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쇼핑 요정의 각성
2026.06.13 00:38
나는 우리 집에서 ‘쇼핑 요정’이라 불린다. 가족들이 무언가 필요할 때면 자연스레 나를 찾는다. 몇 번 좋은 가격에 알맞은 물건을 골라낸 경험이 쌓이면서 여러 제품 가운데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는 일은 내 몫이 됐고, 그렇게 별명이 붙었다.
칭찬 반, 비꼼 반의 별명이지만 나는 그 역할을 대체로 즐겼다. 사는 일은 내게 행복을 줬다.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물건을 가득 담아두고, 고민 끝에 몇 가지를 택해 결제 버튼을 누른 뒤 택배를 기다리는 과정은 때로 위로가 됐다. 여행을 앞두고 그곳에서만 살 수 있거나 현지에서만 특별히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특산품’을 검색해 구매 목록을 만드는 일 역시 여행 준비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요즘 그 기쁨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덮어두고 사는 일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닐 텐데, 필요가 아닌 단순한 욕망에 이끌려 물건을 사고 나서야 억지로 그 필요를 만들어내는 순간 마음 한켠에 얕은 죄책감이 스며들었다. 출근길 자전거를 타며 광노화를 걱정해 지난해 사둔 팔토시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매장에서 자외선 차단 판초를 덜컥 살 뻔했을 때도 그 생각이 떠올라 결국 손을 멈췄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무턱대고 사들이는 내 모습에서 대상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태도가 드러났다. 집에 넘쳐나는 텀블러를 정리해 창고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커피숍 신상품 앞을 기웃거리는, 그런 모습은 내 일상에서 자주 목격되는 장면이었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된 요즘, 쉬운 반품이 쉬운 소비를 부추긴다. 약간의 반송료만 부담하거나 어떤 곳은 아예 비용조차 받지 않고 반품을 받아준다. ‘쇼핑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고민은 존재한다.
미국 커뮤니티 레딧에는 1년 전 반품 문화에 대한 걱정이 올라와 100개 넘는 댓글이 달렸다. 반품을 위해 박스를 여러 개 들고 오는 어떤 이를 본 네티즌은 ‘반품에 약간의 불편함을 더하는 게 좋겠다’는 쓴소리를 남겨 호응을 얻었다. 또 다른 댓글에는 ‘온라인 쇼핑이 태동하기도 전에도 반품은 많았다’는 소매점 아르바이트생의 경험담이 이어졌고 충동구매와 물건을 쌓아두는 행태가 결국 도파민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나아가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곧바로 휴대전화 광고에 뜨는 알고리즘이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하는 산업 구조까지 비판하는 목소리로 확장됐다.
실제로 미국 코어사이트리서치가 2023년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의류 브랜드와 소매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온라인 의류 주문의 평균 반품률은 24.4%에 달했다고 한다.
이제 쇼핑 요정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물건 속에 담긴 가치를 다시 돌아보는 데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디모데전서 4장 4~5절을 수시로 묵상하려 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오늘도 하이에나처럼 온라인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던 나에게 이렇게 묻겠다. 그저 ‘새로운 것’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는지. 그러면서 인스타그램 배경 음악으로도 자주 쓰이는 미국 CCM 가수 포레스트 프랭크의 ‘땡스풀(Thankful)’을 흥얼거릴 것이다.
“감사할 게 너무 많아요(I’ve got so much to be thankful for). 보세요, 저는 지붕과 침대가 있고 먹을 것도 좀 있고요(Look, I’ve got a roof and a bed, a couple groceries to stay fed). 전화기와 깨끗한 물도 있지요(I’ve got a phone and clean water). 멀리 가고 싶을 땐 신을 신발도 있어요(And some shoes when I wanna go farther).”
그러다 보면 물욕이 잦아들고 마음은 오히려 충만해질 것이다. 이미 내게 주어진 것이 차고 넘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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