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 빛을 담은 거장…데이비드 호크니 88세로 별세
2026.06.12 20:03
팝아트와 풍경화의 경계 넘나 들어
70년간 현대미술 이끈 영국 대표 화가
영국 출신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1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8세.
AP통신에 따르면 호크니의 홍보 담당자 에리카 볼턴은 이날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는 다음 달 89세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1937년 영국 북부 브래드퍼드에서 태어난 호크니는 런던 왕립예술학교에서 수학하며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르네상스 초상화와 터너의 풍경화, 피카소의 입체주의, 미국 팝아트 등 다양한 예술 사조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1960년대 미국을 방문한 뒤에는 남부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빛과 개방적인 분위기에 매료됐다. 이후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해 수영장과 야자수, 교외 주택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고 이는 곧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특히 물결 위로 반사되는 빛과 색채를 독창적으로 표현한 수영장 연작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상징적 이미지로 평가받는다. 호크니는 1979년 인터뷰에서 “런던에는 우울한 곳이 많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우울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명성은 작품 가격으로도 입증됐다.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두 인물이 있는 수영장)’은 9030만 달러에 낙찰돼 당시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2020년에는 또 다른 대표작 ‘더 스플래시’가 약 3000만 달러에 판매됐다.
하지만 호크니의 관심은 수영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부모와 친구들을 그린 초상화, 영국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고향 요크셔의 숲과 들판을 소재로 한 대형 풍경화 연작을 발표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회화뿐 아니라 사진, 판화, 무대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 것도 그의 특징이다. 수백 장의 사진을 조합한 포토 콜라주 작업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 실험으로 주목받았다. 2001년에는 저서 ‘숨겨진 지식(Secret Knowledge)’을 통해 옛 거장들이 광학 장비를 활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미술계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새로운 기술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말년에는 아이패드를 주요 창작 도구로 활용하며 디지털 드로잉 작업에 몰두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제작한 봄 풍경 연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안겼다. 그가 남긴 “봄은 취소할 수 없다(They can‘t cancel the spring)”는 문구는 전 세계적으로 큰 공감을 얻었다.
호크니는 영국 사회에서도 특별한 존경을 받았다. 199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최고 권위 훈장 가운데 하나인 컴패니언 오브 아너를 받았으며, 2018년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설치된 ‘여왕의 창’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을 맡았다.
2012년 가벼운 뇌졸중을 겪고 말년에는 청력도 크게 약화됐지만 창작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2017년 인터뷰에서 “나를 젊게 유지하는 것은 일”이라며 “60년 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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