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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털어간 엠바고 보도자료.. 정부는 유출된 줄도 몰랐다

2026.06.12 11:39

국세청, 해외 국세청장 동정자료 사전 유출

구글 AI가 버젓이 공개.. 삭제 조치도 못해

농림부·문체부도 엠바고 자료 실수로 공개

크롤링에 털려.. 국세청 유출, 경위도 '깜깜'
◆…(사진=각 기관 제공)


국세청 등 국가기관이 국민에게 보도자료를 공개하는 시점, 즉 '엠바고' 규정을 스스로 깨고 포털사이트에 흘리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인공지능(AI) 서비스가 유출된 자료를 주워 가 언론보다 먼저 공표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이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자료 유출 원인도 모른 채 허둥대는 사이, 부동산 정책 등 국민 경제에 파급력이 큰 문건까지 민간에 나돌아 구멍 뚫린 자료 보안에 대한 국민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 외국 인사 동정 유출한 국세청.. 수정해도 포털에 남아

관가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 6일 보도자료 유출 신고를 받았으나 회수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국세청장이 한국에서 회담을 했다는 내용의 자료 원문이 이날부터 구글과 네이버 등 대형 포털사이트에 노출됐다. 양국이 설정한 엠바고(7일 오전 12시)보다 하루는 이른 시점이었다. 국세청은 "우리 측에서 유출한 게 맞다"고 밝혔다.
◆…(윗 이미지)6월 6일 구글에 국세청 보도자료 내용을 검색한 모습. 다음날 공개돼야 할 보도자료를 구글 AI가 미리 입수하고 설명문을 제공하고 있다. (아래 이미지)6월 7일 엠바고가 해제된 이후 보도된 본지 보도. (이미지=이재형 기자)


특히 구글은 '라이베리아' '국세청' 등 키워드를 검색하면 AI가 해당 자료 파일과 요약문까지 정리해 줘 전 세계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언론 보도보다 빨리 빅테크 AI가 입수해 배포한 셈이다. 국세청은 6일 오후 8시쯤 이 상황을 인지하고 부랴부랴 포털에 삭제 요청을 보냈으나, 조치되지 않았다. 구글과 네이버 운영진이 부재중이었고, 접수가 됐다 해도 삭제까지 하루쯤 걸려 주워 담기엔 이미 늦었던 것. 결국 엠바고 시간은 지나버렸다.

공공기관의 보도자료 유출 사고는 같은 날 또 있었다. 이번엔 농림축산식품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제였다. 올해 '쌀 가공식품산업대전' 행사 개최 소식을 소개하는 농림부 7일 자 보도자료가 2일 빠른 지난 5일 농림부 누리집에 풀렸다. 누리집 관리자가 실수로 자료 공개 날짜를 잘못 입력했는데, 이번엔 구글·네이버는 물론이고 문체부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누리집까지 자동으로 받아 게재했다.
◆…(ⓛ번 이미지)농림축산식품부 6월 7일자 보도자료 원문. (②번 이미지)6월 6일 네이버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유출된 농림부 보도자료 원문 링크 모습. (③번 이미지)유출된 농림부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한 AI 웹사이트에서 6월 6일 게재한 뉴스 기사 콘텐츠. (이미지=이재형 기자)


농림부는 6일 오후 1시쯤 유출 사실을 발견하고 누리집 글을 비공개로 돌렸으나 소용 없었다. 자료 원문 파일이 그새 포털과 정책브리핑에 '박제'돼 계속해서 검색됐기 때문이다. 결국 한 AI 사이트가 해당 자료를 받아 6일 자기들 홈페이지에 버젓이 게재했다. 농림부와 문체부는 입을 모아 "보도자료 원문 파일 링크가 포털에 남은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 세제개편안도 샜었나? 문체부 "실태 파악 안할 것"

이 같은 정부 문건 강제 유출은 포털의 '크롤링'(긁어오기) 기능이 원인이었다. 포털은 지금도 시시각각 정부 누리집에서 자료를 받아 접속 링크를 생성하고 있다. 과거 이런 유출은 포털에 쌓인 자료 뭉치에 묻혀 티가 안 났으나, 이젠 AI가 콕 집어 보여줘 곧이 곧대로 우리 눈에 띄는 것이다.

AI는 '기관명 + 보도시점'을 자동으로 크롤링하다가 하나씩 얻어걸리면 뉴스 글로 재가공해 배포하고 있다. 본지가 이렇게 과거 보도자료를 검색해 보니, 포털 게재 시점이 엠바고보다 빠른 자료를 다수 찾을 수 있었다. 지난 1월 16일 오전 11시 배포된 재정경제부의 '2025년 세제개편 후속 시행령 개정' 보도자료도 하루 전(15일) 날짜로 접속 링크(정책브리핑 URL)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시티건설의 하도급법 위반행위 제재'(6월 3일 오전 12시 엠바고) 보도자료도 전날인 2일 자 정책브리핑 링크가 있었다.
◆…(상단 이미지) 재정경제부 '2025년 세제개편 후속 시행령 개정' 보도자료 원본. 보도 시점을 2026년 1월 16일로 명시했다. (하단 이미지) 구글에 검색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의 '2025년 세제개편 후속 시행령 개정' 보도자료 원본 링크. 게재 시점이 엠바고보다 하루 이른 2026년 1월 15일로 나온다. (이미지=이재형 기자)


다만, 포털에 남은 게재 날짜와 실제 게재 시점이 다를 수 있어 이런 사례가 곧 유출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문체부는 설명했다. 이에 기자가 '과거 유출 실태를 파악하겠느냐'고 묻자 문체부 관계자는 "우리가 연간 게재하는 공공기관 보도자료가 2만여 개에 달한다"라며 "과거 보도자료 출고 이력을 전부 체크하긴 어렵고, 앞으로 보도자료 원문 링크가 남지 않게 조치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세청 유출 자료처럼 어디서 샜는지 경위를 모르는 사례도 섞여 있다는 사실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번 라이베리아 국세청장 보도자료는 정확히 '6월 7일 오전 12시' 공개되도록 설정해 둬 직원 실수로 유출된 건 아니었다. 공공기관 자료가 두루 저장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스토리지(NAS) 유출 가능성이 일각에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취재가 시작되자 국세청 관계자는 "경위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으나, 며칠 째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작년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전날 한 네이버 블로그에 게재된 부동산 대책 원본 이미지.


최근 정부는 부동산 대책 등 중요 정부 문건을 흘려 시장 혼란을 자초한 바 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재경부) 등이 배포한 '10·15 부동산 대책'은 전날 포털에 널리 유포돼 부동산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재경부는 최근에도 보도자료를 통해 "인터넷에 떠도는 부동산 대책 관련 글은 사실무근이며, 유포 시 수사 의뢰를 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그러나 정작 안에서 새는 바가지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모양새다. 엠바고 파기는 언론사가 범하면 출입정지 등 페널티가 뒤따르지만, 정부가 흘린 건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보안이 요구되는 국제 엠바고 자료조차 정부가 유출한 건 상대국 모르게 유야무야 넘어간다고 한다. 재경부 관계자는 "공무원이 OECD 등 국제 엠바고 자료를 유출해도 '보안 문서' 유출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다할 제재를 받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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