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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돈이 된다’는걸 보여주겠다” …오직 여성 창작자만의 ‘영희 페스티벌’ [플랫]

2026.06.12 10:43

티켓 하루 만에 팔려 엉엉 울어
여성 예술가로 삼켜운 분함 탓
오늘부터 3일간 공연장 3개서
음악·스탠드업 코미디·영화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오지은이 페스티벌 기획자로 등장했다. 여성 창작자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영희 페스티벌’을 제작하면서다. 12일부터 사흘간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일대에서 열리는 ‘영희 페스티벌’에는 분야를 막론하고 오직 여성 창작자들이 출연한다. 공연의 제목 ‘영희’는 국어 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여성 인물인 ‘영희’의 이름을 따왔고, 여기에 여성들에게 ‘영광’(榮)과 ‘기쁨’(喜)을 되찾겠다는 포부를 더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희 페스티벌’ 기획자 오지은. ⓒ전예슬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유어썸머 사무실에서 만난 오지은은 “이번 공연을 통해 ‘여자가 돈이 된다’는 선례를 남겨 기쁘다”며 “여성은 물론 젠더 소수자, 남성까지 편견을 싫어하는 이들끼리 문화를 향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07년 데뷔한 오지은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로 활동해왔다. 인디 아티스트로서 공연을 직접 준비해온 그에게도 페스티벌은 낯선 일이었다. 3일간 공연장 3곳, 아티스트 30여 팀을 관리하는 일은 단독 공연 20개를 준비하듯 분주했다. 전화번호부를 털어 섭외 연락을 하고, 머리를 싸매며 시간표를 짰다. 라인업에는 이상은, 선우정아, 김윤아 같은 대형 아티스트부터 우희준, 해파, 청요일 같은 신예까지 이름을 올렸다.

[플랫]“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 그럼 망해라♥”…스탠드업 하는 여자들

가수 선우정아·이상은·김윤아. 영희 페스티벌 제공


영희 페스티벌은 음악 무대뿐만 아니라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팟캐스트, 영화 상영, 작가와의 토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오지은이 좋아하는 것들이 나와 비슷한 ‘영희’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어떤 영희는 원소윤을 보고, 믿고 보는 작가가 김소영이고, 좋아하는 영화가 <첫여름>일 수도 있는 거예요. 저는 그 사람을 공연장에서 영화제·도서전·북토크에서 봐요. 출판계와 음악계에서 20년을 일했으니까 이제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요.”

페스티벌 티켓은 출연진이 공개되지 않았는데도 판매 하루 만에 매진됐다. 얼리버드티켓은 매진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페스티벌의 성공은 그가 지나쳐왔던 차별의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저에게 ‘노래 가사 직접 쓴 거 아니죠?’라고 물은 분이 있었어요. 제가 썼을 리 없다는 말이잖아요. 다른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예요. 남성 아티스트들과 비교하면 여성이 이룬 음악적 성취나 천재성에 대한 말보다 외모, 옷 등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아요.” 그는 페스티벌을 통해 “오독당하던 이들의 서러움을 토로하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여성만 출연하는 페스티벌’의 꿈이 생긴 건 그가 고등학교 시절 잡지를 통해 미국의 ‘릴리스 페어’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누군가 만들어서 자신을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여러 해 했지만, 정작 자신이 나설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집중하는 건 ‘아티스트답지 않아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지난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던 공연 기획자를 만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했다.

화려한 무대장치도, 큰 출연료도 없는 신생 페스티벌이었지만 섭외를 받은 아티스트들은 최소한의 정보도 묻지 않은 채 참여에 응했다.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봐왔던 김사월, 안다영, 정우 같은 분들이 ‘거장’이 된 거예요. 이분들은 제 취지에 동의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분들도 굉장히 빨리 답을 주셨어요. 김윤아 선배님은 통화 30초 만에 나오겠다고 하셨죠.” 참여자가 하나둘 늘고, 공연 규모가 커지면서 마포아트센터와 손을 잡게 됐다.

영희 페스티벌


규모가 커질수록 오지은의 목표도 분명해졌다. 개별적인 성공담으로 소비돼온 여성 예술가들의 역사를 하나의 계보로 엮는 일이었다. 그는 “분명 계보가 있는데 여성 아티스트들은 마치 섬처럼 여겨진다”며 “친한 아티스트들에 더해 그들이 추천해 준 새로운 아티스트들, 이상은 선배 같은 전설적인 분을 모시게 됐다. 포스터의 디자인도 지구 위 섬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 계보를 잇기 위해 출연자들은 다음에 열릴 영희 페스티벌에서 보고 싶은 아티스트의 곡을 커버해 선보인다. 오지은은 한영애의 ‘누구 없소?’와 ‘조율’을 부른다. 테일러 스위프트, 레이디 가가, 아이유 등의 곡을 고른 이들도 있다. 오지은은 “새삼 엄청난 여성 예술가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분들이 내년에 오신다면 공연장을 바꿔야겠다”며 웃었다.

그는 페스티벌이 잘 되어 다행이라는 말에 되레 페스티벌의 ‘조속한 폐지’를 이야기했다. 다른 페스티벌에서도 여성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면서도 내년 2회 공연을 열 것이라며 눈을 빛냈다. “페스티벌 준비가 아무리 힘들어도, 묻지 않고 참여해 준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요. 내년에는 더 좋은 조건으로 더 멋지게 열 예정입니다.”

오지은은 영희 페스티벌이 서로를 발견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하다는 말을 듣거나, 불편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마음을 연 관객을 만나는 일은 아티스트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오지은 사랑해!’라는 말이 들리면 저는 더 멀리 갈 수 있거든요. 편견이 싫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더 멀리 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 서현희 기자 h2@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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