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중소돌의 기적
2026.06.12 17:37
하이브·SM·YG·JYP 등 소위 4대 기획사의 연습생은 100명 남짓이다. 지망생들은 학원까지 다니며 자본과 역량이 집중된 대기업에 들어가려 목숨을 건다. 내부 경쟁을 뚫고 데뷔만 하면 성공이 보장된 꽃길을 걸을 수 있어서다. 학벌이 평생 따라다니는 한국 사회다운 시스템이다.
그래서 최근 온 국민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점령한 5인조 걸그룹 리센느는 돌연변이다. 중소기업 더뮤즈엔터테인먼트에서 2024년 3월 데뷔한 이들은 초반엔 고전했다. 설 무대가 없어 군부대, 지역 축제는 물론이고 흙먼지 나는 시골 학교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무명으로 2년을 버티다 그룹 리더 원이는 닥치는 대로 유튜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눈여겨본 유튜브계 '미다스의 손' 윤성원 PD가 손을 내밀었다. 기적은 우연히 왔다. 원이의 유튜브에서 일본인 멤버 미나미가 갸루 화장을 한 채 "거제 야~호"라고 외치는 장면이 온라인 밈으로 인기가 폭발한 것이다. 내친김에 거제와 경주 출신 두 멤버는 사투리를 봉인해제했다. 조선소 아재 같은 걸쭉한 말투에 삼촌·이모들은 열광했다.
100위권에만 들게 해달라 소원을 빌던 이들의 2년 전 노래 '러브 어택'은 음원 플랫폼에서 톱10에 진입하는 역주행 신화를 썼다. 절박했던 소녀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회사가 계급이 되는 시스템에 균열을 낸 것이다. 인기 비결은 '대기업돌'에선 볼 수 없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이다. 고향 거제에서 찍은 영상에서 원이는 추리닝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고, 맨손으로 낚싯대에 지렁이를 끼운다. 금의환향한 원이가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의 '아모르 파티'를 신나게 부르는 장면도 화제가 됐다. 운명을 개척한 소녀들에게 이보다 잘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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