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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여름이면 생각하는 루소의 낭만

2026.06.13 00:05

사막의 사자와 자고 있는 집시
나도 홀연히 길을 떠나고 싶다

전원경 예술 전문 작가·세종사이버대 교수
여름, 여행, 휴가 같은 단어들을 들으면 내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사막의 밤, 먼 길을 걸어온 집시는 달빛과 고운 모래를 이불 삼아 잠이 들었다. 이때 푸른 어둠을 헤치고 어디선가 나타난 사자 한 마리.

사자는 낯선 여자의 존재가 신기한지 곤히 잠든 집시 곁으로 다가와 냄새를 맡아본다. 바늘 하나라도 떨어지면 들릴 듯이 사막의 밤은 온통 고요하고 호기심에 찬 사자의 눈은 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동그랗다. 잠든 집시 곁에는 여행의 동반자인 만돌린과 물병이 놓여 있다. 어둠이 스러지기 전에 사자는 모래 언덕 너머로 사라질 테고, 잠에서 깬 집시는 만돌린을 메고 노래를 부르며 다시 먼 길을 떠날 것이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앙리 루소(1844~1910) 그림의 매력은 바로 이 비현실과 황당함에 있다. 미술사에서 말하는 낭만주의와는 별개로 나는 루소의 그림처럼 낭만이 흘러넘치는 그림을 본 적이 없다. 원시 세계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색채감이 가득한 그림, 루소의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하는 위트와 유머가 있다.

그중에서도 ‘잠자는 집시’는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림이다. 중학교 1학년 미술 교과서에서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으로 기억한다. 루소가 어떤 화가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전혀 몰랐지만 어린 눈에도 이 그림은 무척 사랑스러웠다.

1학년이 끝나고 그해 교과서들이 모두 필요 없어졌을 때, 나는 이 그림을 조심스럽게 오려내어 2학년 국어 교과서 맨 뒷장에 붙여놨다. ‘어른이 되면 이 화가처럼 사막에 가봐야지, 아마 사하라 사막일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났지만 나는 여태 사막에 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루소 역시 사막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아예 자신의 고국인 프랑스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잠자는 집시’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사막은 순전히 그의 상상 속 산물이다.

루소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그는 파리시청 세관 공무원으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틈틈이 그림을 그리다가 40대 후반이 돼서야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 생활을 시작했다.

루소의 그림은 파리 평론가들에게 ‘어린애 장난 같은 그림’이라는 비웃음만 받았다. 동료 화가들 역시 아방가르드 회화를 놀림감으로 삼는다며 루소의 그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피카소만이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그림 몇 점을 사줬다고 한다.

루소의 현실은 그림 속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아니, 그림 속 낭만과 루소의 현실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가난한 와중에 아이들은 대부분 일찍 죽었고 루소 본인도 시립 자선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최소한 그림 속에서만은 이 화가는 결코 기죽거나 우울해하지 않았다.

화가는 유쾌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가 보지 못한 정글과 사막을 상상한다. 현실의 사막, 작열하는 땡볕과 풀 한 포기 살 수 없는 건조한 기후 대신 루소는 총천연색 드레스를 입고 만돌린을 멘 채 사막을 여행하는 집시를 떠올렸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옮겨놨다. 그림을 그리며 그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끈끈한 무더위가 몸을 휘감는 여름, 황금빛 모래에 죽은 듯 누웠다가 새벽과 함께 일어나 부스스 모래를 털고 다시 길을 떠나는 집시의 여행을 꿈꾼다. 거미줄처럼 나를 얽매고 있는 일상의 짐과 거추장스러운 상념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오로지 빛나는 태양과 보석 같은 별빛만을 바라보는 그런 여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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