 위에 핀 자유 시대]
전쟁의 포화 속에도
미래 인재 키웠다

일러스트=한상엽

일제강점기 신학년의 시작은 4월이었지만, 미 군정기 9월로 변경됐다. 미국·유럽의 신학년 시작 시기와 일치시키기 위한 조정이었지만, 4월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회계 연도와는 잘 맞지 않았다. 1950년 3월, 문교부는 신학년 시작을 4월로 환원할 것을 결정하고, 그 중간 단계로 1950년 신학년은 6월 1일 시작했다. 그해 신학년이 시작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했다.

6월 26일 월요일 서울 시내 국민학교와 중학교 1·2학년만 ‘임시 휴학’했고, 중학교 3학년 이상 고학년은 정상 수업했다. 27일 2교시 수업이 끝날 무렵에야 서울 시내 모든 학교가 폐쇄되고 ‘무기 휴교’에 들어갔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28일 정오 무렵, 학교 국기 게양대에 인공기가 내걸렸다. 군경, 우익단체 회원 가족 등 인민군에게 붙잡히면 곤욕을 치를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은 서울에 남았다. 북한 점령 석 달 동안, 서울에 잔류한 학생들은 ‘미제 구축(驅逐) 학생 궐기대회’를 비롯한 각종 ‘적색 시위’에 동원됐다. 6만~10만명의 청년·학생이 ‘인민 의용군’에 강제로 징집됐다.

대한민국 정부를 따라 피란을 간 학생 중 200여명은 6월 29일 수원에서 ‘비상학도대’를 발족시켰다. 이와는 별개로 7월 4일 대전에서 ‘의용학도대’가 조직됐고, 두 단체는 7월 19일 대구에서 ‘대한학도의용대’로 통합됐다. 국군 10개 사단과 그 예하 부대에는 학도병이 포함되지 않은 부대가 없을 정도로 많은 학생이 학도의용대에 자원했다. 재일동포 학생 600여명도 ‘재일학도의용군’을 결성해 바다를 건너와 참전했다. 전방에서 직접 무기를 들고 참전한 학도병이 2만7700여명, 후방에서 피란민 구호, 선무공작 등 국군을 지원한 학도의용대는 27만여명에 달했다.

1950년 6~9월 북한에 점령된 3개월 동안, 서울 학생들은 ‘미제 구축(驅逐) 학생 궐기대회’를 비롯한 각종 ‘적색 시위’에 동원됐다. 6만~10만 명의 청년‧학생이 ‘인민 의용군’에 자원(自願)을 가장해 강제 징집됐다. /국사편찬위원회

1950년 10월 27일 서울로 환도(還都)한 대한민국 정부는 불과 두 달여 만인 이듬해 1월 4일 중공군에게 서울을 또다시 빼앗기고 수도를 부산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유엔군은 1월 25일부터 한강 이남 성남·용인·안산·하남·의왕 일대에서 전개한 ‘선더볼트 작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다. 서울을 재탈환한 것은 3월 14일이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전황에 따라 매번 수도를 옮겨 다닐 수 없어 이번에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부산에 남았다. 서울로 두 번째 환도한 것은 6·25전쟁 휴전협정이 조인된 이후인 1953년 8월 15일이었다.

서울을 재탈환하기 직전인 1951년 2월 28일, 이승만 대통령은 “국가의 앞날을 짊어질 학도들은 시급히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하라”는 세계 전사(戰史)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종군 학생 복귀령’을 내렸다. 전쟁의 승기를 잡은 상태였지만, 전쟁이 끝나려면 아직 2년 이상 남은 시점이었다. 병사 한 명이 아쉬웠던 그 시기, 국군 통수권자는 ‘전쟁 이후’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 후속 조치로 문교부도 전국에 흩어진 학도의용군에게 4개 항의 복교령을 공포했다. ‘모든 학도는 원래의 본분인 학업으로 돌아갈 것’, ‘군복무로 학업이 중단된 학도의 군복무 사실이 인정되면 학교 당국은 무조건 복교를 인정할 것’, ‘군 및 각급 학교는 군복무로부터 복교하는 학도들을 특별히 배려할 것’, ‘군복무로 학년 진급이 누락된 학도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학년 진급을 인정할 것’ 등이었다.

6·25전쟁 발발 직후 낙동강 전선을 방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학도의용대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51년 4월 공식 해산됐다. 일부 학도병은 현역 하사관, 장교로 신분을 전환해 복무를 이어갔지만, 대부분은 대통령의 지시대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재개했다.

1·4후퇴 이후 부산으로 옮겨온 문교부는 2월 10일 전국적으로 일제히 개학할 것을 지시했다. 교실은 파괴되고, 교사와 학생은 피란을 떠나거나 참전해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숲·천변·광장 등 햇볕 가릴 천막을 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교사(假校舍)를 마련하고 학생을 모아 ‘전시 교육’을 실시하라는 지시였다. ‘전시 독본’ 편찬이 끝나기 전까지는 피란학교에 학생과 교사가 모여 무엇이든 가르치고 공부하게 했다.

1951년 어린 학생들이 부산의 한 피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1951년 1·4후퇴 이후 문교부가 공식적으로 피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피란학교를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피란학교는 지역에 따라 1954년까지 운영됐다. /조선일보DB

그에 따라 1951년 2월 서울사대 부속중학교가 보수동 산기슭에서 개교한 것을 시작으로, 용산중·수도여중·경기중·경복중 등 서울 지역 49개 중학교가 부산 보수동, 송도, 영주동, 초량, 용두산 등에 천막과 판자로 가교사를 지어 수업을 재개했다. 다수의 피란학교가 설치된 보수동 달동네 입구에는 헌책방이 하나둘씩 들어서 ‘보수동 책방골목’이 형성됐다.

부산에 이어 거제·대구·대전·수원·안성·밀양 등에도 피란학교가 개교했고, 가족과 함께 서울로 돌아간 학생을 위해서는 ‘훈육소’를 마련해 공부를 도왔다. 전국적으로 피란 국민학교 54곳, 피란 중학교 64곳, 서울 훈육소 55곳이 설치됐다. 피란민들은 판잣집을 지어 등 붙일 곳만 마련되면, 그다음 날부터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다. 전쟁이 지속된 1953년까지 중학교와 대학교 입학시험도 거르지 않고 치러졌다.

피란학교와 함께 1951년 2월 부산에서 전시연합대학이 개강했다. 이후 서울대·연희대·이화여대 등 각 대학은 부산에 가교사를 마련해 독자 수업에 들어갔다. 고려대는 대구, 홍익대는 대전, 중앙대는 청주에 가교사를 마련했다. 그에 따라 1952년 5월 전시연합대학은 설립된 지 1년 만에 해산했다. 전면전이 펼쳐진 3년 동안 초·중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피란지에 피란학교를 세우고 교육과 학업을 이어간 경우는 인류사에 처음 있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대학과 대학생 숫자는 오히려 증가했다. 1950년 52개 대학에 학생 수는 3만여 명이었지만, 1953년에는 57개 대학에 학생 수는 7만여 명이었다. 대학에 등록하면 징집 보류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각 대학에서 발급한 ‘전시 학생증’은 일종의 ‘징집 보류 증명서’처럼 오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 양적으로 증가한 대학 졸업자는 이후 각 분야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주역들로 성장했다. 대한민국의 경이로운 성공은 6·25전쟁 기간 천막과 판자로 얽어 만든 피란학교에서 시작됐다.

<참고문헌>

김상훈, ‘한국전쟁기 서울의 학생과 학교’, 서울과 역사 제102호, 2019

남상선, 김만규, 6‧25와 학도병, 혜선문화사, 1974

안경식, ‘한국전쟁기 대한민국 학생의 삶’, 교육사상연구 제24-2호, 2010

안경식,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피란학교 연구’, 항도부산 제41호, 2021

임영언, 허성태, ‘한국전쟁 당시 학도의용군 활약과 국가보훈 선양사업 연구’, 한국보훈논총 제17-4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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