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민주당 표밭에서 투표지가 모자랐다면
2026.06.12 23:56
“참정권이 무너졌는데
어른들은 왜 안 나서냐“…
일만 있으면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 많던 ‘어른’은
다 어디 갔는가
1987년 12월 제13대 대선일 오전, 서울 구로을 선거구에서 투표함 한 개가 이송되는 장면이 시민들에게 목격됐다. 투표가 마감도 되기 전에 옮기려 한 것이 의심을 샀다. 상자 위에 현수막·봉투 등을 쌓아 은폐하려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다. 선관위는 부재자 우편 투표함을 미리 개표소에 갖다 두려던 것이라 해명했으나 부정선거 의혹은 삽시간에 폭발했다.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이 투표함을 탈취하고 구로구청을 점거해 사흘간 농성을 벌였다. 경찰과 시위대 충돌로 수십 명이 부상당하고 1000여 명이 연행되는 대형 시국 사태로 번졌다.
꽁꽁 봉인된 채 선관위 수장고에 보관됐던 투표함은 한국정치학회 요청으로 2016년 개봉됐다.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 투표함 속 표수는 당시 선관위가 집계해 둔 부재자 투표수 기록과 정확히 일치했다. 우편 봉투, 등기번호도 정상이었고 조작 흔적이라곤 없었다. 1987년 사태는 오해가 빚은 비극이었다. 그렇다고 공정 선거를 갈망한 민초(民草)의 저항 정신이 폄훼될 수는 없었다. 방식의 과격성 논란은 있었지만 부정 의혹에 맞선 시민운동으로 민주화 항쟁사(史)에 기록됐다.
그 39년 뒤, 민주주의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나라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졌다. 구로구청 의혹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명백하고도 총체적인 국민 참정권 침해였다. 용지가 없어 투표를 못 하고, 개표 방송을 보며 투표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문제 된 91개 선거구는 거의 예외 없이 야당 강세 지역이었다. 그간 민주당이 선관위를 감사원 감사 대상에서 빼는 법안까지 내며 시종 감쌌다는 사실이 더해져 의혹을 키웠다. 주권자가 들고 일어나 항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잠실에서 펼쳐진 참정권 운동의 주역은 2030 청년이었다. 선거권 침해에 분노한 것은 구로구청 때와 같았으나 표현 방식은 달랐다. 야당·재야가 주도했던 39년 전과 달리, 잠실의 청년들은 지도부 없이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풀뿌리 집회를 이끌었다. 피켓 대신 종이에 쓴 구호와 태극기 그림을 들었고 애국가만 불렀다. 정치엔 선을 그었다. 청와대로 가자던 야당 정치인이 야유받고, 음모론을 외친 유튜버가 제지당했다. 각목과 화염병이 난무했던 구로구청 식의 폭력도 없었다. 청년들은 자신이 기본권을 지키려는 국민일 뿐 ‘시위대’가 아니라고 했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국민 저항 운동이 탄생했다.
이념·진영 범벅의 과격 투쟁에 익숙한 기득권 좌파에겐 청년들이 왜 화났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민주당 스피커를 자처하는 유튜브 방송은 보수 온라인 커뮤니티를 향해 “탱크로 밀어버려야” 운운하며 막말을 퍼부었다. 김어준씨는 2030 남성의 투표 성향이 “MB 국정원의 공작 기획”이고 “범죄적 현장”이라 했다. 청년 세대의 당연한 분노에 ‘보수화·우경화’ 프레임을 씌워 문제 집단인 양 매도했다.
민주당 편향의 어떤 지상파는 잠실 집회를 보도하며 ‘도 넘는 시위대’ ‘생난리·준동’이라고 했다. 민노총이나 운동권 시위의 경찰 폭행, 기물 파손, 음주·방뇨엔 눈감던 친여 방송이 청년들에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청와대는 6·3 선거일 오후 투표용지 부족이 알려진 뒤에도 한동안 딴전을 피웠다. 상황 발생 4시간여가 지난 밤 10시에야 ‘선관위는 행정부 소속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한 줄짜리 자료를 냈다. 남의 일이라는 뜻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한밤중에도 글을 올리던 이재명 대통령은 만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오후에야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친여 유튜버의 ‘탱크’ 망언에도 말문을 닫았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이벤트를 향해 “저질 양아치의 막장 행태”라고 몰아세우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잠실의 청년들은 “참정권이 무너졌는데 어른들은 왜 안 나서느냐”고 했다. 그들의 물음은 민주주의 제도의 파탄 앞에서도 진영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정파적 어른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광우병에서 세월호·천안함·사드·후쿠시마까지, 꼬투리만 있으면 뛰쳐나오던 그 많은 사회단체가 성명 한 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내세우던 운동가, 종교인, 자칭 지식인들은 왜 조용한가. 탄핵 시위대에 커피를 쏘던 ‘개념 연예인’들은 어디 갔나.
이 기이한 침묵은 ‘장소’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송파구가 아닌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투표지 부족 사달이 났다면? 당장 나라가 뒤집히고, 지난 탄핵 정국 때 1700여 단체가 ‘비상행동’을 조직해 1800여 회 집회, 47차례 시국 선언을 했던 것에 버금가는 대규모 투쟁이 펼쳐졌을 것이다. 구로구청 농성 지도부의 후예인 민주당도 가만있을 리 없다.
하지만 기득권이 된 그 진영의 ‘어른’들은 정치적 이득이 없는 일엔 행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위기조차 선택적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그 극단적 정파성이 지금 우리가 맞이한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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