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경제포커스] 반도체 로또, ‘복권의 저주’를 피하려면
2026.06.10 23:40
북해 가스 대박發 ‘네덜란드 병’
국가 횡재도 복권도 잘 써야 藥
경제 충격 없게 후대에 물려줘야
미국 매체 뉴욕 포스트는 2020년 7월 ‘가장 불행한 복권 당첨자’ 잭 휘태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2002년 성탄절 그는 우리나라 로또와 비슷한 파워볼에서 행운 번호 6개를 모두 맞혀 3억1500만달러(약 4800억원)의 당첨금을 거머쥐었다. 당시까지 가장 많은 당첨금을 받은 미국인으로 기록됐다. 그는 건설사 사장이었고 재산이 1700만달러(약 260억원)에 달해 이미 백만장자였다. 그래서 이런 행운이 자신의 삶을 크게 바꿔놓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6년 후 그는 공개 석상에 나타나 “빈털터리가 됐다”고 했다. 돈을 마구 쓴 데다 그 사이 이혼을 했다. 같이 살던 손녀딸은 마약 남용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자린고비는 아니었기에 1400만달러를 들여 자선재단을 만들었고, 도움을 원하는 편지 수 천 통에 한 푼 두 푼 주다 보니 재산이 갈수록 줄었다고 했다. 재단은 자금이 떨어져 1년도 안 돼 문을 닫았다. 그는 불행의 이유를 “복권 당첨 때문”이라며 “복권을 찢어버릴 걸 하고 후회한다”고 했다.
하지만 휘태커가 빠진 ‘복권의 저주’를 피해 재산을 잘 관리한 사람도 적지 않다. 잔디 깎기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윈 웨일스가 하나의 예다. 그는 2001년 4110만달러(약 63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다. 당첨되자마자 변호사를 고용하고, 자금 관리를 위해 투자 전문가와 회계사를 찾았다. 그의 일상은 새 트럭을 산 것 외에 크게 바뀌지 않았고, 마을 공동묘지에서 잔디 깎기 봉사도 계속했다. 집 주변의 인구 1만명 정도인 벅스턴이란 지역을 돕기 위해 500만달러로 자선 재단을 만들었는데, 매년 원금을 운용해 나오는 5%의 수익만 자선에 쓰고 원금은 영원히 보존되도록 했다.
미국 복권 당첨자 얘기를 길게 했지만, 국가적 횡재도 잘 관리해야 국민 일상 생활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250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역대 최대였던 작년 1231억달러의 배가 넘는다.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한 정도의 달러가 한국 경제에 쏟아지는 횡재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바탕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AI(인공지능)발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이는 달러다.
역사를 보면 국가적 횡재를 맞았다가 불행에 빠진 일이 적지 않다. 스페인 왕국에는 1545년 남미 식민지에서 포토시 은광이 발견되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은(銀)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왕실은 군대를 키우고 전쟁을 하느라 국고를 탕진했다. 반면 풀린 은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1557년 왕실이 빌린 돈을 못 갚겠다고 선언하는 등 국가 파산이 이어졌다. 제대로 된 산업은 없이 돈만 풀리자 국민은 고물가에 고통 받는 위기에 빠져 들었다.
1959년 북해에서 천연가스를 발견한 네덜란드에는 가스 수출로 외화가 밀려 들어왔다. 이에 자국 통화 가치가 오르고 수출 상품 가격도 올라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망가지는 일을 겪었다. 천연가스 산업만 호황이고, 나머지 산업은 침체하면서 경제 전체가 하강 곡선을 그렸다. 1977년 영국 경제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네덜란드 병’이라 이름 붙였다.
국가적 횡재를 잘 관리한 사례도 있다. 북해 유전에서 들어온 돈을 국부 펀드에 쌓아 놓고 매년 3% 한도로 재정에 지원하는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지금 세대가 흥청망청 쓰다가는 인플레이션과 국가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뿐이다. 복권 사례에서 보듯 미래 세대에 잘 물려줄 수 있도록 절제와 철저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도체 로또’가 한국 경제에 저주가 될지 축복이 될지 선택할 결정적 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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